원 제: Raymond Lull: Medieval Theologian, Philosopher, and Missionary to Muslims
글쓴이: J. Scott Bridger1
원제: RAYMOND LULL: MEDIEVAL THEOLOGIAN, PHILOSOPHER, AND MISSIONARY TO MUSLIMS
1. 서론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윌리엄 캐리(1761-1834) 가 18, 19세기에 인도에 가서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때는 보통 선교의 시작으로 본다. 그 외에는 기독교 역사 첫 3 세기 이후에는 복음 전파에 그다지 큰 진전이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5세기의 성 패드릭 St. Patrick 이나, 13, 14세기의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 St. Francis of Assisi, 그리고 레이먼드 룰(미주 2), 그리고 유대교에서 개종하여 선교사가 된 후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에게 나아갔던 19세기의 죠셉 월프 Joseph Wolff 같은 사람들의 노력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무슬림들에게 이루어진 선교의 역사만을 생각한다면 복음 전파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슬람과 대면한 것은 대부분 습격하고 다니는 지하드주의자들(성스러운 전쟁을 외치며 종교의 이름으로 무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역자 주)을 피해 다니거나, 아니면 십자군으로 이들과 맞서거나, 그도 아니면 딤미(미주 3) 정책이나 개종으로 인해 가족과 삶에 엄청난 압력을 받는 경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그리스도는 항상 순교자들(즉, 증인들)을 보냈고, 따라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를 희생제물로 삼으려고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생명과 신체적인 위험을 감수한 개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참으로 많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끔찍한 결과를 눈 앞에 두고서도 대단한 용기와 희생 정신을 발휘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글은 레이먼드 룰의 삶과 사상에 관해 나눔으로써 복음 전파가 소홀했었다고 여겨지는 기간에 대한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 더욱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지금의 이시기가 전투적인 이슬람이 만연하고 무슬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선교적인 노력이 지극히 도전 받고 있으며, 때로 선교사들의 극단적인 희생까지도 요구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룰의 삶과 본보기는 그가 살았던 시기를 생각해 볼 때 실로 놀랍다고 말할 수 있다. 그에 대해 즈웨머 Zwemer 는 이렇게 적고 있다: ‘12세기와 13세기에 찾아볼 수 있는 선교 정신은 십자군의 정신이 전부였다. 그들은 칼을 들었고, 칼로 망했다. 그러나 레이먼드 룰은 진정으로 놀랄만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십자군이 진정한 그 분의 무기인 용서와 평화를 가지고 십자가를 위해 싸웠다면 십자군은 세상에 어떤 존재가 되었으며, 어떤 일을 하게 되었을까?’(미주 4) 룰 자신은 이렇게 적고 있다: ‘많은 기사들이 바다를 건너 거룩한 땅으로 가는 것을 본다. 그들은 무기로 무장하여 그것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이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얻어내기 전에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린다. 하지만 내게는 거룩한 땅의 정복은 사도들이 이루어낸 것처럼 사랑과 기도, 그리고 눈물과 피를 쏟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정복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미주 5)
룰의 삶과 사상을 나누려면 두 부분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첫 부분은 룰의 배경과, 교육, 개종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고, 두 번째 부분은 신학자와 철학자로서의 룰의 사상을 그려보는 것이다. 특히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에게 그가 삼위일체와 성육신에 대해 설명한 것과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려고 한다. 룰의 삶과 사상에 대해서 여기에 제시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결코 간과될 수 없는 것은 때로 적대적이기까지 한 환경에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나누기 위해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한 그의 열정이다. 그것이 그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것이었고, 그의 사상과 철학도 오직 그 빛을 통해서만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피어스 Peers는 룰의 저술들 가운데 하나에서 다양한 주제에 관해 논평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묵상서의 이차적인 주제들 가운데 특별히 부각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자들의 개종에 대한 것이다. 이 책 한 권에서만도 룰이 그렇게 자주 이 주제로 되돌아가곤 한다는 것은 그 주제가 그의 삶을 지배하는 열정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미주 6) 그의 그러한 열정이 이 글의 요점이 될 것이다.
2 룰의 생애
레이먼드 룰은 스페인 동쪽 해안에서 좀 떨어져 있는 한 섬인 마조르카 Majorca 의 팔마 Palma 에서 1232/35년에 태어났다.(미주 7) 그는 레이먼드 룰과 엘리자베스 데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1232년에 아라곤의 왕 제임스 1세가 마조르카를 무슬림들의 손에서 재탈환한 후에 그 곳에 정착했다.(미주 8) 레이먼드의 아버지는 제임스 왕이 무슬림들에 대항하여 캠페인을 벌이던 시기에 십자군으로 제임스의 군대에 있었다. 전쟁 후 제임스는 그를 따르던 자들에게 넓은 지역의 땅을 상으로 하사했다.
룰의 아버지도 그렇게 땅을 하사 받은 사람으로 아들 역시 왕실에서 좋은 직책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했다.(미주 9) 룰은 제임스 왕의 자녀들, 특히 제임스 2세의 교사가 되었다가 후에는 행정관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왕의 마음에 들기 위한 삶의 방식은 그에게 덫이 되었다. 그 자신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이 타락한 시기에 극도로 부도덕한 삶을 살았다. 술, 여자, 노래가 왕과 왕자들이 가장 즐기는 것들이었다.(미주 10)
룰은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노래와 궁전시도 잘 지었다. 하지만 그 주제는 주로 ‘불법적인 사랑의 기쁨’이었다.(미주 11) 그러한 생활은 그에게 두 자녀 도메네크와 막달레나를 낳아 준 블랑카 피카니와 결혼한 후에도 계속되었다.(미주 12) 방탕과 부도덕으로 얼룩진 그의 생활은 그가 32세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가 어떻게 개종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피어스는 그 중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두 개 다 그의 전기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고, 어디에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는 충분한 것들이라고 말한다.(미주 13) 여기에 소개되는 것은 가장 믿을만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비슷한 사건이 룰의 저서인 휄릭스 Felix 에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미주 14) 또한 여기 소개되는 이야기는 그의 개종에 대한 다른 설명들과도 잘 맞는 요소들이 많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룰은 결혼한 여인인 시그노라 암브로시아 집의 창문 옆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는 당시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헛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상아빛 목과 가슴에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즉석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 부인은 그를 불러서 그가 그렇게도 아름답게 여기는 그녀의 가슴을 보여주었는데 그 가슴은 끔찍한 암(cancer)에게 먹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그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생각을 바꾸도록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리스도가 그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레이먼드, 나는 따르라.’ 그는 그의 궁정 직위를 버리고, 그의 모든 자산을 판 후 로다 혹은 라다라고 하는 산에 있는 작은 암자로 들어갔다. 이것은 1266년의 일이었다.(미주 15)
개종 후 룰은 몇 달간을 묵상과 기도로 보내면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자신을 무슬림 선교를 위해 부르셨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미주 16) 그러나 그는 성직자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라틴어와 아랍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궁정에서 일했던 그의 경력이 왕과 왕자들, 그리고 교황까지도 설득하여 언어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워서 선교사들을 준비시켜 ‘영적인 십자군’이 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룰은 자기 자신이 ‘아프리카에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써 이미 고난 당하신 주님처럼 자신도 고난 당하기를 바랬다.’(미주 17)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9년 동안을 신학과, 철학, 논리, 의학, 그리고 특별히 아랍어를 공부하면서 보냈다. 아랍어를 공부하기 위해 그는 무슬림 노예를 사서 그가 아랍어와 이슬람에 관해 자신을 가르치도록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팔마에 사는 무슬림들과 유대인들과 논쟁도 하게 되었다. 그는 제임스 2세의 보호 아래서 이런 일들을 해 나갔는데, 제임스 2세는 왕자시절 그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다. 룰은 또한 이 시기에 꾸란과 알-가잘리의 Al-Ghazzali 글들도 연구하고 싶어했다.(미주 18) 그 결과로 그는 논리와, 철학, 그리고 몇 가지 다른 분야들에 대한 저술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시기의 주요 저술은 묵상서 the Book of Contemplation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그것을 아랍어로 저술하였다.(미주 19) 그는 또한 라틴어와 자국어인 카탈란어 Catalan 로도 저술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서구에서는) 라틴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정교한 철학 논문을 작성한 첫 그리스도인 저술가가 되었다.(미주 20)
그가 자신에게 아랍어를 가르치게 하려고 사들인 노예는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주인을 살해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혔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룰은 이 일로 큰 충격을 받고 9년 전에 했던 것처럼 한동안 기도와 묵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 시기에 그는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믿지 않는 자들이 반박할 수 없는 기술 Art (즉, 방법)을 만들어 내서 기독교의 진리가 모든 사람들 위에 서게 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미주 21) 이 책의 제목은, 시리즈로 볼 수도 있는데, Ars Magna 혹은 Ars Generalis 이다.(미주 22) 보너 Bonner 는 그 장면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그 (노예의 자살) 후에 라몬은 집에서 그리 멀리 않은 어떤 산에 올라갔다. 평온함 가운데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기 위해서였다. 거의 일 주일 가량을 머물렀을 때, 어느 날 하늘을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주님께서 앞에서 말한 그 책의 저술에 대해 어떻게 믿지 않는 자들의 오류를 보여줄 것인지 그 형태와 방법을 그의 마음에 떠올려주셨다.(미주 23) 그 책은 원래 묵상서가 될 것이었지만, 그리고 묵상서임에는 틀림이 없고, 또한 룰의 모든 사상이 그 책에 드러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어떻게 그 책의 형태를 구성하고, 어떻게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는 가에 있었다.(미주 24) 이것이 새롭게 영감을 받은 그 기술에 대한 주요 과제가 될 것이었다. 이제 42세가 된 룰은 그의 역작이 될 저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시작하고 있었다.(미주 25)
룰의 사상과, 삼위일체와 성육신 교리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변증법을 살펴 보기 전에, 룰이 개종을 하고 9년을 배우는 것에 사용한 후, 그 생의 나머지 40년이 어떠했는지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룰이 살았던 시대를 생각해 볼 때, ‘영적 십자군’을 시도하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설득하여 그 가치를 깨닫도록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여행하고, 가르치고, 왕과 교황들의 후원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서 수 일, 수 개월을 보냈다. 그 모든 것이 그가 갖게 된 비전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의 열망이 외면당한 적도 많이 있었지만, 그가 무언가를 이루어낸 것도 있다. 룰이 80세가 되었을 때 그는 비엔나에서 열린 협의회(1311-1312) 에 참석하여 동양어(히브리어, 아랍어, 칼데아어 Chaldean )를 가르치는 언어 학교를 설립할 것을 교황에게 직접 건의 하였다.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서 Paris, Oxford, Bologna, Salamanca, 그리고 교황청 Papal Court 에서 학생들이 이 언어들을 배우고 선교사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룰의 가장 큰 업적은 그의 선교 여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북아프리카로 세 번 그런 여행을 떠났다. 처음에는 튜니지아의 수도 투니스로 가서 무슬림 학자(울레마)를 만나 그들 종교를 자신에게 확신시킬 수 있으면 자신이 무슬림이 되겠노라고 제안했다. 며칠 동안의 논쟁 후 그 도시의 이맘들과 지도자들은 위협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는 그들 중 몇 명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술탄에게 가서 룰을 감옥에 가두고 처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좀 더 유순한 리더의 중재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항구로 보내져서 몇 명 안 되는 믿는 자들과의 몇 번의 은밀한 접촉 시도 후에 강제로 유럽으로 보내졌다. 이 때가 1291년 혹은 1292년이었을 것이다. 룰은 평생에 두 번 더 그런 여행을 했는데, 마지막 여행은 1315/16년에 있었다. 그 여행은 알제리아에 있는 Bougie시에서 83세의 룰이 성난 무리들의 손에 순교 당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의 몸은 마침내 팔마로 다시 보내져서 샌프란시스코의 교회에 아직도 묻혀 있다.
어떻게 해서 무슬림들의 신 개념에 대한 룰의 접근이 무슬림들에게 그렇게도 위협적이었으며, 삼위일체와 성육신의 진리를 잘 드러낸 것으로 보이는가? 다음 부분에서 우리는 룰의 변증적, 복음주의적 방법과 관련된 그의 신학적 철학적 개념들을 좀 살펴볼 것이다. 특히, 룰의 사상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와, 그가 사용한 기술의 성격, 그리고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인 삼위일체와 성육신에 대한 그의 접근 방법을 살펴볼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룰의 변증법의 기초가 되고 있는데, 이는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이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제시되는 이 두 교리에 대한 설명은 룰의 책인 “이방인과 세 현자의 책 Book of the Gentile and the Three Wise Men”에서 가져온 것이다.(미주 28)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비록 룰이 학자이고 학자적인 방법으로 논증하고 있지만, 그가 한 개종의 경험이 그의 철학과 선교사로서의 방법론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즈웨머가 이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룰의 내적 생활의 열쇠가 되는 것은 그의 개종의 경험이다. 성육신적 사랑이 육적인 사랑을 극복했고, 룰의 모든 열정과 천재적인 시성 poetry 이 십자가를 향한 복종에 쏟아졌다. 그가 젊어서 본 비전이 그가 나이를 먹은 후에 내세운 모토를 설명해 준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있지 않은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He who loves not lives not; he who lives by the Life can not die.’ 고난 당하시는 구세주 이미지는 그가 산 50년간 줄곧 그를 살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스도 그 분을 향한 사랑이 그의 가슴을 채웠고, 그의 정신을 빚었고, 그의 펜 pen 에 영감을 불어 넣었으며, 그의 영혼이 순교의 관 crown 을 간절히 소망하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가 계시에 대한 그 큰 신비에 대해, 그리고 무슬림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 합당한 증거를 찾아내었을 때 그는 다시 한 번 그의 비전을 회상했다. 삼위일체에 대한 그의 증거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성령에 의해 우리에게 계시된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그 증거였던 것이다.(미주 29)
3 룰의 사상
앞에서도 말했듯이,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의 개종에 대한 룰의 관심이 그의 사상과 저술들에 나타나는 주요 동기요 중심이 된다. 그는 철학이 신학에 보조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강조했는데, 개종에 대한 룰의 관심만이 그가 철학에 대해 취했던 이러한 태도를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해 줄 수 있다.(미주 30) 룰이 살았던 시대는 유럽 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플라톤 사상가들의 개념들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중에 있었다. 이 사상들은 중동의 그리스도인들, 특히 정교회 수도승들과 이븐 시나(아비시나) Ibn Sina (Avicenna)와 이븐 라쉬드(아베로스) Ibn Rushd (Averroes) 같은 무슬림 철학자들과 주석가들이 지니고 있었던 것들이 새롭게 소개된 것들이었다. 이 시기는 아랍 이슬람 세계가 가지고 있던 것들에 철학과 학문이 동요되는 시기였다. 따라서 룰은 그런 철학자들의 사상에 영향 받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인도하려면 그 자신이 그런 사상들을 섭렵하고 반박해서 기독교 신앙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도적 관심에 붙들려, 룰은 철학과 신학 사이에 분리의 벽을 세우려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이는 그의 전 생애 동안 매우 뜨거운 논쟁거리였는데,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아베로스의 주석들과 기독교 세계에 속해 있는 그의 추종자들, 즉 ‘의심스러운 진리 double truth’라고 알려진 것을 지지했던 라틴 아베로스들 Latin Averroists(즉, 기독교 세계에 살면서 아베로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역자 주)로부터 시작했다. 의심스러운 진리 이론은 철학적으로는 진리일 수 있지만, 신학적으로는 아직 진리라고 볼 수 없는 것, 혹은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한 이론이다.(미주 31) 룰은 그런 개점이 지식인 무슬림들 사이에 기독교 메시지가 살아날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보았다. 그는 이성이 가장 깊은 신앙의 신비를 믿을 수 있는 이성적인 바탕을 제시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St. Ramon de Penyafort 과 Ramon Marti 같은 그보다 앞선 도미니크 수도사들을 비판했다. 이들은 발렌시아에서 룰처럼 비폭력적인 방법들을 사용하여 무슬림들을 기독교로 이끌었지만, 룰은 마티가 기독교의 합리성을 보여주는 이성의 역할을 무시했기 때문에 튀니지의 술탄 al-Mustansir를 개종시키는데는 실패했다고 보았다.(미주 32) 마티는 술탄이 이슬람의 진리를 포기하도록 설득했지만 기독교의 진리를 확신시키는 데는 실패함으로써, 그 술탄이 이슬람의 진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 보다 오히려 못한 상태를 만들었다.(미주 33) 룰은 이것을 큰 비극으로 보았으며, 그가 생각해낸 방법 Art 을 적절히 사용하면 이러한 비극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삼위일체와 성육신의 합리성을 증명하는 ‘필연적인 이유들’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코플레스톤 Copleston 은 철학에 대한 룰의 태도와,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이 목적으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 준다:
무슬림들의 개종에 대한 그의 관심은 철학이 신학에 종속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주장뿐 아니라, 이성의 능력으로 신앙의 교리들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게 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를 바탕으로 ‘필연적인 이유들 necessary reasons’로 신앙에 대한 문제들을 ‘증명’하려 하는 그의 제안을 이해해야 한다. 그가 기독교의 신비를 (현대적인 의미에서) 합리화하려고 할 때 그것은 St. Anselm 나 Richard of St. Victor가 삼위일체에 대해 ‘필연적인 이유들’을 말한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룰은 신앙이 이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다룬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그는 무슬림들에게 기독교에서 믿는 것들이 이성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며, 기독교 신앙을 반대하는 것들에 대해 이성적으로 맞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더 나아가, 아베로스들이 받은 비난, 즉 그들이 ‘이중 진리’를 붙잡고 있다는 비난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고 믿으면서, 룰은 신학과 철학이 갈라서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이고자 했다. 신학적 교리들이 이성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이성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미주 34)
이러한 ‘필연적인 이유들’을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에게 제시하기 위해,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룰은 알고 있었다. 무슬림들과 유대인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신앙과 이성 사이의 충돌을 피하면서, 어느 정도 삼위일체와 성육신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거나, 혹은 적어도 그 타당성을 보여야 했을 것이다. 룰은 자신이 이성주의에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 섬세한 조화를 강조하고, 그의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그런 노력에 따르기 마련인 위험을 피하기 위해 룰은 종종 세 종교 모두에 존재하는 기초적인 전제(신학적, 철학적)부터 출발하는 것을 선택했다.(미주 35) 보너는 이렇게 설명한다: ‘룰은 신에 대한 일련의 전제에서부터 시작한다. 신은 존재하시고, 한 분이시며, 모든 것의 근원(first cause)이 되시고, 등등. 그리고 나서 그는 세 종교 모두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신의 속성으로 들어간다 (비록 다른 시기에 다른 형태를 띠기는 하지만)… 룰은 이러한 속성들을 특성 properties, 미덕 virtues, 이성 reasons (rationes), 혹은 종종 위엄 dignities 이라고 칭한다.(미주 36)
룰은 그의 사상의 하위 구조가 되는 신과 세계에 대한 다섯 가지 원칙을 나열한다.(미주 37)
1. 신은 그 자신의 본질적인 함과, 위대함, 영원성, 능력, 지혜, 의지, 미덕, 진리, 영광을 가지고 있다. (다른 곳에서 그는 9가지 이상 되는 신의 속성들을 나열한다. 따라서 여기에 나열된 것들이 모든 속성을 다 나열한 것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2. 이 속성들 혹은 위엄들은 서로 대치됨 없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하나님의 본질이 합쳐져서 그 속성들이 서로 융통성 있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 속성들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 분 이라는 사실에 어긋나지 않게 된다. (이것이 단순함의 개념이다.)
3. 이 위엄들은 실재하는 것이다.
4. 실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룰의 사실주의적 존재론을 보여준다.)
5. 각 위엄들은 이 세상에 있는 각 창조물의 역량에 맞도록 영향력을 발휘하여, 각 창조물들이 그들의 제 1 원인이 되는 것 (즉, 신)을 닮도록 한다. 각 창조물의 역량은 그 창조물이 얼마나 그 위엄과 일치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설명을 하면서 룰은 창조물이 하나님의 속성에 맞는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매우 일반적인 중세 사상을 반영한다. 룰은 사실주의자였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존재론적인 구조를 갖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그의 방법(Art)의 목적은 ‘진리를 알고 그에 동의하는 방법이 가능한 한 실재하는 방법에 가장 가깝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The aim of his Art was ‘to make the modus intelligendi [the mode or manner of knowing or assenting to truth] conform as closely as possible to the modus essendi [the mode or manner of existing or imbibing/exuding essence].’) (미주39)
그래서 그는 기독교의 신비를 우주 구조의 한 부분으로 설명하였으며, 이러한 ‘설명’ 혹은 증거가 ‘필요한 이성’의 본질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미주40) 보너는 룰의 방법의 본질을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가 그 방법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룰 자신도 조심스럽게 지적했듯이 논리도 아니고 형이상학도 아닌 오히려 그 둘 다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 본질에 대한 가장 확실한 설명은 룰이 사용한 ‘방법(Art)’ 이라는 말에 있다. 그리스어 tevcnh를 학문적으로 해석한 이 말은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교리가 아니라 시스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룰은 전체 우주 구조 the modus essendi 를 가지고 그 위에 또 하나의 다른 구조를 올려놓고 있는데 그것은 그 최초 the first 와 관련되었고 또 그것에서부터 나온 the modus intelligendi의 구조이다.(미주41)
이와 같은 룰의 사상의 대체적인 윤곽을 가지고 우리는 삼위일체와 성육신의 타당성에 대한 그의 주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음에서 우리는 그의 주장을 소개할 것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과 룰에게 미친 중세 철학자들의 다양한 영향에 대해서는 미주와 참고서적 목록에 소개되어 있는 저술들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룰의 작품인 ‘이방인과 세 현자의 책’ (Book of the Gentile and the Three Wise Men)은 룰의 일반적인 변증학적 접근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그가 란다 산에서 깨달음을 얻은 직후에 쓰여진 비유적인 allegorical 책이다.(미주 42)
네 인물이 있다: 이방인, 유대인 현자, 기독교인 현자, 그리고 무슬림 현자.
이 가운데 세 대표자들은 유일신 종교를 믿고 있고 종교적 문제와 관련해 종종 모이게 되는 친구들이다. 이방인은 먼 땅에서 온 사람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신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신에 대해서 알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는 동안 그 세 친구들은 한 훌륭한 목초지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데 그 곳에는 다섯 그루의 아름다운 나무에 물을 대는 한 샘이 있다. 그 샘 옆에는 지성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을 만나서 그들은 그 다섯 그루의 나무들이 무엇인지 그 각각의 꽃들에 쓰여져 있는 글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미주 43) 그녀는 그 나무들과 꽃들이 하나님의 본질, 창조되지 아니한 미덕 virtues, 창조된 미덕, 죽음에 이르는 죄, 그리고 그와 관련된 그 이외의 많은 사항들 conditions을 결합시켜 놓은 것이라고 설명한다.(미주 44) 더 나아가 그 모든 것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사랑하고, 알고,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또한 이렇게 덧붙인다. “이 모든 사항들이 꽃들을 다스리는데, 그 꽃들은 하나님과 그 분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고, 심지어는 그들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교정하는 원리요 교리가 됩니다.(미주 45) 그 여인이 그들 셋을 떠나간 후에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여러분 하나의 분파에 속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해 harm 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하나의 신앙과 하나의 종교에 속할 때 오는 좋은 점에 대해서 논의해 봅시다. 이 나무들 아래에 앉아서 꽃들과 이 나무들이 나타내는 사항들에 따라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해 나누면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권위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았으니, 논증적이고 필요한 이성 demonstrative and necessary
reasons 에 의해 어떤 동의점에 도달하도록 해 봅시다.”(미주46) 그들이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그 이방인이 그 장소에 도착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인사를 하자 그가 누구든지 자신에게 이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이방인의 책 the Book of the Gentile’은 시작이 된다. 결국, 각각의 세 현자는 그 이방인에게 자신의 신앙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갖게 되고, 그 와중에 그 이방인은 교리의 성격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각 현자들이 대답을 한다. 룰은 유대인과 무슬림의 신앙을 설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데 그의 이 두 신앙에 대한 설명은 매우 훌륭하다. 다른 사람들의 종교를 바르게 보여주는 것은 룰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는 이것이 바로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이 삼위일체와 성육신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삼위일체와 성육신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거부 한다고 보는 것이다.-역자 주) (미주47)하나님의 완전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 시대에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미주48)
- 계속됩니다.
원본바로가기 Raymond Lull: Medieval Theologian, Philosopher, and Missionary to Muslims
2009년 11월 8일 일요일
2009년 11월 2일 월요일
내부자 운동, 무엇의 내부인가, 교회, 문화, 종교? 내부자 운동은 성경적인가?
원제: Inside What? Church, Culture, Religion And Insider Movement In Biblical Perspective
글쓴이: KEVIN HIGGINS
1. 서론
소위 ‘내부자 운동’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 선교학자들과 선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 내에서 점점 더 많은 논의가 일어나고 있으며 많은 논쟁점들이 대두되고 있다. 본 글은 이 계속되는 논의 가운데 교회와, 문화, 종교의 세 주요 요소에 대해 간단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의 틀을 형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질문에 답하면서 이 주제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그 다섯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내부자 운동이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종교와 문화는 분리될 수 있는 것인가? 종교란 무엇인가? 선교 실재에 있어서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2. 내부자 운동이란 무엇인가?
2004년과 2007년 사이에 내부자 운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 문제의 양면에 대한 글들이 내부자 운동이라는 주제로 발표되었는데 그 중 몇 개의 중요한 글들은 국제 저널 프론티어 선교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Frontier Missiology) 에서도 발표되었다.국제 단체 프론티어 선교의 관련자들이 모두 모여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회의가 이 주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심사 숙고하였고, 그 결과 역시 출판되어 나왔다.[1]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내부자 운동에 대한 생각을 다듬기 위한 것이었고, 그 결과 두 개의 결과물을 내 놓았다. 나는 좀 더 길게 내부자 운동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고자 한다: 점점 더 많은 수의 가족들과, 개인들, 부족들, 친구들 그룹이 종교를 포함하는 그들의 인종 문화권내에서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되어가고 있다. 이 신실한 제자들은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문화권 안에 머물면서, 그리고 성경이 인정하는 한 그 문화의 종교적 삶을 살면서 문화적으로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믿는 자들의 공동체로서 자신들을 표현할 것이다. 성령님 또한 성경 말씀과 그 분의 사람들을 통해 그의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의 문화와, 종교적 삶과 세계관을 변화시키기 시작하실 것이다.[2]
레베카 루이스(Rebecca Lewis)가 최근에 좀 더 짧은 정의를 내렸다: 내부자 운동은 그들이 원래 속해 있는 공동체내에 그 공동체와 함께 머물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고자 하는 여느 다른 운동과 같다고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그들은 아래의 두 가지 구별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1 복음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공동체에 또는 사회 구조 내에 뿌리를 내리고, 그 공동체 혹은 사회 구조가 ‘교회’가 이루어지는 주요 장소가 된다.
2 믿는 자들은 그들의 사회 종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계속 유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 아래에서 살아간다.[3]
위의 두 정의 모두에서 공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내부자 운동은 사람들의 운동 혹은 대중운동의 특징을 겸비하고 있으며, 종종 C5라고 일컬어지는 관점의 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4]
위의 두 가지 정의에서, 종교를 어떻게 가정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히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교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게 된다.
3. 교회란 무엇인가?
루이스가 제안한 내부자 정의는 교회가 이미 존재하는 사회 구조 안에 세워질 수 있다, 혹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기존의 사회 구조가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개념을 포함한다. 이 개념이 논의를 불러일으키기는 하였지만,[5] 선교학에서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선교 문헌에서 대중 운동은 이와 유사하게 기존의 구조 (가족, 마을, 부족)가 단체로 신앙을 갖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6] 성경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신약의 단체 개종의 예는 고넬료, 루디아, 빌립보 감옥의 간수, if Sychar?? 마을이 있다.
그러나 내부자운동의 교회학은 적어도 두 가지 방향에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 한 가지는 내부자 운동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논쟁으로, 내부자 운동으로 세워진 교회에 내부자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포함하는 사회 정체성에서 분리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이제는 교회의 일원이 되어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 방향에서 제기되는 의문은 내부자 운동의 신자들과 좀 더 폭 넓은 교회와의 관계를 염려하는 목소리로,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됨을 염려하는 소리이다.
나는 먼저 그리스도의 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와, 이전의 종교 상황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나는 여기서 종교에 관한 논의보다는 다중 정체성의 가능성에 관해 몇 가지 코멘트를 제시하고 싶다.[7]
먼저, 교회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 받은 신자들로 구성된다(에베소서 2:8-10). 어떤 의미에서 아무도 교회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모든 신자들은 교회의 일원이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에 속한 사람으로서 삶의 모든 면에서 전적으로 그렇게 살아가도록 요청 받는다.
따라서, 교회의 일원으로서 그 사람의 정체성은 삶의 다른 면에서의 그의 정체성과 겹쳐질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것이 신약 성경에서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에베소서에서 종들과 주인들에게 모든 것을 주님께 하는 것처럼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아래 변화 되는 첫 열매가 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교회의 첫째가는 전략은 사도행전 14:21-28에서 열거되어 있는 것들(잃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믿는 자들을 제자 훈련하고, 제자들을 격려하고 강화하고, 각 교회의 지명된 장로들을 택하여 훈련하고, 복음의 지속적인 확장 안에서 다른 교회들과 서로 연결되고 참여하는 것)과 같은 기능들을 통해 스스로 증식하는 것이다. 나는 의식적으로 전통적인 말투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런 동일한 성경적 기능들이 내부자 운동 안에서 변형된 형태와 용어로 일어날 수 있다.[8]
셋째로, 비록 교회가 우리가 방금 사도행전 14장에서 지적한 그런 구조로 발전한다 할지라도, 성도들은 성전과 회당에 여전히 참여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종교적 표현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사도행전에서 보게 된다.[9] 그들은 또한 가정과 성전 마당 같은 공공 장소에서도 만나서 예수를 믿는 자들의 모임을 가졌다.[10] 믿는 자들은 성전 예배에서 교회의 일원이기를 그만두지 않았고, 가정 모임에서 유대교의 일부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11] 그들은 이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12]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메시야를 따르는 유대교 신자들의 성전과 회당으로부터의 분리가 박해와 파문, 그리고 회당의 의식(liturgy)에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겨냥하는 저주가 포함되면서 촉진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13] 이 분리는 신자들 편에서가 아니라, 이전 종교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에 의해 더욱 선동되었다. 분리가 일어날 때 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고 심지어 분리가 발생했을 때도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14]
넷째로, 제자들은 신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전의 구조에 남아있었다. 내부적 접근은 사람을 정직하지 못하게 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는 구조 안에 남는다는 것은 그 구조의 신학과 종교에 동의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15]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들과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 사이의 신학적 차이는 분명히 나타났고, 점점 더 커졌다. 그 차이는 이미 예수께서 사역하실 때부터 존재했고, 그 결과 예수는 십자가 상에서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초기 설교들에서 이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50년 이상 동안 완전한 결별은 일어나지 않았다.[16]
마지막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닫힌 모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속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다른 사회 혹은 심지어 다른 종교 구조나 종교적 표현에서 분리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17] 아래의 종교적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질문의 두 번째 단계는 좀 더 폭넓은 몸의 하나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 15장은 ‘운동들’ 사이에서 하나됨과 교제에 대해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고 있다. 우리가 사도행전 15장의 내용을 적용하려고 하면 하나됨에 대한 두 가지 ‘간단한’ 대답을 찾게 된다. 그 한가지는 하나님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새로운 그리스도의 몸을 창조하기 위해 일하시고 계시며, 따라서 우리가 내부자들 가운데서 구별된 운동을 만들어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본문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다. (에베소서 2장과 갈라디아서 3장을 보라.)
반면에, 두 개의 전혀 다른 운동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고린도 전서 9:19 하반절에서 바울이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사도행전 21장 17절 하반절의 메시야를 따르는 토라를 지키는 유대인들의 경우가 더욱 그러한 예가 되기도 한다. 사도행전 15장은 두 가지 경우 모두를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새로운 운동을 통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각각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살도록 자유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분리된 운동들이 서로 상대편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역사로 인정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유대인들이 분명히 가끔만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제그룹으로 만난 것이 분명하다. 로마서 14장과 15장은 이러한 현실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한 것이다.
이와 같이, 적어도, 내부자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신약의 서신서, 특히 바울의 서신서에 나와 있는 적지 않은 분량의 자료들이 계속해서 이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 문제들은 두 운동의 분리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이 아니라, 어떻게 서로 상호 반응해야 하는 가에 대한 것들이다. 어떻게 그렇게 해야 하는 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서는 종종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 자체는 성경적으로 분명해 보인다.
내부자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여러 곳에서 만연하고 있는 안전의 문제를 염두에 둔 채,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있는 하나된 모임이 되기 위한 상황에 대해 주의 깊게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여러 나라에서 오는 내부자들과, 다양한 교파 배경을 가진 바깥 사람들이 일 년에 적어도 한 번씩은 모여서 일주일 동안 성경을 공부하고 토론을 하는 모임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다른 상황에서는, 내부자 운동이 의도적으로 잠잠하면서 자세를 낮추고, 그러나 국제 기독교 교파와 공식적인 연결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연결은 서로 각자의 사역과 정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부자들은 내부자들이 되는 것을 그만두도록 요구 되지 않을 것이다. 교파 지도자들은 내부자들의 사역과 ‘안수’를 인정해준다. 이 연결에는 재정적인 차원은 관련되어 있지 않다.[18] 이것은 좀 더 신실한 종말론적 ‘전 세계적인’ 교회 즉, 본질적으로 지역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교회[19] 차원의 매우 유익하고,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교회에 대한 정체성과 하나됨의 관점에 대한 문제들을 개괄해 보았다. 결론을 내려 보자면, 내부자 운동은 그리스도의 몸에 있어서 그리고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그들의 삶의 상황에 있어서 지역적 성육신적 정체성의 복잡한 혼합으로 표현되는 교회의 파라다임을 나타낸다. 동시에, 우리는 성격이 말하는 하나됨의 문제를 더욱 자세히 그리고 실제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종교적인 질문으로 돌아서야 할 때이다.
- 계속됩니다.
[1] 특히 Tennent, Timothy의 글을 주목하여 보라. ‘Followers of Jesus (Isa) in Islamic Mosques: A Closer Examination of C-5 “high spectrum” contextualization’, in IJFM (24:1, Spring 2007); Gary Corwin, ‘A Humble Appeal to C-5/InsiderMovement Muslim Ministry Advocates to Consider Ten Questions’, in IJFM (24:1, Spring 2007). Kevin Higgins, ‘Identity, Integrity, and Insider Movements: A brief Paper Inspired by Timothy C. Tennent’s Critique of C-5 Thinking’, in IJFM (23:6, Fall 2006).
[2] Higgins, Kevin, ‘The Key To Insider Movements: The Devoteds’ of Acts’, in IJFM 21:4; Winter 2004, pp. 155 ff.
[3] 이는 출판되지 않은 자료로써 저자에게 한 논평 자료이다.
[4] John Travis의 C-단계들은 ‘The C1 to C6 Spectrum: A Practical Guide for Defining Six Types of ‘Christ-Centered Communities’ (‘C’) Formed in Muslim Contexts’ in Evangelical Missions Quarterly 34(4): 1998, pp. 407-408에 기록되어 있다. 트래비스 자신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선교 실천가들이 C-단계들로부터 떠나고 있고, 적어도 C-5와 ‘내부자 운동’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C5라고 부르고 있다.
[5] 특별히 이에 반대하는 비평에 대해서는 Bill Nikides, ‘Evaluating Insider Movements’, St. Francis Magazine Number 4, (March 2006). Nikides addresses Lewis’ viewpoints directly on p. 11.ff을 보라. 다른 비평들에 대해서는 John Piper in discussion with John Travis and others in Mission Frontiers가 있다. John Piper, ‘An Extended Conversation About Insider Movements: Responses to the September-October 2005 Mission Frontiers’, in Mission Frontiers (January-February 2006)을 보라.
[6] 예를 들어 McGavran, Donald A., The Bridges of God (New York, Friendship Press, 1955); Pickett, J. Waskom, Christian Mass Movements in India (New York, Abingdon Press, 1933)을 보라.
[7] 나는 교회가 내부자 운동에 갖는 관계의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좀 다른 관점에서 다루어보려고 한다 Kevin Higgins, ‘Identity, Integrity, and Insider
Movements: A brief Paper Inspired by Timothy C. Tennent’s Critique of C5 Thinking’.
Kevin Higgins, ‘Acts 15 and Insider Movements Among Muslims: Questions, Process,
and Conclusions’, in IJFM (24:1, Spring 2007).
[8] 나의 관점으로는 내부자 운동이 교회의 형태가 없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문제를 Tennent의 글 에 대한 나의 답에서 설명해 놓았다. Higgins, IJFM (Fall 2006)을 보라.
[9] Tennent은 그들이 한동안 그렇게 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와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주로 무엇이 혹은 누가 결국 발생한 분열을 시작되게 했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교회가 분열의 결과로 존재하게 되었는지(Tennent의 견해), 아니면 여전히 유대교 내에 머물고 있을 때에 이미 교회가 탄생되어 있었는지(나의 견해) 하는 것이다.
[10] 사도행전 3:1과 9:2를 보라. 바울은 다마스커스에 있는 회당에서 ‘그 도’를 따르는 자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자신을 회당 지도자들에게 추천해 줄 공문을 구하고 있었다. 후에 사도행전 21:17 후반부에서 (예수를 메시야로 따르고 있는) 유대 지도자들은 바울이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들은 많은 유대인 신자들에 대한 그들의 염려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에게 공적으로 바울이 유대인적이라는 것(즉,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라고 강권한다.
[11] Luzbetak은 문화권내에 있는 그룹들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사회 내에 기능하면서도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더 설명될 필요가 있다. Louis J. Luzbetak, S.V.D., The Church and Cultures (New York, Orbis, 1988)을 보라.
[12] 여기서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예수를 따르는 유대교 신자들’이 내부자 운동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예수를 따르는 이슬람 종교인들’과 같은 관계가 되는 지가 중요해 진다. 이 글에서 이것을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각주 15와 이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다룬 나의 이전의 글 The Key To Insider Movements: The Devoteds’ of Acts, IJFM (21:4; Winter 2004)을 추천하고 싶다.
[13] 요한복음에 관한 Whitacre의 주석(IVP 시리즈)에서 이 과정에 대한 논의를 보라. 244쪽에서 Whitacre는 회당으로부터의 분리가 1세기 후반에 일어났다고 결론짓는다. 그것은 사도행전의 여러 사건들 이후 약 한 세대에 일어난 것이다.
[14] Whitacre는 많은 학자들이 요한복음이 이미 회당에서 축출된 신자들과 아직 회당에 속해 있는 두 부류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본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 두 그룹 모두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었다. Rodney Whitacre, Johannine Polemic (SBL Dissertation Series 67, 1982), p. 19. 또한 Raymond Brown, The Community of the Beloved Disciple (Paulist Press, 1979)을 보라.
[15] 예를 들어 Nikides, 2006을 보라.
[16] 여러 가지 면에서 유대교가 이슬람과는 다르다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매우 실천적인 면에 있어서, 예수를 따르던 초기 유대인들 역시 오늘날 예수를 따르는 무슬림들이 당면 했던 것과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내부적 접근을 좋게 보지 않는 일부 사람들은, 개종자들이 여전히 모스크에 가는 한 진정한 가르침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그들은 복음과 반대되는 것을 듣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1세기 성전의 경우에도 이것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초기 운동은 그런 이유 때문에 성전에 참석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이 마치 계속해서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행위를 한 것처럼 말한 것은 언급할 가치가 있다(고전 8:10). 바울이 그런 행동을 바로 잡은 것은 다른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미칠 잠재적인 영향 때문이지, 그들이 정말로 이방 신전의 식탁에 참여했기 때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17] 나의 말을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도 교회가 닫힌 구조를 갖는 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위에 속한 자들과, 그리스도의 몸에 영적으로 연합한 자들만이 교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사회나 종교 구조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밀가루 반죽의 누룩과 같이 그들 속에 섞여 있으면서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18] 여기에 덧붙이기에는 좀 이상하지만, 중요한 사실이라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내부자 운동의 지도자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어떤 공식적이고 인정 받는 방식으로 역사적인 전 세계의 하나님의 사람들과 연결을 갖는 것이라는 것이다.
[19] 이 용어는 Leonard Sweet 가 처음으로 교회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Leonard
Sweet, Soul Tsumani: Sink or Swim in the New Millennium Culture (Grand Rapids, Zondervan, 1999). 선교학적인 관점에서 교회를 보편적인 것으로 유지할 필요에 대한 유익한 논의는 데이빗 보쉬의 삶을 개괄한 짧은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Timothy Yates, ‘David Bosch: South African Context, Universal Missiology – Ecclesiology in the Emerging Missionary Paradigm’, in IBMR (Vol. 33, Nr. 2, April 2009), pp. 72ff.
글쓴이: KEVIN HIGGINS
1. 서론
소위 ‘내부자 운동’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 선교학자들과 선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 내에서 점점 더 많은 논의가 일어나고 있으며 많은 논쟁점들이 대두되고 있다. 본 글은 이 계속되는 논의 가운데 교회와, 문화, 종교의 세 주요 요소에 대해 간단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의 틀을 형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질문에 답하면서 이 주제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그 다섯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내부자 운동이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종교와 문화는 분리될 수 있는 것인가? 종교란 무엇인가? 선교 실재에 있어서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2. 내부자 운동이란 무엇인가?
2004년과 2007년 사이에 내부자 운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 문제의 양면에 대한 글들이 내부자 운동이라는 주제로 발표되었는데 그 중 몇 개의 중요한 글들은 국제 저널 프론티어 선교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Frontier Missiology) 에서도 발표되었다.국제 단체 프론티어 선교의 관련자들이 모두 모여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회의가 이 주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심사 숙고하였고, 그 결과 역시 출판되어 나왔다.[1]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내부자 운동에 대한 생각을 다듬기 위한 것이었고, 그 결과 두 개의 결과물을 내 놓았다. 나는 좀 더 길게 내부자 운동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고자 한다: 점점 더 많은 수의 가족들과, 개인들, 부족들, 친구들 그룹이 종교를 포함하는 그들의 인종 문화권내에서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되어가고 있다. 이 신실한 제자들은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문화권 안에 머물면서, 그리고 성경이 인정하는 한 그 문화의 종교적 삶을 살면서 문화적으로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믿는 자들의 공동체로서 자신들을 표현할 것이다. 성령님 또한 성경 말씀과 그 분의 사람들을 통해 그의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의 문화와, 종교적 삶과 세계관을 변화시키기 시작하실 것이다.[2]
레베카 루이스(Rebecca Lewis)가 최근에 좀 더 짧은 정의를 내렸다: 내부자 운동은 그들이 원래 속해 있는 공동체내에 그 공동체와 함께 머물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고자 하는 여느 다른 운동과 같다고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그들은 아래의 두 가지 구별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1 복음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공동체에 또는 사회 구조 내에 뿌리를 내리고, 그 공동체 혹은 사회 구조가 ‘교회’가 이루어지는 주요 장소가 된다.
2 믿는 자들은 그들의 사회 종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계속 유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 아래에서 살아간다.[3]
위의 두 정의 모두에서 공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내부자 운동은 사람들의 운동 혹은 대중운동의 특징을 겸비하고 있으며, 종종 C5라고 일컬어지는 관점의 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4]
위의 두 가지 정의에서, 종교를 어떻게 가정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히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교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게 된다.
3. 교회란 무엇인가?
루이스가 제안한 내부자 정의는 교회가 이미 존재하는 사회 구조 안에 세워질 수 있다, 혹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기존의 사회 구조가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개념을 포함한다. 이 개념이 논의를 불러일으키기는 하였지만,[5] 선교학에서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선교 문헌에서 대중 운동은 이와 유사하게 기존의 구조 (가족, 마을, 부족)가 단체로 신앙을 갖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6] 성경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신약의 단체 개종의 예는 고넬료, 루디아, 빌립보 감옥의 간수, if Sychar?? 마을이 있다.
그러나 내부자운동의 교회학은 적어도 두 가지 방향에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 한 가지는 내부자 운동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논쟁으로, 내부자 운동으로 세워진 교회에 내부자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포함하는 사회 정체성에서 분리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이제는 교회의 일원이 되어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 방향에서 제기되는 의문은 내부자 운동의 신자들과 좀 더 폭 넓은 교회와의 관계를 염려하는 목소리로,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됨을 염려하는 소리이다.
나는 먼저 그리스도의 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와, 이전의 종교 상황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나는 여기서 종교에 관한 논의보다는 다중 정체성의 가능성에 관해 몇 가지 코멘트를 제시하고 싶다.[7]
먼저, 교회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 받은 신자들로 구성된다(에베소서 2:8-10). 어떤 의미에서 아무도 교회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모든 신자들은 교회의 일원이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에 속한 사람으로서 삶의 모든 면에서 전적으로 그렇게 살아가도록 요청 받는다.
따라서, 교회의 일원으로서 그 사람의 정체성은 삶의 다른 면에서의 그의 정체성과 겹쳐질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것이 신약 성경에서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에베소서에서 종들과 주인들에게 모든 것을 주님께 하는 것처럼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아래 변화 되는 첫 열매가 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교회의 첫째가는 전략은 사도행전 14:21-28에서 열거되어 있는 것들(잃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믿는 자들을 제자 훈련하고, 제자들을 격려하고 강화하고, 각 교회의 지명된 장로들을 택하여 훈련하고, 복음의 지속적인 확장 안에서 다른 교회들과 서로 연결되고 참여하는 것)과 같은 기능들을 통해 스스로 증식하는 것이다. 나는 의식적으로 전통적인 말투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런 동일한 성경적 기능들이 내부자 운동 안에서 변형된 형태와 용어로 일어날 수 있다.[8]
셋째로, 비록 교회가 우리가 방금 사도행전 14장에서 지적한 그런 구조로 발전한다 할지라도, 성도들은 성전과 회당에 여전히 참여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종교적 표현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사도행전에서 보게 된다.[9] 그들은 또한 가정과 성전 마당 같은 공공 장소에서도 만나서 예수를 믿는 자들의 모임을 가졌다.[10] 믿는 자들은 성전 예배에서 교회의 일원이기를 그만두지 않았고, 가정 모임에서 유대교의 일부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11] 그들은 이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12]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메시야를 따르는 유대교 신자들의 성전과 회당으로부터의 분리가 박해와 파문, 그리고 회당의 의식(liturgy)에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겨냥하는 저주가 포함되면서 촉진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13] 이 분리는 신자들 편에서가 아니라, 이전 종교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에 의해 더욱 선동되었다. 분리가 일어날 때 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고 심지어 분리가 발생했을 때도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14]
넷째로, 제자들은 신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전의 구조에 남아있었다. 내부적 접근은 사람을 정직하지 못하게 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는 구조 안에 남는다는 것은 그 구조의 신학과 종교에 동의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15]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들과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 사이의 신학적 차이는 분명히 나타났고, 점점 더 커졌다. 그 차이는 이미 예수께서 사역하실 때부터 존재했고, 그 결과 예수는 십자가 상에서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초기 설교들에서 이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50년 이상 동안 완전한 결별은 일어나지 않았다.[16]
마지막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닫힌 모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속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다른 사회 혹은 심지어 다른 종교 구조나 종교적 표현에서 분리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17] 아래의 종교적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질문의 두 번째 단계는 좀 더 폭넓은 몸의 하나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 15장은 ‘운동들’ 사이에서 하나됨과 교제에 대해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고 있다. 우리가 사도행전 15장의 내용을 적용하려고 하면 하나됨에 대한 두 가지 ‘간단한’ 대답을 찾게 된다. 그 한가지는 하나님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새로운 그리스도의 몸을 창조하기 위해 일하시고 계시며, 따라서 우리가 내부자들 가운데서 구별된 운동을 만들어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본문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다. (에베소서 2장과 갈라디아서 3장을 보라.)
반면에, 두 개의 전혀 다른 운동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고린도 전서 9:19 하반절에서 바울이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사도행전 21장 17절 하반절의 메시야를 따르는 토라를 지키는 유대인들의 경우가 더욱 그러한 예가 되기도 한다. 사도행전 15장은 두 가지 경우 모두를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새로운 운동을 통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각각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살도록 자유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분리된 운동들이 서로 상대편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역사로 인정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유대인들이 분명히 가끔만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제그룹으로 만난 것이 분명하다. 로마서 14장과 15장은 이러한 현실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한 것이다.
이와 같이, 적어도, 내부자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신약의 서신서, 특히 바울의 서신서에 나와 있는 적지 않은 분량의 자료들이 계속해서 이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 문제들은 두 운동의 분리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이 아니라, 어떻게 서로 상호 반응해야 하는 가에 대한 것들이다. 어떻게 그렇게 해야 하는 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서는 종종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 자체는 성경적으로 분명해 보인다.
내부자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여러 곳에서 만연하고 있는 안전의 문제를 염두에 둔 채,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있는 하나된 모임이 되기 위한 상황에 대해 주의 깊게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여러 나라에서 오는 내부자들과, 다양한 교파 배경을 가진 바깥 사람들이 일 년에 적어도 한 번씩은 모여서 일주일 동안 성경을 공부하고 토론을 하는 모임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다른 상황에서는, 내부자 운동이 의도적으로 잠잠하면서 자세를 낮추고, 그러나 국제 기독교 교파와 공식적인 연결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연결은 서로 각자의 사역과 정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부자들은 내부자들이 되는 것을 그만두도록 요구 되지 않을 것이다. 교파 지도자들은 내부자들의 사역과 ‘안수’를 인정해준다. 이 연결에는 재정적인 차원은 관련되어 있지 않다.[18] 이것은 좀 더 신실한 종말론적 ‘전 세계적인’ 교회 즉, 본질적으로 지역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교회[19] 차원의 매우 유익하고,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교회에 대한 정체성과 하나됨의 관점에 대한 문제들을 개괄해 보았다. 결론을 내려 보자면, 내부자 운동은 그리스도의 몸에 있어서 그리고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그들의 삶의 상황에 있어서 지역적 성육신적 정체성의 복잡한 혼합으로 표현되는 교회의 파라다임을 나타낸다. 동시에, 우리는 성격이 말하는 하나됨의 문제를 더욱 자세히 그리고 실제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종교적인 질문으로 돌아서야 할 때이다.
- 계속됩니다.
[1] 특히 Tennent, Timothy의 글을 주목하여 보라. ‘Followers of Jesus (Isa) in Islamic Mosques: A Closer Examination of C-5 “high spectrum” contextualization’, in IJFM (24:1, Spring 2007); Gary Corwin, ‘A Humble Appeal to C-5/InsiderMovement Muslim Ministry Advocates to Consider Ten Questions’, in IJFM (24:1, Spring 2007). Kevin Higgins, ‘Identity, Integrity, and Insider Movements: A brief Paper Inspired by Timothy C. Tennent’s Critique of C-5 Thinking’, in IJFM (23:6, Fall 2006).
[2] Higgins, Kevin, ‘The Key To Insider Movements: The Devoteds’ of Acts’, in IJFM 21:4; Winter 2004, pp. 155 ff.
[3] 이는 출판되지 않은 자료로써 저자에게 한 논평 자료이다.
[4] John Travis의 C-단계들은 ‘The C1 to C6 Spectrum: A Practical Guide for Defining Six Types of ‘Christ-Centered Communities’ (‘C’) Formed in Muslim Contexts’ in Evangelical Missions Quarterly 34(4): 1998, pp. 407-408에 기록되어 있다. 트래비스 자신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선교 실천가들이 C-단계들로부터 떠나고 있고, 적어도 C-5와 ‘내부자 운동’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C5라고 부르고 있다.
[5] 특별히 이에 반대하는 비평에 대해서는 Bill Nikides, ‘Evaluating Insider Movements’, St. Francis Magazine Number 4, (March 2006). Nikides addresses Lewis’ viewpoints directly on p. 11.ff을 보라. 다른 비평들에 대해서는 John Piper in discussion with John Travis and others in Mission Frontiers가 있다. John Piper, ‘An Extended Conversation About Insider Movements: Responses to the September-October 2005 Mission Frontiers’, in Mission Frontiers (January-February 2006)을 보라.
[6] 예를 들어 McGavran, Donald A., The Bridges of God (New York, Friendship Press, 1955); Pickett, J. Waskom, Christian Mass Movements in India (New York, Abingdon Press, 1933)을 보라.
[7] 나는 교회가 내부자 운동에 갖는 관계의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좀 다른 관점에서 다루어보려고 한다 Kevin Higgins, ‘Identity, Integrity, and Insider
Movements: A brief Paper Inspired by Timothy C. Tennent’s Critique of C5 Thinking’.
Kevin Higgins, ‘Acts 15 and Insider Movements Among Muslims: Questions, Process,
and Conclusions’, in IJFM (24:1, Spring 2007).
[8] 나의 관점으로는 내부자 운동이 교회의 형태가 없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문제를 Tennent의 글 에 대한 나의 답에서 설명해 놓았다. Higgins, IJFM (Fall 2006)을 보라.
[9] Tennent은 그들이 한동안 그렇게 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와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주로 무엇이 혹은 누가 결국 발생한 분열을 시작되게 했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교회가 분열의 결과로 존재하게 되었는지(Tennent의 견해), 아니면 여전히 유대교 내에 머물고 있을 때에 이미 교회가 탄생되어 있었는지(나의 견해) 하는 것이다.
[10] 사도행전 3:1과 9:2를 보라. 바울은 다마스커스에 있는 회당에서 ‘그 도’를 따르는 자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자신을 회당 지도자들에게 추천해 줄 공문을 구하고 있었다. 후에 사도행전 21:17 후반부에서 (예수를 메시야로 따르고 있는) 유대 지도자들은 바울이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들은 많은 유대인 신자들에 대한 그들의 염려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에게 공적으로 바울이 유대인적이라는 것(즉,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라고 강권한다.
[11] Luzbetak은 문화권내에 있는 그룹들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사회 내에 기능하면서도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더 설명될 필요가 있다. Louis J. Luzbetak, S.V.D., The Church and Cultures (New York, Orbis, 1988)을 보라.
[12] 여기서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예수를 따르는 유대교 신자들’이 내부자 운동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예수를 따르는 이슬람 종교인들’과 같은 관계가 되는 지가 중요해 진다. 이 글에서 이것을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각주 15와 이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다룬 나의 이전의 글 The Key To Insider Movements: The Devoteds’ of Acts, IJFM (21:4; Winter 2004)을 추천하고 싶다.
[13] 요한복음에 관한 Whitacre의 주석(IVP 시리즈)에서 이 과정에 대한 논의를 보라. 244쪽에서 Whitacre는 회당으로부터의 분리가 1세기 후반에 일어났다고 결론짓는다. 그것은 사도행전의 여러 사건들 이후 약 한 세대에 일어난 것이다.
[14] Whitacre는 많은 학자들이 요한복음이 이미 회당에서 축출된 신자들과 아직 회당에 속해 있는 두 부류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본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 두 그룹 모두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었다. Rodney Whitacre, Johannine Polemic (SBL Dissertation Series 67, 1982), p. 19. 또한 Raymond Brown, The Community of the Beloved Disciple (Paulist Press, 1979)을 보라.
[15] 예를 들어 Nikides, 2006을 보라.
[16] 여러 가지 면에서 유대교가 이슬람과는 다르다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매우 실천적인 면에 있어서, 예수를 따르던 초기 유대인들 역시 오늘날 예수를 따르는 무슬림들이 당면 했던 것과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내부적 접근을 좋게 보지 않는 일부 사람들은, 개종자들이 여전히 모스크에 가는 한 진정한 가르침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그들은 복음과 반대되는 것을 듣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1세기 성전의 경우에도 이것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초기 운동은 그런 이유 때문에 성전에 참석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이 마치 계속해서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행위를 한 것처럼 말한 것은 언급할 가치가 있다(고전 8:10). 바울이 그런 행동을 바로 잡은 것은 다른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미칠 잠재적인 영향 때문이지, 그들이 정말로 이방 신전의 식탁에 참여했기 때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17] 나의 말을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도 교회가 닫힌 구조를 갖는 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위에 속한 자들과, 그리스도의 몸에 영적으로 연합한 자들만이 교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사회나 종교 구조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밀가루 반죽의 누룩과 같이 그들 속에 섞여 있으면서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18] 여기에 덧붙이기에는 좀 이상하지만, 중요한 사실이라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내부자 운동의 지도자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어떤 공식적이고 인정 받는 방식으로 역사적인 전 세계의 하나님의 사람들과 연결을 갖는 것이라는 것이다.
[19] 이 용어는 Leonard Sweet 가 처음으로 교회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Leonard
Sweet, Soul Tsumani: Sink or Swim in the New Millennium Culture (Grand Rapids, Zondervan, 1999). 선교학적인 관점에서 교회를 보편적인 것으로 유지할 필요에 대한 유익한 논의는 데이빗 보쉬의 삶을 개괄한 짧은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Timothy Yates, ‘David Bosch: South African Context, Universal Missiology – Ecclesiology in the Emerging Missionary Paradigm’, in IBMR (Vol. 33, Nr. 2, April 2009), pp. 72ff.
2009년 7월 28일 화요일
이븐 알-아라비 : 창조에 대해서
원제: REFLECTIONS ON THE CONCEPT OF CREATION IN MUHYI’AD-DĪN IBN AL-
‛ARABĪ1
글쓴이: Phil Bourne
번역자: 소피아 김
1. 서론
소위 ‘범신론’이라고 불리는 이븐 알-아라비의 사상은 그리스도인들과 무슬림 신학자들 모두에게 많은 비판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1] 따라서 이 주제를 다시 살펴본다는 것은 오래된 논란들을 끄집어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일수도 있다. 따라서 본문을 통해 필자가 의도하는 것은, 이븐 알-아라비의 사상에 대한 찬반론을 검토하는 것보다는, 오늘날 수피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븐 알-아라비의 위치를 고려해 볼 때, 실재 reality 에 대한 근본적인 가정들을 함께 재검토해 봄으로써 오늘날 수피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싶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븐 알-아라비의 사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작업은 성경이 제시하는 실재에 대한 견해가 신비주의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러한 차이가 창조에 대한 의미와 목적에 대한 다른 관점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할 것이다.
이븐 알-아라비의 사상은 오늘날의 수피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사상 전부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신비주의의 탐색은 그가 제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창조의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좀 더 이븐 아라비에게 동정적인 저술가들은 그가 신비주의가 진정 무엇인가에 대해 종교간의 이해를 돕는데 기여하였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이븐 알-아라비는 살아 생전에 수피즘에 대한 철학적 기반을 제시하였고, 이는 동서양 간에 이전에는 있을 수 없었던 방법으로 친밀감을 가져다 주었다. 이 바탕위에 무언가를 세워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바탕이 반석같이 견고한 것인지 아니면 모래 위에 세우는 것인지를 먼저 질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창조
그렇다면 이븐 알-아라비가 말한 창조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매우 방대한 주제이고 따라서 이 짧은 글에 모든 것을 다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글들은 그 본질적인 부분들을 설명할 것이며, 이븐 알-아라비가 어떻게 창조를 이해했고, 신비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였는지 알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이븐 알-아라비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에서 1165년 (1165AD/560AH)에 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그는 광범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며, 젊을 때에 이미 수피즘을 향한 길에 들어섰다. 그는 스페인과 북아프리카를 돌아다니면서 지식을 추구하고, 경건과 지식에 명성을 얻었다. 1201년(598AH)에 비전을 보고 그는 서구를 떠나 동양으로 여행하기로 결심한 후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첫 목표는 메카였다. 거기에서 그는 몇 번의 매우 중요한 영적인 만남을 가지고, 그의 영적 탐색에 한 층 깊은 이해를 갖게 된다. 카바를 순회하면서 신비주의적 경험을 한 결과로 그는 광범위한 지식을 담은 al-Futū}hāt al-Makkiyyah[2]를 저술하기 시작하는데 그가 주장하기는 그것이 어떤 변증론이나 당대 학문을 요약한 것이 아니라, 계시에 가까운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하나님이 나의 증언자이시며, 나는 다음과 같이 맹세한다. 나는 신이 명하신 것 이외에는 단 한 글자도 적지 않았으며, 깊은 심중에서 일어나는 숭고한 영감만을 기록하였다. 내 심중에 있는 신의 영으로부터 온 영감에서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3]
메카를 떠난 후에 그는 중동의 여러곳을 방문하면서 종종 1207/604년과, 1210/607년, 1214/611년에 다시 메카로 돌아오곳 했다. 결국 그는 1223/620년에 다마스커스에 자리를 잡고 1240/638년에 생을 마감했다.
이븐 아라비가 이해한 실재, 즉 창조는 전통있는 하디스 H}adīth al-Qudsī 인 ‘나는 숨겨진 보물이다. 나는 알려지기를 갈망한다. 나는 알려지기 위해 창조를 했다. I was a hidden Treasure and I yearned to be known. Then I created creatures in order to be known by them’에서 시작된다.[4] 하나님의 슬픔(pathos)과 스스로를 계시하고자 하는 원함이 창조의 동기가 되며 그 중요성을 가늠하게 한다. 하나님의 한숨이 구름을 만들어냈으며 그로부터 다른 창조물들이 생겨났다. 이븐 알-아라비의 작품은 당시의 지배적인 과학적 파라다임에 있어서 플라톤주의와 꾸란의 유산에 각각 동등한 무게를 둔다. 10세기 지중해 세계의 과학과 대부분의 다른 지식들은 플라톤주의가 아니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이븐 러쉬드 Ibn Rushd 의 영양으로 인해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d. 1274)의 작품에서 유럽의 기독교세계에 반영된 운동이다. 유럽의 기독교세계는 라틴어로 번역된 아랍어 작품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븐 알-아라비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수피즘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하려는 자신의 목적에 맞지 않을것을 곧바로 인식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영적인 만남이 실제로 초자연적인 것들과의 실재 만남이 되는 신비주의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영혼 soul’의 개념을 지성의 근본적인 요소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반면에 플라톤주의는 어떤 자연적 과정으로 인해 우주가 발산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창조해내었다고 가정하고 있었다. 이븐 알-아라비의 궁극적 의지 ultimate will 와 하나님의 원함에 대한 이해는 여기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창조는 하나님의 원함 즉, 그의 창조물과 함께 느끼는 공감 sympathy이 표현된 것이 되는 것이다. 이 함께 하는 감정은 창조물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 되도록 하며, 그 사랑은 그의 창조물들이 그의 신적 존재를 반영하도록 함으로써 다시 한 번 표현된다.
그러나 이는 그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이븐 알-아라비 역시 하나님 즉, 신의 본질을 전혀 다른 것으로 보았다. 아무도 표현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보고 있다. 정통 이슬람이 지적하듯이, 그의 창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을 알수도 없고, 그를 기술할 수도 없다. 그는 그의 창조물 어느 것과도 다른 분이시다. 그러나 이슬람 학자들이 ‘하나님은 어떤 어떤 분이 아니시다’라는 진술을 넘어서는 더 나아갈 수 없도록 스스로 제한한 한편, 이븐 알-아라비의 플라톤주의는 그가 그 딜레마를 넘어설 수 있도록 도왔다. 창조는 저편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즉, 신적 존재[5]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신과 창조된 세계 사이에는 일련의 신의 자기 계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계시는 플라톤주의에서 말하듯 일련의 발산[6], 즉 존재의 확장이라기 보다는 일련의 신의 현현이다. 즉, 신의 본질의 어떤 부분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신비주의자들이 깊이 생각하고 신으로써 숭배하는 것은 신의 본질 그 자체가 아니라, 그의 이미지대로 창조된 것들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신적 존재의 일면이다. 그것이 바로 신의 이름들이다. 이런 식으로 이븐 알-아라비는 정통 이슬람내에 머물면서 그 한계를 뛰어 넘어 우리가 하나님을 알수는 없지만 그의 이름들을 통해서 그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역설적으로 보는 것의 바탕위에 신에 대한 신비주의적 경험이 실재가 되는 수피즘의 이론이 서 있는 것이다.
이븐 알-아라비는 실재를 일반적인 사물에 자리잡고 있는 것들로 그리고 있으며, 신과 그의 창조물 사이에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본다. 그가 이 구조를 그리고 있는 방법이 모든 자세한 사항들에 있어서 항상 일관적이지는 않으며,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의 원함은 ‘이름들’을 발산해 냈고, 각 이름은 서로 다른 독특한 신의 본질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름들’ 역시 알려지기를 원하고 있고, 이 원함은 더 나아가 일련의 사물들 즉, 존재하는 단계에 있는 것들에 신의 현현으로 나타난다. 이 이름들에 더하여, 이 사물들은 영들의 천사와도 같은 세계, 각 영혼의 세계, 아이디어와, 이미지와,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물질 세계에 속한 세계이다.[7]
이러한 접근은 신의 본질과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 세계 사이에 여전히 거리가 존재하는 이점이 있다.(수피즘은 범신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확실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역자주) 또한 플라톤주의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구별 즉, 영과 혼은 물질 세계보다 월등하다는 구별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또한, 꿈과 정신 이미지의 심리 세계를 설명해 준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들은 아이디어의 세계에서 실재로 존재한다. 그래서 신비주의자들의 비전은 실재이고 단순한 공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한 비전을 추구하는 것은 신의 본질에 있는 우리의 진정한 기원origin으로 가까이가고, 그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일부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비주의의 핵심을 보게 된다. 신비주의자의 목적은 창조의 깊이와 높이를 헤아려보는 것이고, 그 모든 것에 있어서 개인의 역할과 목표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있는 하디스 (H}adīth al-Qudsī)로 돌아가서 시작했다. 신이 알려지기를 원한다면, 신은 어떻게 그것을 이룰 것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좀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긴 했지만, 신은 그의 제자들이 신에 대해 알고있는 지식만큼 스스로를 안다. 제자들은 신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수 없다: 신의 본질은 알려지지 않은 채 있다. 사실 그런 지식은 심지어 가장 위대한 신비주의자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각은 그가 창조된 신의 이름에 계시된 신의 측면에 대해서만큼은 알고 있다.
이는 모든 것이 신이라는 범신론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븐 알-아라비는 신비주의 경험을 서술할 때 창조자와 창조물, 즉 주인 the Lord 과 그의 종 his vassal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일반적인 친교, 즉 신과 그의 제자 disciple 사이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창조물에 합당한 역할이 있고, 신에 합당한 역할이 있다. 제자는 신의 자기 계시를 통해서 신을 알고, 신은 제자가 신의 그 자기 계시에 반응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안다. 이는 존재론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과 그의 종 사이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게 된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우리가 Corbin이 ‘신이 현현하는 기도의 방법 Method of Theophanic Prayer’[8]이라는 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는 신비주의적 헌신/기도(devotion)의 정점에 이를 때 더욱 그러하다. 이 기도를 수라 화타하 장에 기초하여 반응하는 하나의 기도문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제자는 기도하고 신은 반응한다; 각각은 상대방의 기도에 반응하는 것이다. 또한 각각은 리더와 응답자의 역할을 취한다. 창조 질서와 반대되는 방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븐 알-아라비는 ‘기도하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 이라는 두 가지 뜻을 모두 가지고 있는 ‘알-무쌀리’라는 단어의 뜻을 깊이 음미하고서 이 놀라운 결과에 이른다.[9]
이는 우리의 존재가 신과 합체된다는 뜻은 아니다. 신과 우리의 존재는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신의 역할과 제자의 역할이 혼동될 수는 있다. 즉, 제자가 신의 역할을 취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만큼이나, 신도 제자의 역할을 취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Corbin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이처럼 신이 무살리 ‘기도하는 사람’ 과 ‘마지막에 오는’ 자가 될 때, 신은 ‘마지막’ 즉 ‘계시된 분’ 이라는 그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그 자신을 나타내 보인다. 신의 현현은 그가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그 신실한 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즉, 그 신실한 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신이 자신을 나타내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 역자주) ‘우리를 향해 기도하는 신’이란 다시 말해 우리 앞에 현현한 신이다… 그 신은 그 신실한 자가 묵상이나 깊은 숙고를 통해서든지, 그가 확신하고 굳게 붙드는 특별한 신앙에 의해서 자기 마음에 만들어낸 신이다. 따라서 그 신은 ‘신자의 마음에 만들어내진 신’ 즉, 결정하고, 수용자의 역량에 따라 개별화된 신이며, 그의 혼은 신이 현현한 것이고, 그는 이런 저런 이름을 가질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자비, 공의, 능력 등등의 99가지로 정하고 있다 – 역자주). 이런 의미에서 ‘우리를 향해 기도하는 신’은 ‘우리의 존재’ 이후의 것이다. 즉, 우리의 존재 다음에 오는 것이고, 우리의 존재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 신은 우리의 신의 현현이 신으로 확립한 신이다. 왜냐하면 숭배받는 자는 숭배하는 자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숭배받는 자는 숭배하는 자에게 자신을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은 ‘마지막’이고, ‘계시된 분’이다. 이렇게 볼 때 ‘처음’ 이라는 신의 이름과, ‘숨겨진 자’라는 신의 이름은 신실하게 신을 좇는 사람들에게도 적당한 이름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는 자’가 될 때, ‘마지막’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도 어울리는 이름이다. 우리는 신의 다음에 온 자들이고, 신 이후의 사람들이다. 이 경우에 우리는 신이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사람들이 된다. (왜냐하면 ‘숨겨진 보물’인 신은 알려지기를 원하고, 사물 안에 그 자신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신은 우리보다 속행하는 신이고, ‘처음’ 이다. 그러나 이 모든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숨겨진 보물’(즉, 신 – 역자주)이 신비의 세계로부터 무한한 신의 이름들의 다양성 안에서 여러 믿음의 형태로 실재하는 존재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그것들이다. 그 분은 숨겨진 분이고, 계시된 분이고, 처음이고, 마지막이다.[10]
이런 의미에서 각각은 창조자가 되고, 창조물이 된다. 각각은 창조하고, 신의 현현의 차원에서 이해된다. 종은 그 자신의 이미지 안에 주님 즉, 신앙의 신, 그 자신의 개인적인 주를 창조하고, 이는 바꾸어 말하면, 신이 그를 창조했던 바로 그 형태이다. 이는 신의 형태를 실재화하는 것이고 따라서, 신은 제자 안에서 그리고 제가가 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 안에서 신 스스로를 알 수 있다.
위에서 인용한 이븐 알-아라비의 글은 그가 ‘신의 현현으로서의 창조’에서 그가 의미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중요한 것은 창조된 형태가 아니라, 창조는 신의 본질의 계시이고, 그 계시 안에서 신의 본질은 스스로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신은 그의 목적을 이루어 낸다. 즉, 제자를 통해서 그 자신을 알고, 창조의 싸이클을 완성시킨다. 즉, 신은 그가 제자 안에서 그리고 제자를 통해서 그 자신을 안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이것이 모든 신비주의 경험의 목적이고 목표가 된다. 즉, 유일한 신적 존재에 대한 진정한 숭배로 표현되는 그의 창조물을 향한 신의 목적(objective)을 이해하는 것이 목표(goal)요 목적(purpose)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수피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까? 나는 할 말이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최근들어 Tom Wright의 책 ‘희망에 놀라다’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창조의 물질적인 상태를 다시 강조하고 부활후에 유사하지만 변형된 물질의 존재에 대해 말한다. 많은 부분에서 그는 서구 기독교가 플라톤의 안경을 쓰고 성경을 읽는 것에 비판을 가한다. 서구 기독교는 미래에 우리는 육체를 가지지 않은 존재가 될 것이고, 우리의 존재의 본질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혼’이라고 말했던 것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직 우리의 혼만이 죽음에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Wright는 신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신약의 많은 부분에서 구속의 의미와 중요성이 ‘육체의 구속’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고 보고(로마서 8:23), 또한, 육체의 부활을 새로운 삶으로 보고 있다고 본다(에베소서 4:30). 여기서 부활은 물론 본질적으로 물질적인 어떤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의 현재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다름아닌 육체인 것이다. 계시의 마지막 드라마에서 우리는 하늘로 들려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하늘이 내려와서 하나님의 임재가 사람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계시록21장을 보라.) 그리스도인들이 공중에서 그들의 주님과 만나는 장면은 단지 환영 인사일 뿐이다. 예수는 이 땅으로 다시 오고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오신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다. 여기서 Wrights의 주장을 다시 되풀이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나는 그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지적하고 있다고 본다.
하나님은 4차원의 시공연속체인 이 세상과,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 언제가 없애버리려고 그러신 것이 아니라, 아마도 그 분의 목적은 더욱 풍성한 결실이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 목적의 일부는 땅에 사람이 살게 하는 것이었고, 그 사람들은 창조의 과정에서 그와 함께 할 사람들이었다. 진실로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는 하나님은 알려지기를 원하시는 분이고 또한 동시에 알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그가 창조물과 맺으시는 관계는 스스로가 알려지기 원해서 생겨난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다. 우리는 사실 창조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무엇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는 이븐 알-아라비가 ‘목표’로 세워놓은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븐 알-아라비에게 있어서 종말은 미래에 일어날 일련의 사건들 중에 하나가 아니다. 그에게 그것은 ‘항상 존재하는, 신이 미리 짜 놓은 구조이고 상황이며, ‘이 낮은 세상’에서 인간의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고 궁극적인 영적 운명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삶을 인식해 본다면 그것은 인간이 깨달음을 얻어 그 자신의 원초적인 실재로 온전히 돌아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11]
다시 말해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영원한 돌아감에 대한 신화의 한 종류에 불과한 것이다. 한 개인으로서 우리의 목적은 우리의 주님과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신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그분에게로 되돌아 간다.”(꾸란11) 그것을 안다면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분에게 돌아가라. 이를 피할 길이 없으며 반드시 그 분에게로 돌아가야만 한다.’[12] 이 돌아감은 존재론적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헌신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는 우리의 목적을 완성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우리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븐 알-아라비에 의하면 영적 단계에 높이 올라간 수피들에게는 죽음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들은 이미 영원에서 궁극적으로 이루게 될 신과의 합일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꾸란이 부활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오직 이 삶에서 아직 신의 역량에 미치지 못한 자들만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무함마드와 연계되거나 혹은 그들이 무슨 신을 섬겼던 그 신과 연계되는 것을 통해 보상을 받게 된다. 이는 낙원이라고 불리는 ‘장소’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육체를 통해 그들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자들에게 얼마만큼 그것이 끌리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 든다. 이븐 알-아라비는 이 문제를 하킴 알-티르미디의 일흔 한번째 질문인 ‘모든 개인이 그의 주님과 함께 나누는 것은 그가 어느만큼 지식을 가지고 있고, 신앙의 계열과, 그 차이, 그 적고 많음 가운데에서 그가 무엇을 믿느냐에 달려있다.’[13]에 대한 응답에서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일 뿐이고, 또 그렇게 남을 것이다.
3 아름다움과 불완전함 beauty and brokenness
이븐 알-아라비가 보는 하나님은 아름다운신 분이고, 아름다움 가운데 계시된다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중요한 영적 일면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al-futūh}āt al-makkīyah 에서 Corbin이 철학적 시라고 표현했던 그 부분일 것이다.[14] 열렬한 소망의 설명자 the Interpreter of Ardent Desires 라고 제목이 붙은 이 시는 이븐 알-아라비가 메카에 머무는 동안 환영을 받았던 집 주인 자히르 이븐 루스탐의 딸인 니잠에게 느꼈던 감정을 반영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시는 단순한 사랑의 시인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당시의 사람들 중에도 그렇게 본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 이븐 알-아라비가 이 시의 구절들에 대해 쓴 주석에서 그는 그것을 하나님을 향한 그의 소망의 기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그 소녀에 대해 느꼈던 자연스러운 감정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녀는 그가 영적 탐색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이 되었다. 코빈은 신비주의에서 사랑이란 일반적으로 느끼는 자연적인 사랑과 영적 사랑의 합일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 소녀의 역할을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베아트리체에 비교한다.[15] 육체적인 갈망의 대상이 신을 향한 문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븐 알-아라비는 Fas}ūs} al-H}ikam의 마지막 장에서 이를 확실히 하고 있다: “신비주의자는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가장 고차원적인 신의 비전을 얻게 된다. 창조된 여성‘Creative Feminine’ 은 창조물로서 신의 가장 고차원적인 표현 즉, 창조적인 신성 creative divinity 을 숙고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16]
이러한 사고는 기독교 수도자들을 분개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에 깜짝 놀라서 외떨어진 사막의 암자로 달려가는 수도자들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영적인 사랑과 일반적인 사랑 사이의 조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성경적 시각으로 보았을 때의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다.
The Fas}ūs} al-H}ikam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모든 것에서 선한 것, 본질적으로 오직 선한 것만을 사랑하도록 통찰력을 주신다.’[17]고 말한다. 하지만 기독교적 시각에서도 이것이 맞는 말일까? 창조가 오직 선하고 오직 아름다운 것이기만 할까? 이 문제는 우리가 악과 불완전한 것의 기원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그가 창조하신 물질적인 것들이 ‘좋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불완전한 것의 기원은 영적인 것, 사단의 반항에서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가 하나님이 의도하신대로 선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악한 영이 패해야 하는 것이다. 비록 이슬람이 성경이 의미하는 창조의 개념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 과거의 어떤 때에 어떤 것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 이슬람은 ‘타락’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존하는 것들의 불완전한 모습을 설명할 수가 없다. 보통 이슬람은 이러한 불완전함을 부주의함 혹은 무지의 탓으로 돌린다. 이븐 알-아라비는 플라톤적 사고방식에 기인하여 그러한 불완전함을 신적 존재에서 멀어졌기에 생기는 일로 보았다. 비록 이븐 알-아라비가 사탄의 존재를 인정하고, 특히 이슬람 법학자들인 울라마 ulamā’와 관련하여 사탄의 계략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기는 하지만,[18] 단순한 천사의 활동들이 신의 목적에 어떤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에는 저절로 해결될 문제들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불완전함의 근원이 물질적 세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천국’을 다시 얻기 위해서 궂이 창조된 상태를 없애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돌아가야 하는 곳은 현실에서 유리된 채 ‘천국’이라고 불리는 어떤 곳, 신이 사실 우리에게 뜻했던 어떤 영적 존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현재 세계를 다시 정비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Tom Wright 의 의견이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땅으로 내려온 하늘, 사람이 있는 곳(땅)에 하나님도 계시게(하늘) 되는 그런 식으로 땅으로 내려온 하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매우 물질적인 것이다. 이 경우에 하나님의 목적안에서 우리가 할 일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 그러한 현실적인 새로와짐이 이루어지도록 일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어떤 영적인 상태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구속을 위한 우리의 활동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것을 바로 잡는 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많은 수피 신비주의자들이 그러한 개념을 놓치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 증거는 Tom Wright 가 여러번 강조하듯이, 우리 미래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에 있다.
어떤 면에서 이 글은 밑그림에 불과하다. 이븐 알-아라비의 저술과 같이 너무나 방대한 글을 평하고, 다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단지 그가 다룬 주제들을 더 늘려놓았을 뿐, 영어로 된 그의 작품의 적은 양도 다 소화해내지 못했다. 다만 그의 저술이 제시하는 논의점들을 다루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븐 알-아라비의 창조에 대한 관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저술의 아름다움이나 그의 사고의 깊이에 감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아름다움과 깊이가 진정한 지식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참고서적
Titus Burckhardt, The Wisdom of the Prophets (Beshara Publications,
1975). An English translation, by Angela Culme-Seymour, of Burkhardt’s
French translation of some sections of Ibn al-Arabī’s fas}ūs} alh}
ikam.
Henry Corbin, Alone with the Alone: Creative Imagination of the Sūfism
of Ibn ‛Arabī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9,1997). This is based on
lectures originally given in French in 1955 and 1956.
Michael Chodkiewicz, The Meccan Revelations, Two volumes originally
published by Rothko Chapel, 1988 and reprinted by Pir Press in 2002 and
2004. These are translations by William Chittick, James Morris, Cyrille
Chodkiewicz and Denis Gil of selected passages. The second volume
contains a translation of Michael Chodkiewicz’s introduction to the
French translation of al-Futūh,āt al-Makkiyya.
Michael Chodkiewicz, Seal of the Saints: Prophethood and Sainthood in
the Doctrine of Ibn ‛Arabī, English translation of the French Original by
the Islamic Texts Society (Cambridge, 1993).
Tom Wright, Surprised by Hope (SPCK, 2007).
[1] 예를 들어 Ah}mad Sirhindi는 분명하게 이븐 알-아라비의 ‘존재 Being’ 개념을 거부한다. 참고. Muhammad Abdul Haq Ansari, Sufism and Shari‛ah (Leicester: Islamic Foundation, 1986). Sirhindi는 wah}dah al-wajūd 라는 용어를 문제 삼은 것 같다. 하지만 이븐 알-아라비 자신은 그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Ibn Taymīya (d 728/1328) 는 대대적으로 성자 숭배를 배척하였는데 이는 이븐 알-아라비의 성자 개념 sainthood에 대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개혁운동이라고 할만한 많은 운동들의 특징이 되고 있다. 참조. Michael Chodkiewicz, The Meccan Revelations (Pir Press, 1988, 2002 and 2004), pp. 8ff.
[2] al-Futū}hāt al-Makkiyyah는 보통 ‘메카에서 받은 계시 The Meccan Revelations’로 번역되는데 종종 다른 번역이 제시되기도 한다. Corbin은 Jāmī의 영향을 받아 ‘메카에서 영적으로 얻게 된 것 The Spiritual Conquests of Mecca’이라고 번역한다. 참고. Henry Corbin, Alone with the Alone: Creative Imagination of the Sūfism of Ibn ‛Arabī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9, 199), p. 357
footnote 1.
[3] Ibn al-‛Arabī, al-futūh}āt al-makkiyya: III:101 cited Meccan Revelations II:6, 또한 이는 이러한 종류의 유일한 진술이 아니다. 사실 이븐 알-아라비는 그 자신의 저술의 무질서한 순서를 꾸란에 비유한다. 꾸란의 내용은 계시될 때마다 그 의미가 통하든 통하지 않든 지정된 장소에 끼워 넣도록 되어 있었다. 순서적으로는 좀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더 깊은 세계로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첫 자료는 1329AH/1911AD에 발간된 네 권의 아랍어로된 카이로 텍스트에서 따온 것이고, 두 번째 자료는 Chodkiewicz의 두 권의 번역 및 주석서에서 따온 것이다.)
[4] Corbin, Alone with the Alone, p. 114. H}adīth Qudsī는 무함마드에게서 온 전통으로,
무함마드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학자들은 이 하디스가 믿을 만한 것인지를 놓고 논쟁의 벌이기도 하는데, 이는 다른 일반 하디스 모음에서는 나오지 않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피들은 이 구절을 매우 자주 인용하기 때문에 그 진실성 여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5] 여기서 논의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븐 알-아라비가 신의 존재를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를 말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븐 알-아라비는 신의 존재를 필연적인 존재와, 잠재적인 존재, 그리고 존재가 불가능한 존재로 나누었다. 유일하게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존재는 신 그 자신으로서 신의 본질이며, 존재가 불가능한 존재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잠재적인 존재는 바로 창조된 세계로써, 이는 하나님의 한 분의 원함과 활동에 의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 덧붙여야 할 것은, 이븐 알-아라비는 계속되는 창조를 믿었다는 것이다. 전 우주는 계속해서 순간 순간 하나님의 의지와 원함에 의해 창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순간과 다음 순간 사이에 연속성이 없으며, 잠재적으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혹은 한 순간에서 다른 순간이로 순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이는 꿈과, 비전과, 경험의 영역에 있어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게 하였다.
[6] 이븐 알-아라비는 아랍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전문 용어인, 발산 emanate 이라는 의미의 Fayyad 혹은 sadar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기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계시라는 의미인 tajallī 를 더 선호한다.
[7] Corbin, Alone with the Alone, p. 224를 보라. 메카에서 받은 계시에서 이븐 알-아라비는 신의 단계를 포함하는 다섯가지 존재의 단계를 말한다. Chodkiewicz, The Meccan Revelations I, p. 128ff을 보라.
[8] Corbin, Alone with the Alone, p. 246.
[9] 모호성은 신비주의에서 늘 있기 마련인 것 같다. 친구 라는 뜻의 왈리 walī 라는 용어 차제가 모호하다. 꾸란 45:19에서는 신의 이름을 뜻하기도 하고, 신비주의자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사 용어를 찾아보려면 Michael Chodkiewicz, Seal of the Saints: Prophethood and Sainthood in the Doctrine of Ibn ‛Arabī (Cambridge, 1993), pp. 21ff을 보라.
[10] Corbin, Alone with the Alone, pp. 265ff.
[11] James Morris in Meccan Revelations I, p. 94.
[12] Ibn al-‛Arabī, al-futūh}āt al-makkiyyah: II, p. 86 lines 19-21, translation in Meccan Revelations I, p. 124.
[13] Ibn al-‛Arabī, al-futūh}āt al-makkiyyah: III:223 from lines 8-10, translation in Meccan Revelations I, p. 105.
[14] Corbin, Alone with the Alone, pp. 136ff.
[15] 위의 책, p. 52. Chodkiewicz는 Miguel Asin Palacios가 그의 논문에서 단테가 이븐 알-아라비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부분을 미심쩍게 생각한다. 코빈은 그 논문에 동의하지만, 그 관계는 현상학적일 뿐 ‘실제적’으로 빌려온 것은 없다고 본다. 코빈의 아름다운 문구를 읽을 때는 좀 조심하는 것이 좋다. 무엇이 이븐 알-아라비가 하는 말인지, 아니면 코빈이 이븐 알-아라비에 근거한 추론을 말하는 것인지가 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가 수피들에 대해 Fedeli d’amore 라는 용어를 계속해서 사용할 때 좀 혼란스럽다. 그 용어는 단테와 그의 친구들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6] Corbin, Alone with the Alone, p. 159 Fas}ūs} al-H}ikma I, p. 217 에서 인용. Titus Burckhardt 에 있는 마지막 장의 번역의 일부인 ‘선지자들의 지혜’를 보라. (Beshara Publications, 1975), pp. 116ff, 거기에서 이븐 알-아라비는 무함마드의 향수와, 여자, 기도에 대한 사랑에 대해 말한다. 코빈이 말하는 창조된 여성 Creative Feminine’ 은 창조에 대한 또 다른 면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이 면에 있어서 코빈은 칼 융 Carl Jung 의 저술에서 지나치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칼 융의 정신 Psyche 에 대한 개념은 요즘에는 다소 구시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7] Burkhardt, Wisdom of the Prophets, p. 126.
[18] Ibn al-‛Arabī, al-futūh}āt al-makkiyya: III:67-71, in Meccan Revelations II:77ff.
‛ARABĪ1
글쓴이: Phil Bourne
번역자: 소피아 김
1. 서론
소위 ‘범신론’이라고 불리는 이븐 알-아라비의 사상은 그리스도인들과 무슬림 신학자들 모두에게 많은 비판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1] 따라서 이 주제를 다시 살펴본다는 것은 오래된 논란들을 끄집어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일수도 있다. 따라서 본문을 통해 필자가 의도하는 것은, 이븐 알-아라비의 사상에 대한 찬반론을 검토하는 것보다는, 오늘날 수피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븐 알-아라비의 위치를 고려해 볼 때, 실재 reality 에 대한 근본적인 가정들을 함께 재검토해 봄으로써 오늘날 수피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싶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븐 알-아라비의 사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작업은 성경이 제시하는 실재에 대한 견해가 신비주의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러한 차이가 창조에 대한 의미와 목적에 대한 다른 관점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할 것이다.
이븐 알-아라비의 사상은 오늘날의 수피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사상 전부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신비주의의 탐색은 그가 제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창조의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좀 더 이븐 아라비에게 동정적인 저술가들은 그가 신비주의가 진정 무엇인가에 대해 종교간의 이해를 돕는데 기여하였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이븐 알-아라비는 살아 생전에 수피즘에 대한 철학적 기반을 제시하였고, 이는 동서양 간에 이전에는 있을 수 없었던 방법으로 친밀감을 가져다 주었다. 이 바탕위에 무언가를 세워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바탕이 반석같이 견고한 것인지 아니면 모래 위에 세우는 것인지를 먼저 질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창조
그렇다면 이븐 알-아라비가 말한 창조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매우 방대한 주제이고 따라서 이 짧은 글에 모든 것을 다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글들은 그 본질적인 부분들을 설명할 것이며, 이븐 알-아라비가 어떻게 창조를 이해했고, 신비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였는지 알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이븐 알-아라비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에서 1165년 (1165AD/560AH)에 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그는 광범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며, 젊을 때에 이미 수피즘을 향한 길에 들어섰다. 그는 스페인과 북아프리카를 돌아다니면서 지식을 추구하고, 경건과 지식에 명성을 얻었다. 1201년(598AH)에 비전을 보고 그는 서구를 떠나 동양으로 여행하기로 결심한 후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첫 목표는 메카였다. 거기에서 그는 몇 번의 매우 중요한 영적인 만남을 가지고, 그의 영적 탐색에 한 층 깊은 이해를 갖게 된다. 카바를 순회하면서 신비주의적 경험을 한 결과로 그는 광범위한 지식을 담은 al-Futū}hāt al-Makkiyyah[2]를 저술하기 시작하는데 그가 주장하기는 그것이 어떤 변증론이나 당대 학문을 요약한 것이 아니라, 계시에 가까운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하나님이 나의 증언자이시며, 나는 다음과 같이 맹세한다. 나는 신이 명하신 것 이외에는 단 한 글자도 적지 않았으며, 깊은 심중에서 일어나는 숭고한 영감만을 기록하였다. 내 심중에 있는 신의 영으로부터 온 영감에서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3]
메카를 떠난 후에 그는 중동의 여러곳을 방문하면서 종종 1207/604년과, 1210/607년, 1214/611년에 다시 메카로 돌아오곳 했다. 결국 그는 1223/620년에 다마스커스에 자리를 잡고 1240/638년에 생을 마감했다.
이븐 아라비가 이해한 실재, 즉 창조는 전통있는 하디스 H}adīth al-Qudsī 인 ‘나는 숨겨진 보물이다. 나는 알려지기를 갈망한다. 나는 알려지기 위해 창조를 했다. I was a hidden Treasure and I yearned to be known. Then I created creatures in order to be known by them’에서 시작된다.[4] 하나님의 슬픔(pathos)과 스스로를 계시하고자 하는 원함이 창조의 동기가 되며 그 중요성을 가늠하게 한다. 하나님의 한숨이 구름을 만들어냈으며 그로부터 다른 창조물들이 생겨났다. 이븐 알-아라비의 작품은 당시의 지배적인 과학적 파라다임에 있어서 플라톤주의와 꾸란의 유산에 각각 동등한 무게를 둔다. 10세기 지중해 세계의 과학과 대부분의 다른 지식들은 플라톤주의가 아니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이븐 러쉬드 Ibn Rushd 의 영양으로 인해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d. 1274)의 작품에서 유럽의 기독교세계에 반영된 운동이다. 유럽의 기독교세계는 라틴어로 번역된 아랍어 작품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븐 알-아라비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수피즘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하려는 자신의 목적에 맞지 않을것을 곧바로 인식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영적인 만남이 실제로 초자연적인 것들과의 실재 만남이 되는 신비주의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영혼 soul’의 개념을 지성의 근본적인 요소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반면에 플라톤주의는 어떤 자연적 과정으로 인해 우주가 발산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창조해내었다고 가정하고 있었다. 이븐 알-아라비의 궁극적 의지 ultimate will 와 하나님의 원함에 대한 이해는 여기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창조는 하나님의 원함 즉, 그의 창조물과 함께 느끼는 공감 sympathy이 표현된 것이 되는 것이다. 이 함께 하는 감정은 창조물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 되도록 하며, 그 사랑은 그의 창조물들이 그의 신적 존재를 반영하도록 함으로써 다시 한 번 표현된다.
그러나 이는 그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이븐 알-아라비 역시 하나님 즉, 신의 본질을 전혀 다른 것으로 보았다. 아무도 표현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보고 있다. 정통 이슬람이 지적하듯이, 그의 창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을 알수도 없고, 그를 기술할 수도 없다. 그는 그의 창조물 어느 것과도 다른 분이시다. 그러나 이슬람 학자들이 ‘하나님은 어떤 어떤 분이 아니시다’라는 진술을 넘어서는 더 나아갈 수 없도록 스스로 제한한 한편, 이븐 알-아라비의 플라톤주의는 그가 그 딜레마를 넘어설 수 있도록 도왔다. 창조는 저편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즉, 신적 존재[5]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신과 창조된 세계 사이에는 일련의 신의 자기 계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계시는 플라톤주의에서 말하듯 일련의 발산[6], 즉 존재의 확장이라기 보다는 일련의 신의 현현이다. 즉, 신의 본질의 어떤 부분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신비주의자들이 깊이 생각하고 신으로써 숭배하는 것은 신의 본질 그 자체가 아니라, 그의 이미지대로 창조된 것들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신적 존재의 일면이다. 그것이 바로 신의 이름들이다. 이런 식으로 이븐 알-아라비는 정통 이슬람내에 머물면서 그 한계를 뛰어 넘어 우리가 하나님을 알수는 없지만 그의 이름들을 통해서 그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역설적으로 보는 것의 바탕위에 신에 대한 신비주의적 경험이 실재가 되는 수피즘의 이론이 서 있는 것이다.
이븐 알-아라비는 실재를 일반적인 사물에 자리잡고 있는 것들로 그리고 있으며, 신과 그의 창조물 사이에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본다. 그가 이 구조를 그리고 있는 방법이 모든 자세한 사항들에 있어서 항상 일관적이지는 않으며,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의 원함은 ‘이름들’을 발산해 냈고, 각 이름은 서로 다른 독특한 신의 본질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름들’ 역시 알려지기를 원하고 있고, 이 원함은 더 나아가 일련의 사물들 즉, 존재하는 단계에 있는 것들에 신의 현현으로 나타난다. 이 이름들에 더하여, 이 사물들은 영들의 천사와도 같은 세계, 각 영혼의 세계, 아이디어와, 이미지와,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물질 세계에 속한 세계이다.[7]
이러한 접근은 신의 본질과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 세계 사이에 여전히 거리가 존재하는 이점이 있다.(수피즘은 범신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확실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역자주) 또한 플라톤주의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구별 즉, 영과 혼은 물질 세계보다 월등하다는 구별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또한, 꿈과 정신 이미지의 심리 세계를 설명해 준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들은 아이디어의 세계에서 실재로 존재한다. 그래서 신비주의자들의 비전은 실재이고 단순한 공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한 비전을 추구하는 것은 신의 본질에 있는 우리의 진정한 기원origin으로 가까이가고, 그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일부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비주의의 핵심을 보게 된다. 신비주의자의 목적은 창조의 깊이와 높이를 헤아려보는 것이고, 그 모든 것에 있어서 개인의 역할과 목표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있는 하디스 (H}adīth al-Qudsī)로 돌아가서 시작했다. 신이 알려지기를 원한다면, 신은 어떻게 그것을 이룰 것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좀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긴 했지만, 신은 그의 제자들이 신에 대해 알고있는 지식만큼 스스로를 안다. 제자들은 신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수 없다: 신의 본질은 알려지지 않은 채 있다. 사실 그런 지식은 심지어 가장 위대한 신비주의자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각은 그가 창조된 신의 이름에 계시된 신의 측면에 대해서만큼은 알고 있다.
이는 모든 것이 신이라는 범신론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븐 알-아라비는 신비주의 경험을 서술할 때 창조자와 창조물, 즉 주인 the Lord 과 그의 종 his vassal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일반적인 친교, 즉 신과 그의 제자 disciple 사이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창조물에 합당한 역할이 있고, 신에 합당한 역할이 있다. 제자는 신의 자기 계시를 통해서 신을 알고, 신은 제자가 신의 그 자기 계시에 반응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안다. 이는 존재론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과 그의 종 사이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게 된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우리가 Corbin이 ‘신이 현현하는 기도의 방법 Method of Theophanic Prayer’[8]이라는 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는 신비주의적 헌신/기도(devotion)의 정점에 이를 때 더욱 그러하다. 이 기도를 수라 화타하 장에 기초하여 반응하는 하나의 기도문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제자는 기도하고 신은 반응한다; 각각은 상대방의 기도에 반응하는 것이다. 또한 각각은 리더와 응답자의 역할을 취한다. 창조 질서와 반대되는 방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븐 알-아라비는 ‘기도하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 이라는 두 가지 뜻을 모두 가지고 있는 ‘알-무쌀리’라는 단어의 뜻을 깊이 음미하고서 이 놀라운 결과에 이른다.[9]
이는 우리의 존재가 신과 합체된다는 뜻은 아니다. 신과 우리의 존재는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신의 역할과 제자의 역할이 혼동될 수는 있다. 즉, 제자가 신의 역할을 취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만큼이나, 신도 제자의 역할을 취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Corbin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이처럼 신이 무살리 ‘기도하는 사람’ 과 ‘마지막에 오는’ 자가 될 때, 신은 ‘마지막’ 즉 ‘계시된 분’ 이라는 그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그 자신을 나타내 보인다. 신의 현현은 그가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그 신실한 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즉, 그 신실한 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신이 자신을 나타내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 역자주) ‘우리를 향해 기도하는 신’이란 다시 말해 우리 앞에 현현한 신이다… 그 신은 그 신실한 자가 묵상이나 깊은 숙고를 통해서든지, 그가 확신하고 굳게 붙드는 특별한 신앙에 의해서 자기 마음에 만들어낸 신이다. 따라서 그 신은 ‘신자의 마음에 만들어내진 신’ 즉, 결정하고, 수용자의 역량에 따라 개별화된 신이며, 그의 혼은 신이 현현한 것이고, 그는 이런 저런 이름을 가질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자비, 공의, 능력 등등의 99가지로 정하고 있다 – 역자주). 이런 의미에서 ‘우리를 향해 기도하는 신’은 ‘우리의 존재’ 이후의 것이다. 즉, 우리의 존재 다음에 오는 것이고, 우리의 존재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 신은 우리의 신의 현현이 신으로 확립한 신이다. 왜냐하면 숭배받는 자는 숭배하는 자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숭배받는 자는 숭배하는 자에게 자신을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은 ‘마지막’이고, ‘계시된 분’이다. 이렇게 볼 때 ‘처음’ 이라는 신의 이름과, ‘숨겨진 자’라는 신의 이름은 신실하게 신을 좇는 사람들에게도 적당한 이름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는 자’가 될 때, ‘마지막’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도 어울리는 이름이다. 우리는 신의 다음에 온 자들이고, 신 이후의 사람들이다. 이 경우에 우리는 신이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사람들이 된다. (왜냐하면 ‘숨겨진 보물’인 신은 알려지기를 원하고, 사물 안에 그 자신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신은 우리보다 속행하는 신이고, ‘처음’ 이다. 그러나 이 모든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숨겨진 보물’(즉, 신 – 역자주)이 신비의 세계로부터 무한한 신의 이름들의 다양성 안에서 여러 믿음의 형태로 실재하는 존재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그것들이다. 그 분은 숨겨진 분이고, 계시된 분이고, 처음이고, 마지막이다.[10]
이런 의미에서 각각은 창조자가 되고, 창조물이 된다. 각각은 창조하고, 신의 현현의 차원에서 이해된다. 종은 그 자신의 이미지 안에 주님 즉, 신앙의 신, 그 자신의 개인적인 주를 창조하고, 이는 바꾸어 말하면, 신이 그를 창조했던 바로 그 형태이다. 이는 신의 형태를 실재화하는 것이고 따라서, 신은 제자 안에서 그리고 제가가 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 안에서 신 스스로를 알 수 있다.
위에서 인용한 이븐 알-아라비의 글은 그가 ‘신의 현현으로서의 창조’에서 그가 의미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중요한 것은 창조된 형태가 아니라, 창조는 신의 본질의 계시이고, 그 계시 안에서 신의 본질은 스스로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신은 그의 목적을 이루어 낸다. 즉, 제자를 통해서 그 자신을 알고, 창조의 싸이클을 완성시킨다. 즉, 신은 그가 제자 안에서 그리고 제자를 통해서 그 자신을 안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이것이 모든 신비주의 경험의 목적이고 목표가 된다. 즉, 유일한 신적 존재에 대한 진정한 숭배로 표현되는 그의 창조물을 향한 신의 목적(objective)을 이해하는 것이 목표(goal)요 목적(purpose)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수피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까? 나는 할 말이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최근들어 Tom Wright의 책 ‘희망에 놀라다’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창조의 물질적인 상태를 다시 강조하고 부활후에 유사하지만 변형된 물질의 존재에 대해 말한다. 많은 부분에서 그는 서구 기독교가 플라톤의 안경을 쓰고 성경을 읽는 것에 비판을 가한다. 서구 기독교는 미래에 우리는 육체를 가지지 않은 존재가 될 것이고, 우리의 존재의 본질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혼’이라고 말했던 것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직 우리의 혼만이 죽음에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Wright는 신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신약의 많은 부분에서 구속의 의미와 중요성이 ‘육체의 구속’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고 보고(로마서 8:23), 또한, 육체의 부활을 새로운 삶으로 보고 있다고 본다(에베소서 4:30). 여기서 부활은 물론 본질적으로 물질적인 어떤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의 현재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다름아닌 육체인 것이다. 계시의 마지막 드라마에서 우리는 하늘로 들려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하늘이 내려와서 하나님의 임재가 사람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계시록21장을 보라.) 그리스도인들이 공중에서 그들의 주님과 만나는 장면은 단지 환영 인사일 뿐이다. 예수는 이 땅으로 다시 오고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오신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다. 여기서 Wrights의 주장을 다시 되풀이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나는 그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지적하고 있다고 본다.
하나님은 4차원의 시공연속체인 이 세상과,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 언제가 없애버리려고 그러신 것이 아니라, 아마도 그 분의 목적은 더욱 풍성한 결실이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 목적의 일부는 땅에 사람이 살게 하는 것이었고, 그 사람들은 창조의 과정에서 그와 함께 할 사람들이었다. 진실로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는 하나님은 알려지기를 원하시는 분이고 또한 동시에 알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그가 창조물과 맺으시는 관계는 스스로가 알려지기 원해서 생겨난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다. 우리는 사실 창조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무엇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는 이븐 알-아라비가 ‘목표’로 세워놓은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븐 알-아라비에게 있어서 종말은 미래에 일어날 일련의 사건들 중에 하나가 아니다. 그에게 그것은 ‘항상 존재하는, 신이 미리 짜 놓은 구조이고 상황이며, ‘이 낮은 세상’에서 인간의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고 궁극적인 영적 운명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삶을 인식해 본다면 그것은 인간이 깨달음을 얻어 그 자신의 원초적인 실재로 온전히 돌아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11]
다시 말해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영원한 돌아감에 대한 신화의 한 종류에 불과한 것이다. 한 개인으로서 우리의 목적은 우리의 주님과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신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그분에게로 되돌아 간다.”(꾸란11) 그것을 안다면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분에게 돌아가라. 이를 피할 길이 없으며 반드시 그 분에게로 돌아가야만 한다.’[12] 이 돌아감은 존재론적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헌신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는 우리의 목적을 완성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우리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븐 알-아라비에 의하면 영적 단계에 높이 올라간 수피들에게는 죽음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들은 이미 영원에서 궁극적으로 이루게 될 신과의 합일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꾸란이 부활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오직 이 삶에서 아직 신의 역량에 미치지 못한 자들만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무함마드와 연계되거나 혹은 그들이 무슨 신을 섬겼던 그 신과 연계되는 것을 통해 보상을 받게 된다. 이는 낙원이라고 불리는 ‘장소’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육체를 통해 그들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자들에게 얼마만큼 그것이 끌리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 든다. 이븐 알-아라비는 이 문제를 하킴 알-티르미디의 일흔 한번째 질문인 ‘모든 개인이 그의 주님과 함께 나누는 것은 그가 어느만큼 지식을 가지고 있고, 신앙의 계열과, 그 차이, 그 적고 많음 가운데에서 그가 무엇을 믿느냐에 달려있다.’[13]에 대한 응답에서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일 뿐이고, 또 그렇게 남을 것이다.
3 아름다움과 불완전함 beauty and brokenness
이븐 알-아라비가 보는 하나님은 아름다운신 분이고, 아름다움 가운데 계시된다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중요한 영적 일면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al-futūh}āt al-makkīyah 에서 Corbin이 철학적 시라고 표현했던 그 부분일 것이다.[14] 열렬한 소망의 설명자 the Interpreter of Ardent Desires 라고 제목이 붙은 이 시는 이븐 알-아라비가 메카에 머무는 동안 환영을 받았던 집 주인 자히르 이븐 루스탐의 딸인 니잠에게 느꼈던 감정을 반영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시는 단순한 사랑의 시인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당시의 사람들 중에도 그렇게 본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 이븐 알-아라비가 이 시의 구절들에 대해 쓴 주석에서 그는 그것을 하나님을 향한 그의 소망의 기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그 소녀에 대해 느꼈던 자연스러운 감정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녀는 그가 영적 탐색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이 되었다. 코빈은 신비주의에서 사랑이란 일반적으로 느끼는 자연적인 사랑과 영적 사랑의 합일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 소녀의 역할을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베아트리체에 비교한다.[15] 육체적인 갈망의 대상이 신을 향한 문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븐 알-아라비는 Fas}ūs} al-H}ikam의 마지막 장에서 이를 확실히 하고 있다: “신비주의자는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가장 고차원적인 신의 비전을 얻게 된다. 창조된 여성‘Creative Feminine’ 은 창조물로서 신의 가장 고차원적인 표현 즉, 창조적인 신성 creative divinity 을 숙고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16]
이러한 사고는 기독교 수도자들을 분개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에 깜짝 놀라서 외떨어진 사막의 암자로 달려가는 수도자들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영적인 사랑과 일반적인 사랑 사이의 조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성경적 시각으로 보았을 때의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다.
The Fas}ūs} al-H}ikam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모든 것에서 선한 것, 본질적으로 오직 선한 것만을 사랑하도록 통찰력을 주신다.’[17]고 말한다. 하지만 기독교적 시각에서도 이것이 맞는 말일까? 창조가 오직 선하고 오직 아름다운 것이기만 할까? 이 문제는 우리가 악과 불완전한 것의 기원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그가 창조하신 물질적인 것들이 ‘좋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불완전한 것의 기원은 영적인 것, 사단의 반항에서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가 하나님이 의도하신대로 선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악한 영이 패해야 하는 것이다. 비록 이슬람이 성경이 의미하는 창조의 개념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 과거의 어떤 때에 어떤 것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 이슬람은 ‘타락’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존하는 것들의 불완전한 모습을 설명할 수가 없다. 보통 이슬람은 이러한 불완전함을 부주의함 혹은 무지의 탓으로 돌린다. 이븐 알-아라비는 플라톤적 사고방식에 기인하여 그러한 불완전함을 신적 존재에서 멀어졌기에 생기는 일로 보았다. 비록 이븐 알-아라비가 사탄의 존재를 인정하고, 특히 이슬람 법학자들인 울라마 ulamā’와 관련하여 사탄의 계략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기는 하지만,[18] 단순한 천사의 활동들이 신의 목적에 어떤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에는 저절로 해결될 문제들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불완전함의 근원이 물질적 세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천국’을 다시 얻기 위해서 궂이 창조된 상태를 없애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돌아가야 하는 곳은 현실에서 유리된 채 ‘천국’이라고 불리는 어떤 곳, 신이 사실 우리에게 뜻했던 어떤 영적 존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현재 세계를 다시 정비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Tom Wright 의 의견이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땅으로 내려온 하늘, 사람이 있는 곳(땅)에 하나님도 계시게(하늘) 되는 그런 식으로 땅으로 내려온 하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매우 물질적인 것이다. 이 경우에 하나님의 목적안에서 우리가 할 일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 그러한 현실적인 새로와짐이 이루어지도록 일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어떤 영적인 상태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구속을 위한 우리의 활동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것을 바로 잡는 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많은 수피 신비주의자들이 그러한 개념을 놓치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 증거는 Tom Wright 가 여러번 강조하듯이, 우리 미래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에 있다.
어떤 면에서 이 글은 밑그림에 불과하다. 이븐 알-아라비의 저술과 같이 너무나 방대한 글을 평하고, 다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단지 그가 다룬 주제들을 더 늘려놓았을 뿐, 영어로 된 그의 작품의 적은 양도 다 소화해내지 못했다. 다만 그의 저술이 제시하는 논의점들을 다루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븐 알-아라비의 창조에 대한 관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저술의 아름다움이나 그의 사고의 깊이에 감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아름다움과 깊이가 진정한 지식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참고서적
Titus Burckhardt, The Wisdom of the Prophets (Beshara Publications,
1975). An English translation, by Angela Culme-Seymour, of Burkhardt’s
French translation of some sections of Ibn al-Arabī’s fas}ūs} alh}
ikam.
Henry Corbin, Alone with the Alone: Creative Imagination of the Sūfism
of Ibn ‛Arabī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9,1997). This is based on
lectures originally given in French in 1955 and 1956.
Michael Chodkiewicz, The Meccan Revelations, Two volumes originally
published by Rothko Chapel, 1988 and reprinted by Pir Press in 2002 and
2004. These are translations by William Chittick, James Morris, Cyrille
Chodkiewicz and Denis Gil of selected passages. The second volume
contains a translation of Michael Chodkiewicz’s introduction to the
French translation of al-Futūh,āt al-Makkiyya.
Michael Chodkiewicz, Seal of the Saints: Prophethood and Sainthood in
the Doctrine of Ibn ‛Arabī, English translation of the French Original by
the Islamic Texts Society (Cambridge, 1993).
Tom Wright, Surprised by Hope (SPCK, 2007).
[1] 예를 들어 Ah}mad Sirhindi는 분명하게 이븐 알-아라비의 ‘존재 Being’ 개념을 거부한다. 참고. Muhammad Abdul Haq Ansari, Sufism and Shari‛ah (Leicester: Islamic Foundation, 1986). Sirhindi는 wah}dah al-wajūd 라는 용어를 문제 삼은 것 같다. 하지만 이븐 알-아라비 자신은 그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Ibn Taymīya (d 728/1328) 는 대대적으로 성자 숭배를 배척하였는데 이는 이븐 알-아라비의 성자 개념 sainthood에 대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개혁운동이라고 할만한 많은 운동들의 특징이 되고 있다. 참조. Michael Chodkiewicz, The Meccan Revelations (Pir Press, 1988, 2002 and 2004), pp. 8ff.
[2] al-Futū}hāt al-Makkiyyah는 보통 ‘메카에서 받은 계시 The Meccan Revelations’로 번역되는데 종종 다른 번역이 제시되기도 한다. Corbin은 Jāmī의 영향을 받아 ‘메카에서 영적으로 얻게 된 것 The Spiritual Conquests of Mecca’이라고 번역한다. 참고. Henry Corbin, Alone with the Alone: Creative Imagination of the Sūfism of Ibn ‛Arabī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9, 199), p. 357
footnote 1.
[3] Ibn al-‛Arabī, al-futūh}āt al-makkiyya: III:101 cited Meccan Revelations II:6, 또한 이는 이러한 종류의 유일한 진술이 아니다. 사실 이븐 알-아라비는 그 자신의 저술의 무질서한 순서를 꾸란에 비유한다. 꾸란의 내용은 계시될 때마다 그 의미가 통하든 통하지 않든 지정된 장소에 끼워 넣도록 되어 있었다. 순서적으로는 좀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더 깊은 세계로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첫 자료는 1329AH/1911AD에 발간된 네 권의 아랍어로된 카이로 텍스트에서 따온 것이고, 두 번째 자료는 Chodkiewicz의 두 권의 번역 및 주석서에서 따온 것이다.)
[4] Corbin, Alone with the Alone, p. 114. H}adīth Qudsī는 무함마드에게서 온 전통으로,
무함마드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학자들은 이 하디스가 믿을 만한 것인지를 놓고 논쟁의 벌이기도 하는데, 이는 다른 일반 하디스 모음에서는 나오지 않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피들은 이 구절을 매우 자주 인용하기 때문에 그 진실성 여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5] 여기서 논의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븐 알-아라비가 신의 존재를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를 말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븐 알-아라비는 신의 존재를 필연적인 존재와, 잠재적인 존재, 그리고 존재가 불가능한 존재로 나누었다. 유일하게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존재는 신 그 자신으로서 신의 본질이며, 존재가 불가능한 존재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잠재적인 존재는 바로 창조된 세계로써, 이는 하나님의 한 분의 원함과 활동에 의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 덧붙여야 할 것은, 이븐 알-아라비는 계속되는 창조를 믿었다는 것이다. 전 우주는 계속해서 순간 순간 하나님의 의지와 원함에 의해 창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순간과 다음 순간 사이에 연속성이 없으며, 잠재적으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혹은 한 순간에서 다른 순간이로 순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이는 꿈과, 비전과, 경험의 영역에 있어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게 하였다.
[6] 이븐 알-아라비는 아랍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전문 용어인, 발산 emanate 이라는 의미의 Fayyad 혹은 sadar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기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계시라는 의미인 tajallī 를 더 선호한다.
[7] Corbin, Alone with the Alone, p. 224를 보라. 메카에서 받은 계시에서 이븐 알-아라비는 신의 단계를 포함하는 다섯가지 존재의 단계를 말한다. Chodkiewicz, The Meccan Revelations I, p. 128ff을 보라.
[8] Corbin, Alone with the Alone, p. 246.
[9] 모호성은 신비주의에서 늘 있기 마련인 것 같다. 친구 라는 뜻의 왈리 walī 라는 용어 차제가 모호하다. 꾸란 45:19에서는 신의 이름을 뜻하기도 하고, 신비주의자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사 용어를 찾아보려면 Michael Chodkiewicz, Seal of the Saints: Prophethood and Sainthood in the Doctrine of Ibn ‛Arabī (Cambridge, 1993), pp. 21ff을 보라.
[10] Corbin, Alone with the Alone, pp. 265ff.
[11] James Morris in Meccan Revelations I, p. 94.
[12] Ibn al-‛Arabī, al-futūh}āt al-makkiyyah: II, p. 86 lines 19-21, translation in Meccan Revelations I, p. 124.
[13] Ibn al-‛Arabī, al-futūh}āt al-makkiyyah: III:223 from lines 8-10, translation in Meccan Revelations I, p. 105.
[14] Corbin, Alone with the Alone, pp. 136ff.
[15] 위의 책, p. 52. Chodkiewicz는 Miguel Asin Palacios가 그의 논문에서 단테가 이븐 알-아라비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부분을 미심쩍게 생각한다. 코빈은 그 논문에 동의하지만, 그 관계는 현상학적일 뿐 ‘실제적’으로 빌려온 것은 없다고 본다. 코빈의 아름다운 문구를 읽을 때는 좀 조심하는 것이 좋다. 무엇이 이븐 알-아라비가 하는 말인지, 아니면 코빈이 이븐 알-아라비에 근거한 추론을 말하는 것인지가 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가 수피들에 대해 Fedeli d’amore 라는 용어를 계속해서 사용할 때 좀 혼란스럽다. 그 용어는 단테와 그의 친구들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6] Corbin, Alone with the Alone, p. 159 Fas}ūs} al-H}ikma I, p. 217 에서 인용. Titus Burckhardt 에 있는 마지막 장의 번역의 일부인 ‘선지자들의 지혜’를 보라. (Beshara Publications, 1975), pp. 116ff, 거기에서 이븐 알-아라비는 무함마드의 향수와, 여자, 기도에 대한 사랑에 대해 말한다. 코빈이 말하는 창조된 여성 Creative Feminine’ 은 창조에 대한 또 다른 면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이 면에 있어서 코빈은 칼 융 Carl Jung 의 저술에서 지나치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칼 융의 정신 Psyche 에 대한 개념은 요즘에는 다소 구시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7] Burkhardt, Wisdom of the Prophets, p. 126.
[18] Ibn al-‛Arabī, al-futūh}āt al-makkiyya: III:67-71, in Meccan Revelations II:77ff.
2009년 6월 11일 목요일
중동 여성 제자삼기
원 제: Discipling Arab Women
글쓴이: 김 사랑[1]
번역자: 양다영, 조주옥
1 서문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근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가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8-20
이 글은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이슬람 배경에서 신앙을 갖게된 이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해 적어내려간 저의 일기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이슬람 관련 주제를 다룬 전문 논문이나 여러가지 원리의 개발을 찾기위해 쓰여진 글은 아닙니다. 중동에서 6년의 사역기간동안, 출신을 불문하고 제자훈련의 핵심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서로를 또 어떻게 사랑하는 지에 대한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도우심 없이는 저의 힘으로 다른 민족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을수 없습니다.
비록 제가 거주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저의 신앙의 체험을 공개적으로 나누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최근 이슬람권에서는 기독교 신앙을 찾아가는 공동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공동체 스스로가 본국가의 타지역에서 일 할 수 있는 일꾼을 파송하여, 재정적으로 돕고 있는것을 볼 때 큰 격려가 됩니다. 이슬람권 사람들이 신앙을 갖게되어 예수님의 제자로서 성숙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일하고 계시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슬람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되는데, 여기서 몇 가지를 경우를 살펴보면서, 제자훈련사역과 새신자 양육을 하는데 그들이 미치는 영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삶을 드리기로 결심한 이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도울수 있으며, 동시에 신앙의 자유가 제한된 곳에서 어떻게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제자화하도록 가르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해답을 찾기위해 제자훈련에서 제가 했던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제자훈련를 위한 스스로의 준비라고 일컫는, 내 자신에 대해서 깨달은 부분을 나눌려고 합니다. 그 후에 새신자 제자사역 중 관계 안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에 대해 살펴보겠으며, 제자훈련과정에서 배웠던 부분을 나눔으로 마치겠습니다.
2 스스로의 준비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1:16
제자훈련에 지속적으로 연관되는 두 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과 복음의 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 과정 속에서 진전이 없어보이던지 혹은, 필요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느끼게되어 낙심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새롭게 신앙을 갖게된 이들을 양육할 때 하나님앞에 신실한 모습으로 남아 있기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임을 스스로 확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깊이 깨달았을때, 그리고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이 아버지되심을 체험하였을때, 새신자들과 함께 나의 삶을 나누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연약함에서도 편안할 수 있습니다. 이럴때에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이해하며, 생명을 변화시키는 그 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삶속에서 그 변화의 힘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자신과 다른 바탕과 경험을 가진 이들의 삶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복음과 복음의 메세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와같은 개인적인 경험과 이해 없이는 종교적인 문화만을 흉내내는것이지, 복음의 힘으로 전파하는 것이 아니기 떄문입니다.
그 밖에도 저의 여정과 준비과정에 연관된 중요한 두가지가 있는데, 둘 다 지역교회에 관한것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좋은 제자훈련의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첫번째로 현지 지역교회에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현지의 환경과 교인들이 속해있는 지역 단체나 그들의 성향 또는 현지인들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이해 증진에 도움이 됩니다. 대부분의 이슬람권에 있는 많은 교회와 마찬가지로 각 지역 교회는 그들의 환경에 맞는 교리와 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타종교의 지배 아래에서 믿음의 삶을 사는 소수 공동체로써 갖는 그들만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역 교회들과 함께 동행한다는 것은 지역 형제, 자매들을 격려하고 약함을 강하게하는 역활을 할 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함께 나눌수 있게 합니다. 개인적인 배경과 하나님과 그리고 그분의 지체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지체들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자원들을(재정 자원이 아니라) 충당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공동체와 연관이 있습니다. 저는, 지역교회의 리더 여성들을 섬기기위해 소그룹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을 하였습니다. 기도 사역에 관심이 있는 여러사람들과 함께 중보기도 모임을 시작하였는데, 우리의 기도는 우선 지역교회의 이해와 나눔에 대한 것으로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 그룹은 신뢰와 정직으로 함께 성장해갔으며, 일년 후에는 기도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지역교회나 가정의 여성리더 중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여성들과 기도에 대해 배우기를 희망하는 여성들을 세워주셨습니다. 우리가 모임을 시작하였을때는 우선 세계를 향해 특히 중동을 향한 중보자가 되기위해서 모였지만, 지금은 이 여성들이 본인이 속해있는 지역사회의 선교와 제자훈련을 감당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으며, 이 모임은 제자훈련자들을 멘토링 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공동체들은 초신자들을 제자훈련하는 과정에 있는 제가 성장하는데 큰 부분을차지 하였습니다. 지역교회는 저에게 많은것을 가르쳐 주었으며, 지역사회의 문화를 이해 할 수 있게 도왔고, 제가 양육하는 이들을 소개할 수 있는 안전한 돌봄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지역교회는 제가 제자양육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하였을때 조언을 주고 기도를 통한 통찰력을 제시해 주는 곳입니다. 제자훈련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함께 공동체 생활을 실천하고, 신앙의 기초적인 훈련에 헌신하는 본을 보이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지역 상황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 것은 모두 저의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3 새신자들과 관계의 어려움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린도전서 3:7
가부장제도 안에서 이슬람 가족이 갖는 특성은 여성들이 제자훈련에 임할때 많은 어려움을 갖게 합니다. 이로 인해 많은 여성들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그것을 매우 개인적인것으로 여기거나 혹은 비밀로 해야하며, 교제에 대해서도 극히 제한적이 되거나, 고립되게 됩니다. 특히, 이러한 것들로인해 제자훈련의 상호작용이 제한되게 됩니다. 각각의 여성들의 상황을 이해하는것이 중요하며, 양육과 가르침, 사랑과 격려와 같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도울수 있는 길을 찾아야합니다.
신앙의 가정 안의 있는 여성과, 과부나 이혼의 상황에 있는 여성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새신자들의 자녀들에게 종교적인 교육과 함께 양육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2007년도 세미나에서 20년 가까운 경험을 가진 MBB에 따르면 새신자들의 자녀를 돌보는 것이 가장 중대한 사안이며, 새신자들 양육시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성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더 고심해야 하며, 이로써 그들의 자녀들을 영적으로 양육할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실시하는 신앙관을 방해하는 종교적인 교육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어느때에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지 혹은 이야기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교육을 하지 않으면, 그들과 그 가족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논점을 다루는 것은 건강하고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양육되기 위해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새신자들을 믿음의 삶으로 양육하는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숙제로 저에게 남아있습니다.
새신자들을 믿음의 삶으로 양육하는 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보다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때때로 낙심될 때가 있지만, 한 명이 나무를 심고, 다른이가 물을 주지만, 결국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로 돌아갈 때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새신자를 양육하는 과정에 있기 전에는, 그들에게 단순히 성경을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양육하는 과정에서는 막상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 것은, 내 스스로가 약함을 통해 그들에게 믿음의 성장과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새신자들은 제가 나누는 말보다 내 삶에서 관찰되어지는 모습을 통해 믿음에 삶에 대해 더 많이 이해했습니다. 저에게 큰 도전은 그들에게 모델이 되는 믿음의 삶을 꾸준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에도 그것이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경우는 가족과 개인적인 어려움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모든이에게 통용될 수는 없겠지만 새신자들의 가족들에게 일어나는 어머니의 죽음이나, 자매들의 죽음, 암, 교통사고, 심한 요통 같은 어려움들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은 새신자의 믿음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어떤이는 제자양육에서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도전은 저에게 깊은 기도의 생활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새신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믿음, 그리고 고난에 대한 성장을 돕는 도구가 됩니다. 이는 우리가 영적인 삶에 좀 더 일찍 이러한 가르침을 구했어야 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새신자를 믿음으로 양육하는 과정에 있지만, 이러한 영적 싸움에 대면하지 않았으며, 고난이 인내의 모델이 될수 있기에 아픔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먼저 우리가 깨닫고 그 깨달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양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어려움으로 제게 다가온 것은 그들의 필요와 요구에 상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습니다. 새신자들 중에는 때로 저를 통해서 그들의 생활적, 정서적, 영적인 필요가 전부 채워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필요가 정말 절실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들의 필요를 모두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저는 가능한 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과 함께 하나님에 대해 나누는 친구의 관계임을 강조합니다. 부족한 대답인것처럼 들리지라도 의존관계를 만들기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신자의 양육을 돕기위해서 새신자들에게 좋은 기초를 다져주면서, 실질적인 많은 어려움에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는 교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복음 전파에 대한 교제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교제는 어디서나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이슬람권의 새신자들을 위해 삶을 양육할 교제는 극히 제한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4.새신자 제자훈련을 통하여 배운 교훈
새신자들을 양육하는동안 항상 염두해야 할 점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것이며, 우리들 관계안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계명 가운데 예수님의 가르침의 중심은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과 관계 안에서의 평안의 감각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의 지체간의 관계의 성장 또한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말씀의 진리 가운데 살기위해 노력하는 것은 큰 도전일 것 입니다.
저는 제가 양육하고 있는 새신자들이 제가 속해있는 공동체와 만남을 갖도록 노력합니다. 한 새신자의 경우 아랍 지역 여성들과 함께 하는 중보기도회에 참석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리스도 공동체로써 갖는 교제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이해하지 못하였던 너무나 많은 것들을, 짧은시간 동안이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른 이들과 교제함으로써 깨닫게 되었고, 그분의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통해 나눴던 부분들, 특히 성경공부만을 통해서는 가르치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신앙적 선배와의 교제를 통해 삶으로 나타나는 모델을 보고나서 비로서 살아있는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정직과 진실함과 사랑으로 함께 성장함으로써, 저는 현재 새신자들과 각 지역의 성숙한 신앙인들을 연결해줄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는 이슬랍권 여성을 양육할 때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새신자들과 성숙한 신앙인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지체가 무엇인지 깨닫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주안점은 언제 새신자들에게 이러한 그룹을 소개하는가 입니다. 새신자의 상황을 이해해야 하며, 그 새신자와 새신자를 받게 될 그룹에게 그 만남이 의미하게 될 것을 잘 이해해야 하며, 또한 새신자 믿음의 성장 단계에 대해 민감해야 합니다. 또한 새신자가 예수그리스도의 지체의 한 부분으로써 사랑과 교제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며, 저 혼자서는 모든 것을 공급해 줄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과정에 있어서 성령님을 의지하며 그 분이 저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기를 간구하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삶의 방식의 모든것을 변화시키신 분이심을 인식하도록 해야하며, 새신자가 형식적인 그리스도인 되거나 전파자의 문화만을 흉내도록 하지 말고, 언제나 성경의 진리로 그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믿음과 가식적인 기독교적 행동을 차별화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희망하는 것은 새신자들에게 올바른 방법을 알려주므로써, 그들로 하여금 성경의 가르침을 삶과 상황속에서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지, 제가 그들의 삶을 결정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새신자를 믿음의 삶으로 양육하는 방법에 대해 유용한 몇 가지 단계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복음 전파보다는 믿음의 양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가 도움을 받은 지침이 되는 여러 방침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서로의 집에서 시간 보내기. 새신자들을 우리집에 초대하거나, 집에 초대받았을때도 흥쾌히 승낙하기
2. 성경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와 성경 읽은 것을 확인해주는 것도 포함
3. 회계와 고백의 중요성을 포함하여 영적 훈련에 대해 모델이 되어주며, 가르쳐주기. 인간관계와 문제에 대한 해결, 기도생활, 십일조 대한 성경적인 모델이 되어주기
4. 가족과의 관계가 개선되도록 격려해주며, 응원해주기. 이는 가정 안에서 행하는 이슬람 관습에 관심을 가지고, 가족들에게 먼저 그리스도 인의 삶의 본이 되어주며, 가족를 위한 중보자가 되는 것을 포함.
5.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을 훈련시켜주어,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어도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임을 부정하였다고 느끼지 않게하기
요한복음 4장에 예수께서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납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생각하며, 교리적이고 성경적인 질문의 해답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이론적인 설명이나 요구를 덧붙히지 않으셨습니다. 새신자의 양육에서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과, 그들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런것들과 함께 예수그리스도의 지체로써 인내와 온유함으로 그들을 도와야 하며, 지체의 한 부분이 되는 기회를 가로막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진정한 제자양육입니다.
(쓰여진 성경말씀은 NIV판입니다.)
[1] 아랍세계에서 일하고 있는 인터서브 선교사
글쓴이: 김 사랑[1]
번역자: 양다영, 조주옥
1 서문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근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가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8-20
이 글은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이슬람 배경에서 신앙을 갖게된 이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해 적어내려간 저의 일기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이슬람 관련 주제를 다룬 전문 논문이나 여러가지 원리의 개발을 찾기위해 쓰여진 글은 아닙니다. 중동에서 6년의 사역기간동안, 출신을 불문하고 제자훈련의 핵심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서로를 또 어떻게 사랑하는 지에 대한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도우심 없이는 저의 힘으로 다른 민족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을수 없습니다.
비록 제가 거주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저의 신앙의 체험을 공개적으로 나누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최근 이슬람권에서는 기독교 신앙을 찾아가는 공동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공동체 스스로가 본국가의 타지역에서 일 할 수 있는 일꾼을 파송하여, 재정적으로 돕고 있는것을 볼 때 큰 격려가 됩니다. 이슬람권 사람들이 신앙을 갖게되어 예수님의 제자로서 성숙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일하고 계시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슬람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되는데, 여기서 몇 가지를 경우를 살펴보면서, 제자훈련사역과 새신자 양육을 하는데 그들이 미치는 영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삶을 드리기로 결심한 이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도울수 있으며, 동시에 신앙의 자유가 제한된 곳에서 어떻게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제자화하도록 가르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해답을 찾기위해 제자훈련에서 제가 했던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제자훈련를 위한 스스로의 준비라고 일컫는, 내 자신에 대해서 깨달은 부분을 나눌려고 합니다. 그 후에 새신자 제자사역 중 관계 안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에 대해 살펴보겠으며, 제자훈련과정에서 배웠던 부분을 나눔으로 마치겠습니다.
2 스스로의 준비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1:16
제자훈련에 지속적으로 연관되는 두 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과 복음의 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 과정 속에서 진전이 없어보이던지 혹은, 필요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느끼게되어 낙심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새롭게 신앙을 갖게된 이들을 양육할 때 하나님앞에 신실한 모습으로 남아 있기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임을 스스로 확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깊이 깨달았을때, 그리고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이 아버지되심을 체험하였을때, 새신자들과 함께 나의 삶을 나누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연약함에서도 편안할 수 있습니다. 이럴때에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이해하며, 생명을 변화시키는 그 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삶속에서 그 변화의 힘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자신과 다른 바탕과 경험을 가진 이들의 삶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복음과 복음의 메세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와같은 개인적인 경험과 이해 없이는 종교적인 문화만을 흉내내는것이지, 복음의 힘으로 전파하는 것이 아니기 떄문입니다.
그 밖에도 저의 여정과 준비과정에 연관된 중요한 두가지가 있는데, 둘 다 지역교회에 관한것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좋은 제자훈련의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첫번째로 현지 지역교회에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현지의 환경과 교인들이 속해있는 지역 단체나 그들의 성향 또는 현지인들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이해 증진에 도움이 됩니다. 대부분의 이슬람권에 있는 많은 교회와 마찬가지로 각 지역 교회는 그들의 환경에 맞는 교리와 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타종교의 지배 아래에서 믿음의 삶을 사는 소수 공동체로써 갖는 그들만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역 교회들과 함께 동행한다는 것은 지역 형제, 자매들을 격려하고 약함을 강하게하는 역활을 할 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함께 나눌수 있게 합니다. 개인적인 배경과 하나님과 그리고 그분의 지체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지체들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자원들을(재정 자원이 아니라) 충당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공동체와 연관이 있습니다. 저는, 지역교회의 리더 여성들을 섬기기위해 소그룹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을 하였습니다. 기도 사역에 관심이 있는 여러사람들과 함께 중보기도 모임을 시작하였는데, 우리의 기도는 우선 지역교회의 이해와 나눔에 대한 것으로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 그룹은 신뢰와 정직으로 함께 성장해갔으며, 일년 후에는 기도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지역교회나 가정의 여성리더 중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여성들과 기도에 대해 배우기를 희망하는 여성들을 세워주셨습니다. 우리가 모임을 시작하였을때는 우선 세계를 향해 특히 중동을 향한 중보자가 되기위해서 모였지만, 지금은 이 여성들이 본인이 속해있는 지역사회의 선교와 제자훈련을 감당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으며, 이 모임은 제자훈련자들을 멘토링 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공동체들은 초신자들을 제자훈련하는 과정에 있는 제가 성장하는데 큰 부분을차지 하였습니다. 지역교회는 저에게 많은것을 가르쳐 주었으며, 지역사회의 문화를 이해 할 수 있게 도왔고, 제가 양육하는 이들을 소개할 수 있는 안전한 돌봄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지역교회는 제가 제자양육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하였을때 조언을 주고 기도를 통한 통찰력을 제시해 주는 곳입니다. 제자훈련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함께 공동체 생활을 실천하고, 신앙의 기초적인 훈련에 헌신하는 본을 보이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지역 상황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 것은 모두 저의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3 새신자들과 관계의 어려움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린도전서 3:7
가부장제도 안에서 이슬람 가족이 갖는 특성은 여성들이 제자훈련에 임할때 많은 어려움을 갖게 합니다. 이로 인해 많은 여성들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그것을 매우 개인적인것으로 여기거나 혹은 비밀로 해야하며, 교제에 대해서도 극히 제한적이 되거나, 고립되게 됩니다. 특히, 이러한 것들로인해 제자훈련의 상호작용이 제한되게 됩니다. 각각의 여성들의 상황을 이해하는것이 중요하며, 양육과 가르침, 사랑과 격려와 같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도울수 있는 길을 찾아야합니다.
신앙의 가정 안의 있는 여성과, 과부나 이혼의 상황에 있는 여성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새신자들의 자녀들에게 종교적인 교육과 함께 양육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2007년도 세미나에서 20년 가까운 경험을 가진 MBB에 따르면 새신자들의 자녀를 돌보는 것이 가장 중대한 사안이며, 새신자들 양육시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성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더 고심해야 하며, 이로써 그들의 자녀들을 영적으로 양육할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실시하는 신앙관을 방해하는 종교적인 교육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어느때에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지 혹은 이야기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교육을 하지 않으면, 그들과 그 가족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논점을 다루는 것은 건강하고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양육되기 위해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새신자들을 믿음의 삶으로 양육하는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숙제로 저에게 남아있습니다.
새신자들을 믿음의 삶으로 양육하는 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보다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때때로 낙심될 때가 있지만, 한 명이 나무를 심고, 다른이가 물을 주지만, 결국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로 돌아갈 때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새신자를 양육하는 과정에 있기 전에는, 그들에게 단순히 성경을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양육하는 과정에서는 막상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 것은, 내 스스로가 약함을 통해 그들에게 믿음의 성장과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새신자들은 제가 나누는 말보다 내 삶에서 관찰되어지는 모습을 통해 믿음에 삶에 대해 더 많이 이해했습니다. 저에게 큰 도전은 그들에게 모델이 되는 믿음의 삶을 꾸준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에도 그것이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경우는 가족과 개인적인 어려움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모든이에게 통용될 수는 없겠지만 새신자들의 가족들에게 일어나는 어머니의 죽음이나, 자매들의 죽음, 암, 교통사고, 심한 요통 같은 어려움들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은 새신자의 믿음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어떤이는 제자양육에서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도전은 저에게 깊은 기도의 생활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새신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믿음, 그리고 고난에 대한 성장을 돕는 도구가 됩니다. 이는 우리가 영적인 삶에 좀 더 일찍 이러한 가르침을 구했어야 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새신자를 믿음으로 양육하는 과정에 있지만, 이러한 영적 싸움에 대면하지 않았으며, 고난이 인내의 모델이 될수 있기에 아픔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먼저 우리가 깨닫고 그 깨달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양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어려움으로 제게 다가온 것은 그들의 필요와 요구에 상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습니다. 새신자들 중에는 때로 저를 통해서 그들의 생활적, 정서적, 영적인 필요가 전부 채워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필요가 정말 절실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들의 필요를 모두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저는 가능한 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과 함께 하나님에 대해 나누는 친구의 관계임을 강조합니다. 부족한 대답인것처럼 들리지라도 의존관계를 만들기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신자의 양육을 돕기위해서 새신자들에게 좋은 기초를 다져주면서, 실질적인 많은 어려움에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는 교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복음 전파에 대한 교제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교제는 어디서나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이슬람권의 새신자들을 위해 삶을 양육할 교제는 극히 제한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4.새신자 제자훈련을 통하여 배운 교훈
새신자들을 양육하는동안 항상 염두해야 할 점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것이며, 우리들 관계안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계명 가운데 예수님의 가르침의 중심은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과 관계 안에서의 평안의 감각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의 지체간의 관계의 성장 또한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말씀의 진리 가운데 살기위해 노력하는 것은 큰 도전일 것 입니다.
저는 제가 양육하고 있는 새신자들이 제가 속해있는 공동체와 만남을 갖도록 노력합니다. 한 새신자의 경우 아랍 지역 여성들과 함께 하는 중보기도회에 참석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리스도 공동체로써 갖는 교제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이해하지 못하였던 너무나 많은 것들을, 짧은시간 동안이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른 이들과 교제함으로써 깨닫게 되었고, 그분의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통해 나눴던 부분들, 특히 성경공부만을 통해서는 가르치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신앙적 선배와의 교제를 통해 삶으로 나타나는 모델을 보고나서 비로서 살아있는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정직과 진실함과 사랑으로 함께 성장함으로써, 저는 현재 새신자들과 각 지역의 성숙한 신앙인들을 연결해줄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는 이슬랍권 여성을 양육할 때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새신자들과 성숙한 신앙인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지체가 무엇인지 깨닫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주안점은 언제 새신자들에게 이러한 그룹을 소개하는가 입니다. 새신자의 상황을 이해해야 하며, 그 새신자와 새신자를 받게 될 그룹에게 그 만남이 의미하게 될 것을 잘 이해해야 하며, 또한 새신자 믿음의 성장 단계에 대해 민감해야 합니다. 또한 새신자가 예수그리스도의 지체의 한 부분으로써 사랑과 교제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며, 저 혼자서는 모든 것을 공급해 줄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과정에 있어서 성령님을 의지하며 그 분이 저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기를 간구하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삶의 방식의 모든것을 변화시키신 분이심을 인식하도록 해야하며, 새신자가 형식적인 그리스도인 되거나 전파자의 문화만을 흉내도록 하지 말고, 언제나 성경의 진리로 그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믿음과 가식적인 기독교적 행동을 차별화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희망하는 것은 새신자들에게 올바른 방법을 알려주므로써, 그들로 하여금 성경의 가르침을 삶과 상황속에서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지, 제가 그들의 삶을 결정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새신자를 믿음의 삶으로 양육하는 방법에 대해 유용한 몇 가지 단계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복음 전파보다는 믿음의 양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가 도움을 받은 지침이 되는 여러 방침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서로의 집에서 시간 보내기. 새신자들을 우리집에 초대하거나, 집에 초대받았을때도 흥쾌히 승낙하기
2. 성경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와 성경 읽은 것을 확인해주는 것도 포함
3. 회계와 고백의 중요성을 포함하여 영적 훈련에 대해 모델이 되어주며, 가르쳐주기. 인간관계와 문제에 대한 해결, 기도생활, 십일조 대한 성경적인 모델이 되어주기
4. 가족과의 관계가 개선되도록 격려해주며, 응원해주기. 이는 가정 안에서 행하는 이슬람 관습에 관심을 가지고, 가족들에게 먼저 그리스도 인의 삶의 본이 되어주며, 가족를 위한 중보자가 되는 것을 포함.
5.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을 훈련시켜주어,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어도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임을 부정하였다고 느끼지 않게하기
요한복음 4장에 예수께서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납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생각하며, 교리적이고 성경적인 질문의 해답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이론적인 설명이나 요구를 덧붙히지 않으셨습니다. 새신자의 양육에서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과, 그들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런것들과 함께 예수그리스도의 지체로써 인내와 온유함으로 그들을 도와야 하며, 지체의 한 부분이 되는 기회를 가로막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진정한 제자양육입니다.
(쓰여진 성경말씀은 NIV판입니다.)
[1] 아랍세계에서 일하고 있는 인터서브 선교사
2009년 2월 22일 일요일
<서평> 중동의 개신교 선교사들: 그리스도의 대사들인가, 아니면 문화의 전파자들인가?
원제> Book Review: Peter Pikkert's Protestant Missionaries to the Middle East
서평 글쓴이: Duane Alexander Miller
책제목: Protestant Missions in the Middle East: Ambassadors to
Christ or Culture (WEC Canada, 2008), 226 pages.
책의 저자: Peter Pikkert
Pikkert는 중동이나 터키에서 사역할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할 중요한 책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그렇게 많은 시간과 재정을 쏟아부으면서도 중동과 터키에 개종자들이 드문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질문한다. 먼저 그는 Samuel Huntington과 David Bosch의 이론에 근거한 자신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Huntington은 그 유명한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문명의 충돌”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the World Order (Simon & Schuster 1998)의 저자이다. 그는 냉전시대 이후에 세계 분쟁의 주요 원인은 문명이 될 것이라고 제시하면서, 특별히 서구와 이슬람 사이의 충돌을 예상했다.
필자는 파라다임의 변화 (paradigm shifts)에 대한 Bosch의 의견을 빌어 선교 역사를 해석하고 비판해 보고자 한다. 보쉬의 의견에 대한 주요 출처는 “변화하는 선교: 선교 이론에서 찾는 파라다임의 변화” (Transforming Mission: Paradigm Shifts in Theology of Mission, Orbis Books 1991.) 이다. 이 책은 중동과 소아시아에서 이루어진 카톨릭 선교 이외의 서구 선교 역사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카톨릭 선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1장부터 4장까지는 각 시대를 다루는 본서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다. 제 5장은 역사적 분석과 비판에서 다소 급격하게 방향을 돌려 신학과 현대 선교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필자는 이 장이 이 책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역를 중심으로 하는 Pikkert의 현대 역사 구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1800-1918년까지로,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만 제국이 분해되는 시점이다. 혹은 데이빗 프롬킨 David Fromkin 이 말했듯이 모든 평화를 끝내는 평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미주1) 두 번째 시기는 1946년까지로, 시리아가 독립하고 이스라엘이 서기 직전이다. 세 번째 시기는 1979년까지로, 아랍 민족주의와 석유의 강세로 몇 나라들이 급부상하는 시점이다.(미주2) 이 시기는 또한 초교파 선교단체들이 형성되고, 교파와 구분된 운동이 일어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시기는 이란 혁명이 일어나고 정치적 이슬람이 약진하는 시기로써, 정치적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자 폭력까지 동원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Pikkert는 그의 저술 당시 (2005년)가 이 시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 시기 구분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의 연합군이 작은 나라 이스라엘에 패한 6일 전쟁이 일어난 1967년이 아니라 1979년인지를 묻고 싶을 것이다. 아랍국가에 살고 있는 많은 무슬림들은 이 전쟁을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패배를 겪게 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다면 예언자 무함마드 시대와 같이 승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싼 반나와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 같은 사람들은 이를 계기로 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무슬림들을 다시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했다. 저자의 시기 구분에 이의를 제기하는 다른 사람들 중에는 또한 2001년이 새로운 시대가 열린 시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기 구분은 항상 논쟁의 여지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1967년을 중심으로 시기를 구분하고 싶어하는 경우에 대해 말하자면, 60년대와 70년대는 범아랍주의와 공산주의 및 세속주의의 환상에서 점차 깨어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2001년이 새로운 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2001년이 중동과 소아시아를 향한 서구의 개신교 선교가 중요한 변화를 맞았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하고 싶다.
Pikkert는 주로 The Moslem World(미주3) and the annual report of the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로부터 여러 선교사들의 보고와 일지들을 많이 인용하면서 천천히 진도를 나가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다소 지루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몇몇 인용들은 상당히 긴 분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두 세기 동안의 선교 활동에 대해 저자가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좀 길긴 하지만 1차 자료를 직접 인용하는 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 저자는 부정적이다. 그가 주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소위 대 실험 Great Experiment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1800년대 초에 선교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곧 지역 무슬림들에게 직접 바로 전도하는 것을 너무나 위험스럽고 어려운 일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대 실험으로 선교사들은 이를 통해 죽어가는 현지 교회의 (그것이 매로니안 교회든, 아르메니안이든, 그리스 정교회든, 콥틱이든 그 무엇이든지) 부흥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들 교회들은 서구 개신교 전도의 이미지대로 새롭게 다시 태어나게 될 예정이었다. 여기에는 지극히 서구적인 사고인 성상파괴와 개인주의라는 덫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그들은 심지어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문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학교, 고아원, 진료소, 출판사, 병원들이 소위 기독교 공동체를 다시 살리고자 하는 목적에서 세워졌다. Pikkert는 이러한 그들의 행동이 지역 지도자들에게 미심쩍게 보였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선교사들의 행동이 그들의 공동체를 너무 눈에 띠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특별한 후원이나 행운 없이도 수 세기 동안 스스로 잘 꾸려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선교사들의 그런 잘못된 대 실험이 지난 수 세기 동안 일어난 중동과 소아시아의 인종 말살이나 대규모 이민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뿐 아니라, 대 실험은 별로 성과를 보지 못했다. 이 실험이 결국 대부분 정교회 배경의 신자들로 구성된 개신교 교회를 세워놓았지만, 이 서구화된 그리스도인들마저도 갑자기 터키와 아랍 무슬림들 개종자들에게 교회의 문을 활짝 여는 것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무슬림들에게 불신과 고립을 당해왔기 때문이다.
위의 내용이 본서의 본론이다. 하지만 저자가 그 시기를 되돌아 보면서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네 시기를 다루는 각 장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잘못된 것뿐 아니라, 올바르게 진행된 것들도 함께 적어놓고 있다. 저자는 이곳 저곳에 매우 현명하고 헌신적으로 선교현장에서 사회를 섬겼던 인물들을 그려놓고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카이로의 템플 가드너 Temple Gairdner(1873-1928)로, 그는 이집트 아랍어 방언에 관한 문법서를 저술했다. 그러한 접근이 죠지 켈시 George Kelsey 와 같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암만에 있는 켈시 언어 연구소 of Kelsey Language Institute 와 같은 것들이 서게 되었을 것이다. 가드너는 또한 성경 이야기를 바탕으로한 아랍어 대본을 써서 무슬림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초대했다. 그는 또한 이슬람과 꾸란에서 훌륭한 점들을 찾아낼 수 있는 당시의 몇 안 되는 선교사들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현지 교회의 가치 조차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없었다. 가드너는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1923년에 이렇게 쓰고 있다.(미주4) “이집트에서 영국 국교회의 주요 목표는 비기독교 대중들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콥틱 그리스도인들이나, 개신교 교회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Pikkert가 제시하는 대 실험에 관여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선교사들 가운데 또 찾을 수 있는 흥미로운 예는 루터 선교회 Lutheran Orient Mission Society’s (LOMS)가 쿠르드인들에게 했던 선교이다. 그 선교를 이끌었던 포썸 L. O. Fossum은 가드너처럼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지역 무슬림 사회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쿠르디스탄(터키, 이란, 이라크에 걸친 산악, 고원지대-역자 주) 선교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41세에 죽음을 맞은 의사요 천재적인 언어학자였던 포썸이 이루어놓은 것은 놀라웠다. 큰 실패로 끝난 대 실험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저자의 역사적 관찰이 예리하기는 하지만, 지적 받아야 할 점들도 있다. 편집에 신경을 좀 쓸 필요가 있다. 한 페이지에서 기본적인 사항인 문법 실수와 글자 오류를 둘 다 발견하는 것은 흔한 경우가 아니다. 예를 들어 12쪽에서 Church Mission Society가 잘못된 약자인 CSM으로 표기되어 있고, Moslem World는 Moslim World 라고 잘못 쓰고 있다. 저자가 the “importance of intermission cooperation,”라고 말했을 때 필자는 어느 시대의 intermission(중간의 쉬는 시간)을 말하는 것인지 의아해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선교 단체들이나 그룹들 간의 협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논리적인 면에서도 이슬람공포증(147-149쪽)에 대한 부분에 문제가 있다. 저자는 1979년에 시작되는 시기에 대해 논의하면서 서구에서 이슬람을 악마화하고 미국 출판사들이 어떻게 이슬람에 대한 끝없는 비방물들을 내 놓았는지에 대해 말한다(147쪽). 저자가 헌팅턴의 문명 충돌에 관한 이론이 맞는다고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지는 설명되어 있지 않다.
테러가 이슬람과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헌팅톤의 견해와 Pikkert가 제시하는 것이 매우 동일하다. 즉, 소위 충돌이라는 것은 서구와 이슬람 사이의 적의를 조장하기 위한 음모에 지나지 않을 뿐, 사실 그들이 서로 평화롭게 지내지 못할 만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두 가지 사실 모두에 대해 매우 강력한 증거를 제시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이 두 사실을 함께 묶어놓을 수는 없다. 문명의 충돌이 있거나 아니면, 인공적으로 혹은 악한 의도로 조작된 것이다. 이 둘 중에 하나를 고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본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마지막 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 결론 장에서 Pikkert는 기독교 선교의 역사에서 오늘날 근동 무슬림 선교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조언으로 넘어간다 (189쪽). 그의 권면은 그 장의 제목과 같이 교회 중심적인 신약의 영성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 선교 사역은 교회 중심적이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그의 저서 전체에서 말하는 것과 어긋나는 것이다. 그가 비판했던 실패로 끝난 대 실험은 대부분 의료와 교육 연구소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무슬림 배경의 모임과는 구별된 것이었다. 그는 또한 이런 일을 하면서 정치적인 문제에 말려들지 말도록 권하고 있는데 중동을 생각할 때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저자가 “신약의 영성이 New Testament spirituality” 라고 말할 때 그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 책 전체를 통하여 저자는 중동 지역에서의 기독교 선교를 말할 때 종종 언급되는 두 극단적인 견해를 피해왔다. 선교사들의 활동을 종교심 없는 정치적인 것으로만 치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성인 군자인 것처럼 그려놓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독자들이 어떻게 “신약의 영성” 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세상에 신약의 위대한 선교사들처럼 되고 싶지 선교사가 어디에 있는가? 이 세상에 신약에 나타나는 교회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지 않은 교회가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면 저자는 “신약의 영성” 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매일 성만찬을 행해야 하고 (행 2:46) 여자들은 머리를 가려야 한다(고전 11:10)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마치 여기 나사렛에 있는 그리스 카톨릭 지역 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Pikkert는 신약의 영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중 하나로 “기독교 메시지를 분명하고, 문화적으로 적절하게 전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201쪽) 또한 “제자화와, 훈련, 책임 이양”(206쪽)에 대해서도 말한다. 분명히 나쁜 말은 아니다. 그러나 보쉬가 말하는 파라다임의 변화와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인다. 마지막 장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Pikkert의 저서는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선교지에 나가기 위해 훈련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고 말하고 싶다. 선교사 지망생이 많은 한국과 중국, 남아메리카에 이 책을 읽어볼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은 세속 역사의 관점에서 종교와 정치가 통합되어 있는 고전 이슬람식 사고의 측면에서 역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책을 이슬람 학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기독교 선교사들이 중동에서 실패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라는 뜻이 아니다. 기독교 선교사들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내리려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먼저 알아야 하고, 또한 무슬림들이 흔히 기독교 선교사들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이 단순히 선전하기 위해서나, 신화, 혹은 이단으로써 그 곳에 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주>
1 이 말은 영국과 프랑스가 주역을 맡은 현대 중동의 형성에 대한 Fromkin’s 유명한 역사서 (Holt 2001)에 등장한다.
2 좀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을 참조하라. Daniel Yergin’s The Prize: The Epic Quest for Oil, Money & Power (Free Press 1993).
3 지금은 The Muslim World 로 불린다.
4 이 인용은 가드너의 경력에 관한 Matthew Rhodes 의 글 ‘Anglican Mission: A Case Study’ available online from the Henry Marty Center at www.martynmission.cam.ac.uk. 에서 가져온 것이다.
서평 글쓴이: Duane Alexander Miller
책제목: Protestant Missions in the Middle East: Ambassadors to
Christ or Culture (WEC Canada, 2008), 226 pages.
책의 저자: Peter Pikkert
Pikkert는 중동이나 터키에서 사역할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할 중요한 책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그렇게 많은 시간과 재정을 쏟아부으면서도 중동과 터키에 개종자들이 드문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질문한다. 먼저 그는 Samuel Huntington과 David Bosch의 이론에 근거한 자신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Huntington은 그 유명한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문명의 충돌”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the World Order (Simon & Schuster 1998)의 저자이다. 그는 냉전시대 이후에 세계 분쟁의 주요 원인은 문명이 될 것이라고 제시하면서, 특별히 서구와 이슬람 사이의 충돌을 예상했다.
필자는 파라다임의 변화 (paradigm shifts)에 대한 Bosch의 의견을 빌어 선교 역사를 해석하고 비판해 보고자 한다. 보쉬의 의견에 대한 주요 출처는 “변화하는 선교: 선교 이론에서 찾는 파라다임의 변화” (Transforming Mission: Paradigm Shifts in Theology of Mission, Orbis Books 1991.) 이다. 이 책은 중동과 소아시아에서 이루어진 카톨릭 선교 이외의 서구 선교 역사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카톨릭 선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1장부터 4장까지는 각 시대를 다루는 본서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다. 제 5장은 역사적 분석과 비판에서 다소 급격하게 방향을 돌려 신학과 현대 선교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필자는 이 장이 이 책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역를 중심으로 하는 Pikkert의 현대 역사 구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1800-1918년까지로,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만 제국이 분해되는 시점이다. 혹은 데이빗 프롬킨 David Fromkin 이 말했듯이 모든 평화를 끝내는 평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미주1) 두 번째 시기는 1946년까지로, 시리아가 독립하고 이스라엘이 서기 직전이다. 세 번째 시기는 1979년까지로, 아랍 민족주의와 석유의 강세로 몇 나라들이 급부상하는 시점이다.(미주2) 이 시기는 또한 초교파 선교단체들이 형성되고, 교파와 구분된 운동이 일어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시기는 이란 혁명이 일어나고 정치적 이슬람이 약진하는 시기로써, 정치적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자 폭력까지 동원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Pikkert는 그의 저술 당시 (2005년)가 이 시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 시기 구분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의 연합군이 작은 나라 이스라엘에 패한 6일 전쟁이 일어난 1967년이 아니라 1979년인지를 묻고 싶을 것이다. 아랍국가에 살고 있는 많은 무슬림들은 이 전쟁을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패배를 겪게 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다면 예언자 무함마드 시대와 같이 승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싼 반나와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 같은 사람들은 이를 계기로 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무슬림들을 다시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했다. 저자의 시기 구분에 이의를 제기하는 다른 사람들 중에는 또한 2001년이 새로운 시대가 열린 시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기 구분은 항상 논쟁의 여지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1967년을 중심으로 시기를 구분하고 싶어하는 경우에 대해 말하자면, 60년대와 70년대는 범아랍주의와 공산주의 및 세속주의의 환상에서 점차 깨어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2001년이 새로운 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2001년이 중동과 소아시아를 향한 서구의 개신교 선교가 중요한 변화를 맞았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하고 싶다.
Pikkert는 주로 The Moslem World(미주3) and the annual report of the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로부터 여러 선교사들의 보고와 일지들을 많이 인용하면서 천천히 진도를 나가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다소 지루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몇몇 인용들은 상당히 긴 분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두 세기 동안의 선교 활동에 대해 저자가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좀 길긴 하지만 1차 자료를 직접 인용하는 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 저자는 부정적이다. 그가 주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소위 대 실험 Great Experiment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1800년대 초에 선교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곧 지역 무슬림들에게 직접 바로 전도하는 것을 너무나 위험스럽고 어려운 일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대 실험으로 선교사들은 이를 통해 죽어가는 현지 교회의 (그것이 매로니안 교회든, 아르메니안이든, 그리스 정교회든, 콥틱이든 그 무엇이든지) 부흥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들 교회들은 서구 개신교 전도의 이미지대로 새롭게 다시 태어나게 될 예정이었다. 여기에는 지극히 서구적인 사고인 성상파괴와 개인주의라는 덫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그들은 심지어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문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학교, 고아원, 진료소, 출판사, 병원들이 소위 기독교 공동체를 다시 살리고자 하는 목적에서 세워졌다. Pikkert는 이러한 그들의 행동이 지역 지도자들에게 미심쩍게 보였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선교사들의 행동이 그들의 공동체를 너무 눈에 띠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특별한 후원이나 행운 없이도 수 세기 동안 스스로 잘 꾸려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선교사들의 그런 잘못된 대 실험이 지난 수 세기 동안 일어난 중동과 소아시아의 인종 말살이나 대규모 이민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뿐 아니라, 대 실험은 별로 성과를 보지 못했다. 이 실험이 결국 대부분 정교회 배경의 신자들로 구성된 개신교 교회를 세워놓았지만, 이 서구화된 그리스도인들마저도 갑자기 터키와 아랍 무슬림들 개종자들에게 교회의 문을 활짝 여는 것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무슬림들에게 불신과 고립을 당해왔기 때문이다.
위의 내용이 본서의 본론이다. 하지만 저자가 그 시기를 되돌아 보면서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네 시기를 다루는 각 장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잘못된 것뿐 아니라, 올바르게 진행된 것들도 함께 적어놓고 있다. 저자는 이곳 저곳에 매우 현명하고 헌신적으로 선교현장에서 사회를 섬겼던 인물들을 그려놓고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카이로의 템플 가드너 Temple Gairdner(1873-1928)로, 그는 이집트 아랍어 방언에 관한 문법서를 저술했다. 그러한 접근이 죠지 켈시 George Kelsey 와 같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암만에 있는 켈시 언어 연구소 of Kelsey Language Institute 와 같은 것들이 서게 되었을 것이다. 가드너는 또한 성경 이야기를 바탕으로한 아랍어 대본을 써서 무슬림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초대했다. 그는 또한 이슬람과 꾸란에서 훌륭한 점들을 찾아낼 수 있는 당시의 몇 안 되는 선교사들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현지 교회의 가치 조차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없었다. 가드너는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1923년에 이렇게 쓰고 있다.(미주4) “이집트에서 영국 국교회의 주요 목표는 비기독교 대중들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콥틱 그리스도인들이나, 개신교 교회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Pikkert가 제시하는 대 실험에 관여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선교사들 가운데 또 찾을 수 있는 흥미로운 예는 루터 선교회 Lutheran Orient Mission Society’s (LOMS)가 쿠르드인들에게 했던 선교이다. 그 선교를 이끌었던 포썸 L. O. Fossum은 가드너처럼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지역 무슬림 사회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쿠르디스탄(터키, 이란, 이라크에 걸친 산악, 고원지대-역자 주) 선교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41세에 죽음을 맞은 의사요 천재적인 언어학자였던 포썸이 이루어놓은 것은 놀라웠다. 큰 실패로 끝난 대 실험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저자의 역사적 관찰이 예리하기는 하지만, 지적 받아야 할 점들도 있다. 편집에 신경을 좀 쓸 필요가 있다. 한 페이지에서 기본적인 사항인 문법 실수와 글자 오류를 둘 다 발견하는 것은 흔한 경우가 아니다. 예를 들어 12쪽에서 Church Mission Society가 잘못된 약자인 CSM으로 표기되어 있고, Moslem World는 Moslim World 라고 잘못 쓰고 있다. 저자가 the “importance of intermission cooperation,”라고 말했을 때 필자는 어느 시대의 intermission(중간의 쉬는 시간)을 말하는 것인지 의아해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선교 단체들이나 그룹들 간의 협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논리적인 면에서도 이슬람공포증(147-149쪽)에 대한 부분에 문제가 있다. 저자는 1979년에 시작되는 시기에 대해 논의하면서 서구에서 이슬람을 악마화하고 미국 출판사들이 어떻게 이슬람에 대한 끝없는 비방물들을 내 놓았는지에 대해 말한다(147쪽). 저자가 헌팅턴의 문명 충돌에 관한 이론이 맞는다고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지는 설명되어 있지 않다.
테러가 이슬람과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헌팅톤의 견해와 Pikkert가 제시하는 것이 매우 동일하다. 즉, 소위 충돌이라는 것은 서구와 이슬람 사이의 적의를 조장하기 위한 음모에 지나지 않을 뿐, 사실 그들이 서로 평화롭게 지내지 못할 만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두 가지 사실 모두에 대해 매우 강력한 증거를 제시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이 두 사실을 함께 묶어놓을 수는 없다. 문명의 충돌이 있거나 아니면, 인공적으로 혹은 악한 의도로 조작된 것이다. 이 둘 중에 하나를 고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본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마지막 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 결론 장에서 Pikkert는 기독교 선교의 역사에서 오늘날 근동 무슬림 선교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조언으로 넘어간다 (189쪽). 그의 권면은 그 장의 제목과 같이 교회 중심적인 신약의 영성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 선교 사역은 교회 중심적이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그의 저서 전체에서 말하는 것과 어긋나는 것이다. 그가 비판했던 실패로 끝난 대 실험은 대부분 의료와 교육 연구소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무슬림 배경의 모임과는 구별된 것이었다. 그는 또한 이런 일을 하면서 정치적인 문제에 말려들지 말도록 권하고 있는데 중동을 생각할 때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저자가 “신약의 영성이 New Testament spirituality” 라고 말할 때 그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 책 전체를 통하여 저자는 중동 지역에서의 기독교 선교를 말할 때 종종 언급되는 두 극단적인 견해를 피해왔다. 선교사들의 활동을 종교심 없는 정치적인 것으로만 치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성인 군자인 것처럼 그려놓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독자들이 어떻게 “신약의 영성” 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세상에 신약의 위대한 선교사들처럼 되고 싶지 선교사가 어디에 있는가? 이 세상에 신약에 나타나는 교회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지 않은 교회가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면 저자는 “신약의 영성” 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매일 성만찬을 행해야 하고 (행 2:46) 여자들은 머리를 가려야 한다(고전 11:10)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마치 여기 나사렛에 있는 그리스 카톨릭 지역 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Pikkert는 신약의 영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중 하나로 “기독교 메시지를 분명하고, 문화적으로 적절하게 전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201쪽) 또한 “제자화와, 훈련, 책임 이양”(206쪽)에 대해서도 말한다. 분명히 나쁜 말은 아니다. 그러나 보쉬가 말하는 파라다임의 변화와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인다. 마지막 장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Pikkert의 저서는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선교지에 나가기 위해 훈련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고 말하고 싶다. 선교사 지망생이 많은 한국과 중국, 남아메리카에 이 책을 읽어볼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은 세속 역사의 관점에서 종교와 정치가 통합되어 있는 고전 이슬람식 사고의 측면에서 역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책을 이슬람 학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기독교 선교사들이 중동에서 실패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라는 뜻이 아니다. 기독교 선교사들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내리려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먼저 알아야 하고, 또한 무슬림들이 흔히 기독교 선교사들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이 단순히 선전하기 위해서나, 신화, 혹은 이단으로써 그 곳에 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주>
1 이 말은 영국과 프랑스가 주역을 맡은 현대 중동의 형성에 대한 Fromkin’s 유명한 역사서 (Holt 2001)에 등장한다.
2 좀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을 참조하라. Daniel Yergin’s The Prize: The Epic Quest for Oil, Money & Power (Free Press 1993).
3 지금은 The Muslim World 로 불린다.
4 이 인용은 가드너의 경력에 관한 Matthew Rhodes 의 글 ‘Anglican Mission: A Case Study’ available online from the Henry Marty Center at www.martynmission.cam.ac.uk. 에서 가져온 것이다.
2009년 2월 8일 일요일
베두윈의 화해 (중재) 방법
원제: Reconciliation among the Bedouin
글쓴이: Sarang Kim
1. 베두윈 사회,역사 그리고 전통
1.1 베두윈 문화의 중요성
베두윈 족은 사막에 거주하는 아랍 민족이다. 그들의 조상은 선사 시대부터 아라비아에 거주하는, 구약의 창세기에 언급된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인 셈족이다.[i] 베두윈들의 기원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욕단 (셈의 아들: 아랍인들은 예맨 의 신화적 영웅인 카흐탄 Kahtan으로 부른다)과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그 수가 늘어 부족을 형성하고 부족간 연맹체의 구조를 유지하며 살아오고 있다.[ii] 비록 그들이 사막에서 이곳 저곳을 떠도는 유목민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아랍어를 쓰는 귀족 출신의 배경을 갖고 있다. 심지어 이슬람교가 아랍에 확립(7th century) 되기 이전부터 베두윈들의 언어는 아랍어였고, 그들은 움마야드 왕조 당시의 귀족 이였다 (the Umayyad, 661-750). 그러므로 당시 일부 움마야드 왕가의 상류층 자제들은 아랍어를 배우기 위하여 사막에 찾아와서 그들과 함께 살기도 했으며 또한 중기 시대에도 문법학자들과 이슬람 법학자들이 베두윈 들을 찾아와 그들의 선례를 중시하여 법적 판결을 행하고 그들의 어법에 맞춰 문법규칙을 정했다.[iii] 그러므로 베두윈 들의 전통과 가치관들은 여전히 아랍인들 가운데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베두윈들 역시도 그 자신들의 귀족 출생과 아랍 문화의 뿌리가 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실제 베두윈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화해(중재)의 방법들을 간단하게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늘날 베두윈들은 아라비아, 걸프, 네게브와 북 아프리카 시나이 반도 등에 널리 퍼져서 살고 있으며 대부분 사막뿐만이 아니라 도시 등에도 정착해서 살고 있고 문명화된 현대 도시 베두윈들도 많은 수를 차지한다. 게다가 연대감이 강한 부족의 구조하에서, 지역들마다 각각의 부족과 씨족들에 따라 다양한 화해의 규율과 방법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다양한 규율과 방법들이 있다 할지라도, 모두가 사람들을 중재하는 제 3자라는 공통적인 필요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본 고는 베두윈 부족간에 행해지고 있는 화해 방법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그들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베두윈 뿐만 아니라 다른 아랍인들과의 관계에서도 한층 더 다가가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1.2 사회 구조와 전통의 영향들
베두윈들 간에 행해지는 화해의 방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 부족간의 구조와 그 연대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랍 국가들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오랜 기간 동안, 아랍 반도 전역을 거쳐 아랍인들은 수 많은 지역부족과 씨족들로 나눠져 있었다. 그들은 그 어떤 정치적 조직이나 이념이 아닌, 같은 전통적 정서를 나누는, 혈연 공동체들로 구성 되어 있었다.[iv] 일반적으로, 부족은 수 많은 단위의 씨족들로 형성되어 있으며, 씨족은 더 나아가 많은 가문(가족)들로 나뉘어져 있다. 영어의 개념으로 흔히 혈통, 혹은 가계 (lineages)들을 일컬으며 보통 5대로 형성되어 있는 부계 사회이다 (great-great-grand father). 같은 혈통을 갖는 가계는 베두윈 삶에 있어서 아주 소중한 단위이다. 이 단위는 적어도 1년 중 한 때는 함께 무리 지어 텐트를 치며 사는 목축 경제의 기본 단위가 되기도 한다. 이 다양한 가계 혹은 가문의 리더들은 씨족 의회를 구성한다. 이렇게 강하게 연결된 각각의 가문 그룹들이 베두윈 친족들인 것이다. 한 사람의 베두윈의 삶은 그의 친족들을, 또한 그의 친족들은 그를 의지하며 서로 연결 되어 있는 것이다.[v]
베두윈들의 부족이나 씨족 심지어 친족에 대한 가치는 일반적으로 비 아랍 세계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며 강력하다. 그러므로 눈에 보여지는 많은 베두윈들의 성격이나 특징들은 이 부족 구조와 그 유대감에 깊게 뿌리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베두윈 사회에 가장 큰 미덕 중 하나인 명예는 그룹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부족과 씨족에 대한 전적인 충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이슬람교가 아랍인들의 공식적인 종교이기는 하지만, 베두윈들 에게는 이슬람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내려오는, 그들만의 전통과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사막에는 모스크들도 많지 않았었고 공식적으로 학교 교육( 요르단에서는 베두윈들에 대한 공교육이 약 3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을 받기 이전까지는 이슬람의 교리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베두윈들의 전통은 코란의 가르침보다도 강력할 수 있었으며 아직도 베두윈들 사이에는 민속 신앙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두윈들의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여전히 어느 정도의 제한된 주 정부 통치권 밖에서의 삶의 방식 때문에, 그들은 그들 부족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자치적인 사회적 기구(부족에서 추방한다든지 혹은 피 값의 징수라든지 범죄에 대한 복수 집행 등을 할 수 있는 기능)를 가지고 있다. 아랍인들에게는 권리(정의)보다는 관습(전통)이 더 강력하며 실제로 관습(전통)은 도덕과 종교 면에서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정의인 것이다.[vi]
베두윈 들에게는 세가지 법이 있다: 베두윈 법, 이슬람 법(샤리아) 그리고 일반 법(국가 법). 부족과 씨족의 쉐이크(장로)들은 분쟁의 경우에서 재판관으로서 행사한다. 분쟁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할 경우 부족 안에서 세습적으로 내려오는 재판관들도 또한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좋은 평판을 가진 두 사람의 증인들이 죄를 인정하는데 요구 된다.[vii] 비록 베두윈 법이 공식적인 법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다스리는 가장 강력한 법으로 행사되고 있다.
1.3 베두윈 삶의 특성
베두윈들의 화해 과정은 공식적인 절차라기 보다는 오히려 가치관의 관점에서 바라 보아야 한다. 그들의 문화적 가치와 도덕관들이 이 화해 과정을 이루어 나가는데 있어 깊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막에서의 거친 삶 때문에 베두윈들은 독특하고 다양한 특성과 삶의 양식들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호전성과 충성도가 뛰어난 민족으로 유명하다. 사막으로부터 삶에 필요한 충분한 자원을 얻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다른 부족을 습격하여 재물을 얻는 것이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허용되었다. 상인들과 경작자(개발자)들은 그들의 습격으로부터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카와스(khawas) 라는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viii] 그러나 베두윈들의 습격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그들이 다른 유목 부족으로부터 여자들을 잡아 왔을 때 그들은 여자들에게 어떤 폭력이나 성적 희롱을 행하지 않고 단지 노예로만 삼았을 뿐 이였다. 그들에게 타 부족을 습격한다는 것은 사막의 지루하고도 단순한 삶에 있어서, 생명의 손실 없이 노예와 음식과 교통 수단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수단 이였으며 일종의 삶에 활력소를 주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랍 선교의 선구자인 즈베머(Samuel Zewemer)는 이것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습격이란 유목민들 사이에 정교한 예술이다; 도덕성이 놓은 아랍의 습격자들은 정직하며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규율적이다. 그는 그의 희생자들을 밤에 습격하지 않으며 갑작스런 침략에 의한 피 흘림을 최대한 피하고자 한다. 또한 만약 그의 습격이 실패한다면 그는 가능한 첫 번째 텐트에 들어가 그 텐트 주인의 명예에 호소하여 보호를 요청할 수 있었다.”[ix]
그러나 피 흘림에 관해서 만큼은 그들은 매우 엄격했다. 과거 한 사람의 생명은 씨족의 힘 이였다. 씨족의 세력은 재산으로서가 아닌 얼마나 많은 전사를 가졌는가에 의해 평가되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두 눈을 잃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과 동등하게 여겨졌다. 두 눈을 잃은 사람은 전사로서 전투에 나서거나 낙타를 몰거나 경작자로서 소용이 없기에 부족의 관점에서는 먹여 살려야 하는 쓸모 없는 골치거리가 되는 셈이었다. 그러므로 한 생명에 해당하는 피 값이 시력을 잃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요구 되었다.[x]
손님에 대한 환대 역시 가장 기본적이며 규례[xi]이며 또한 사막의 고초와 위험에 의하여 배어난 베두윈 특성중의 하나이다. 커피는 오늘날도 여전히 손님에 대한 주인의 환대의 표시이며 동시에 친구인지 적인지를 분간하는 방법 중 하나로서 제공된다. 명예의 관례 역시 베두윈들의 화해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개인 뿐 만이 아니라 가족과 부족을 유지하는 명예(Sharaf)에 대한 관례는 아주 엄격하다. 가족 혹은 부족의 전체 명성의 유지와 손실은 세대와 세대를 통해서 전달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명예는 가족이나 씨족의 유착 (아사비야Asabiyyah)과 관련이 있다.‘아사비야’란 씨족이나 부족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끝이 없는 충성을 의미한다. 아랍 역사가인 이븐 칼둔(14세기) 은‘아사비야’란 역사를 움직이는 에너지이며 인류 사회의 기장 기본적인 결속이라고 말했다.[xii]
부족간 습격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자연적 상황에 의하여, 가족의 부와 운명이 불확실 했던 그 이전 때부터, 베두윈들은 모든 것이 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숙명론을 발전시켰다. 오직 유일하게 한 개인이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품위와 명예를 지키는 것 이였다. 유목생활의 환경으로 말미암아 궁핍하게 될지라도 베두윈들은 부를 가진 다른 어떤 자들보다도 더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가진 물질적 소유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명성과 행동에 의해 평가 받는 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xiii]
물질적 부나 소유보다 명예에 대한 높은 평가는 베두윈들로 하여금 자신의 명예를 화해 조정의 과정 속에서도 소중하게 지키게 한다. 만약 누군가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했다면 설령 그의 마음속에서는 상대방을 용서했다 할지라도 그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의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아야만 한다. 실제로 베두윈들의 화해 조정 과정을 보면 일반적으로 그들은 빨리 화해를 맺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과정들을 통하여 올바로 그들의 명예를 되찾는 일없이, 신속한 화해를 맺는 것은 수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화해를 맺는 것 그 자체 보다 화해의 과정가운데 그들의 명예를 바르게 되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2. 분쟁의 종류들과 화해(조정)의 방법들
확대 가족은 아랍사회의 매우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아랍 사회는 개인주의가 아닌 전체 씨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베두윈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들의 부족과 강한 결속력이 있으며, 같은 부족의 사람들은 그에게 있어서 더 큰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확대 가족은 위기의 때나 특별한 때에 함께한다. 만약 부족이나 가족의 구성원 중 누군가가 곤란에 처한다면 전체 가족들은 그를 돕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동원할 것이다.
2.1 부족들 간의 분쟁
만약 어떤 사람이 타 부족의 누군가와 분쟁이 생긴다면 이것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두 부족간의 문제로 확대 된다. 각 부족은 각각의 서열 체계와 문제들을 판결할 수 있는 조직체를 가진 수많은 씨족들로 구성 되어 있다. 만약 씨족이나 부족 내부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각 부족의 쉐이크나 판결자들이 이것을 다루게 된다. 그러나 부족간의 분쟁이 생긴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좋은 평판을 가진 제 3 부족에서의 쉐이크나 판결자 (al-Qadir)가 중재자로 요구 되어지고 그가 두 부족간의 화해 조정 과정을 이끌게 된다. 화해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각 부족의 영역에 발을 들일 수 가 없다. 조정을 이루는 쉐이크가 두 부족을 방문하며 각 부족을 대표하는 쉐이크나 어른들과 오랜 협상을 거치며 그 후 손실(피해)에 대한 대가를 결정하게 된다. 두 부족간에 제 3의 중재자가 필요한가를 설명해 주는 매우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라비아 사막의 유목민 부족들간에 습격이 일어났고, 한 사람이 살해를 당하게 되었다. 그 후 두 부족간에는 피의 분쟁이 시작되었다. 생명에는 생명이라는 원칙아래 반드시 한 사람의 동일한 피 흘림이 요구되었다. 살인을 행한 부족의 쉐이크는 자원하여 화해를 맺기 위해 상대 부족을 방문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도착하여 입을 열기도 전 길 한가운데서 상대 부족에 의하여 총격을 당하여 죽고 말았다.”[xiv]
쉐이크는 다양하게 적용되는 호칭으로 학교 선생님이나 모스크의 관료들 혹은 영어의 “sir”에 해당하는, 나이들은 낯선 이를 부를 때도 사용된다. 그러나 사막에서는 일반적으로 공통체를 대표하는 부족 혹은 가족의 수장 등을 의미한다. 이상적인 쉐이크란 모든 법 집행자나 행정관 보다 우위에 있으며 그들 부족의 번영은 그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xv] 오늘날 쉐이크의 중요성은 부족들의 구성원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자치 지구의 정부 관료들과의 협상을 잘 이루어내는 능력에 달려있다.[xvi]
2.2 직계 혹은 확대 가족간의 분쟁
씨족이나 친족간에 분쟁이 있을 때는, 일반적으로 그 씨족의 쉐이크나 노인들이 중재자가 된다. 분쟁의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가족 그룹들을 기본단위로 하는 연속된 공의회들에 의하여 일반적으로 결정이 내려지며 때로는 씨족들의 공의회를 거쳐 또한 부족의 자체 공의회까지 가기도 한다.[xvii] 가족간의 분쟁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손 위 남자 형제가 중재를 이끄며, 연장자를 공경하는 문화적 영향으로, 여성 역시도 나이가 들게 되면 그 위치가 부상하여,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한다.
상속 같은 가족 구성원내의 남자와 여자 형제들간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베두윈 사회에서는 아버지와 큰 오빠(남자 동생)가 여성의 후견인이 된다. 과거에 여성은 법적인 위치가 없었기에 오직 아버지나 남자 형제의 그늘 속에서만 존재하였다.[xviii] 그러나 비단 과거뿐만이 아닌 오늘날에도 여성들은 전통 관습 속에서 자신의 법적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야르묵 대학의 인류학과 교수인 무함마드 슈나크는 베두윈 여성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아랍여성들까지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상속의 경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상속권리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 아버지의 재산에 대하여, 마을에서 받아들여지는 일반적인 관습처럼, 자신들에게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 권리는 전적으로 남자 형제들이나 혹은 부계 쪽의 남자 친척들에게만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 여성들 중 하나가 그녀의 권리를 요구하고 그녀의 남자형제들과 상속권에 대하여 논쟁한다면 그녀는‘여자는 그녀의 부모의 집에서 결혼할 때까지 머무는 손님이다.’라는 대답을 들을 것이다. 즉 딸은 아버지의 상속에 대한 권리는 없으며 단지 손님과도 같은 환대를 받을 자격만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xix]
2.3 배우자들 간의 분쟁
베두윈들은 일처다부제의 결혼제도를 갖고 있다.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오늘날 베두윈들 가운데는 두 명의 부인이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부 부족에서는 주간 중에는 시내에서 일을 하며 주말에는 사막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보통 이런 경우 각각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xx] 여자들은 보통 사촌과 결혼하며 여성이 결혼 할 연령에 도달하면 양가의 부모들에 의하여 적합한 신랑감이 결정된다. 이러한 친족간의 결혼과 엄격한 관례들은 그들 가문의 명예를 지키며 더욱 안정된 부족간 결속을 원하는 데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다. 베두윈들 사이에서 이혼은 일반적인 일상사이며 당사자들에게 전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양쪽 모두 그들의 평판에 손실 없이 자유롭게 재혼할 수 있다. 이혼을 원하는 남성은 다른 증인들 앞에서 단지 그의 의지만을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여성은 결혼 당시 받았던 지참금을 지킬 수 가 있다. 반면 아내가 남편과 이혼을 원한다면 남편이 했던 방법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단지 남편을 떠나서 아버지의 텐트로 돌아오면 된다. 만약 여성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원한다면 남편은 곧 이혼에 응하게 되고 지참금의 반환이 협상을 통하여 이루어 진다.[xxi]
전통적으로 남편과 아내 사이의 연대감보다도 아버지와 딸 혹은 형제 자매간의연대감이 더 강한 사회가 베두인 사회이다. 윌리엄 랭체스터( William Lancaster)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베두윈 여성은 누구 누구의 딸 누구로 알려지며 그 것이 그녀의 진정한
정체성이다. 그녀는 누구의 아내로서나 누구의 엄마로서 그녀의 정체성을
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와 그녀의 남편 혹은 아들은 법률적으로는
전적으로 다른 그룹에 속하며 심지어 부족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법적 책임은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 혹은 부족의 남성 친척에게 있는
것이다.”[xxii]
아내와 남편간의 문제가 있는 경우 흔히 부인의 큰 오빠 혹은 동생이 중재자가 된다. 문제가 클 경우에는 베두윈의 법과 전통을 잘 아는 쉐이크 혹은 종교적인 법률을 잘 아는 부족은 판단관 (qaadi) 혹은 정부의 관료들 (muktar)이 회의를 소집하여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여자는 그 모임에 참여할 수 없고 그녀의 오빠(남동생)나 아버지가 참석한다. 때로 법정까지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에도 그녀는 아버지나 오빠(남 동생)를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이다.
3. 화해 언약들 (계약들)[xxiii]
3.1 커피 언약
베두윈들은 어떤 손님이라도 신이 보낸 손님으로 여기고 따뜻하게 맞이한다. 커피는 이러한 환대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베두윈들은 언제나 그의 고귀한 손님을 환대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xxiv] 방문을 하자마자 접대 받는 커피는 평화의 언약을 맺는 것을 의미한다. 세 잔의 커피가 접대되는데 각 잔마다 의미를 갖고 있다: 환대 (Daif), 번영(Keif) 그리고 어떠한 문제나 사고에서의 보호 (Sayf).[xxv] 그러나 양쪽 당사자들 간에 문제가 있는 경우 화해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손님은 보통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를 접대하고 마시는 것은 손님과 주인간에 평화를 주고 받는 표시인 것이다.
3.2 소금과 만사프( mansaf- 아랍 전통 양고기 정식)언약
비록 화해가 성사되었다 할지라도 만약 주인이 소금이 들어 있지 않는 빵이나 음식을 대접한다면 이것은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화해 후에 그들은 소금이 들어간 빵과 만사프를 먹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실상 만사프라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보다 동물을 죽여 피를 흘린다는 것에 더욱 의미를 둘 수 있다. 이러한 동물을 죽이는 절차는 일종의 속죄를 의미하며 피의 복수에 대한 보상으로 또 다른 피가 흘려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언약을 잘 보여주는 한 예가 있다.[xxvi] 1929년경 마프락의 베니 핫산 과 제라쉬의 파우리라는 요르단 두 부족 간에 피 흘림의 분쟁이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싸움이 계속되었고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다. 화해를 위한 여러 모임들이 있었으나 언제나 소금없는 빵과 만사프만이 접대될 뿐이었다. 즉 화해가 진지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죽고 죽이는 것만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핫산 왕자(훗날 후세인왕의 동생)는 이것을 알게 되고 중재자로 나설 것을 결심하게 된다. 화해를 주선하는 모임에서 그는 그녀의 어린 딸을 데리고 화해를 요청하게 된다. 그는 양쪽 장로들에게 자신의 딸을 피를 취할 것을 제안한다. 두 부족의 장로들은 중재자로서의 왕자의 결단에 깊게 감동을 받고 결국 화해를 맺게 된다.그 딸의 피 흘림 없이 그들은 소금이 들어간 빵을 함께 나누어 먹은 것이다.
사막 지역에서 음식은 매우 귀한 것으로 대부분의 베두윈들은 그들은 삶에서 때로 배고픔을 경험한다. 고기는 오직 결혼 향연이나 기념적인 행사 혹은 손님들이 있는 경우에만 먹을 수 있으며 [xxvii], 빵은 아주 귀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소금이 들어간 빵과 만사프를 함께 나눈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그들이 마음을 열고 화해가 맺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3.3 피의 언약- 피 값(blood money)[xxviii]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암몬 족속의 후손들로서 베두윈들은 생명을 그 어느 것보다도 귀하게 여긴다.[xxix] 누구든지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죽은 자의 가족에게 생명을 빚졌다는 것이 고대 아랍사회의 법률이었다. 피의 복수에 대한 법은 코란에서도 인정되어있고 아라비아의 어느 지역에서도 신성한 권리로 여겨진다. 아랍인에게 있어서는 피 흘림에 대하여 어떤 마땅한 댓가나 복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욕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법은 계속 되는 분쟁이나 피 흘림을 막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아랍의 타운이나 사막에서는 그 어떤 큰 몸 싸움 없이 몇 시간 동안 계속 말다툼만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직접 맞부딪쳐 싸우기를 겁내기 때문이 아니라, 피 흘림과 또 그에 따라 야기되는 피의 복수를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이다.[xxx]
피 흘림의 복수에 대한 법은 누구든지 피를 흘린 사람은 그 죽은 자의 가족에게 피에 대한 대가로 피 값이나 혹은 생명을 빚졌다는 것이다.[xxxi] 그 가족들은 살인자의 생명을 요청하거나[xxxii],혹은 그와 관련된 5대를 포함하는 가족에 대한 생명 값을 주장할 수 있다.[xxxiii] 이 “ 5대의 그룹”은 그의 부계 쪽의 5대를 모두 포함한다. 분노에 가득 찬 처음 5일 동안 생명이 취해지지 않았다면 일반적으로 피 값의 거래가 받아들여진다.[xxxiv] 때때로 공식적인 언약 문서가 오고 가거나 (sulha) [xxxv] 혹은 화해 후의 특별한 예식등이 거해지기도 한다. 게투르드 벨은 그 화해 예식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랍인들이 그들의 피의 분쟁을 끝내려고 할 때 두 원수들은 상해자의
텐트 앞에 함께 선다. 그 텐트의 주인은 그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들고
남쪽으로 돌아선 후 마당에 원을 그리며 신을 부른다. 그 후 그는 텐트의
자락을 베어내어 화로에서 한 줌의 재로 만든 후 원안으로 던지고
일곱 번 그의 칼로 선을 내려친다. 그 후 가해자가 그 원안에 들어가고
그의 적의 친척 중 한 명이 크게 외친다.‘나는 나에게 죄를 범한 살인자를 취합니다!’”[xxxvi]
그러나 오늘날 베두윈들은 현대 문명에 많이 노출되었고 또한 도시에 거주하는 베두윈들도 많다. 그러므로 중대한 범죄가 아닌 이상은 흔히들 사과의 표시로 선물을 주기도 한다. 남자들은 낙타나 칼 혹은 새 옷들을 여자들은 보석이나 옷 혹은 음식 등을 요리해 준다.
4. 제 삼자의 필요
베두윈들의 화해 과정에는, 어떤 수준의 화해(조정)에서도 일반적으로 제 3자의 개입을 통해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부족간의 분쟁뿐만이 아닌 개인의 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왜 제 3자가 필요한지에 대한 그 배경을 단순하게 말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은 오랜 기간 동안 전통을 통하여 형성 된 것 이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중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조건들이 있는데 제 3자는 반드시 양쪽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자여야만 한다.[xxxvii] 중재자는 또한 높은 도덕적 명성을 가져야 하며 양쪽 부족만이 아닌 그 지역에서도 존경 받는 자여야 한다. 그는 공정한 자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자여야 하고 또한 양쪽 부족으로부터 어떤 원망이나 원성이 없는 자여야 한다. 그러므로 중재자는 그저 제 3 부족에서 왔다는 것만으로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다.
베두윈들은 명예를 높이 평가한다. 그들이 직접 조정 과정에 참여한다면, 적들과 직접 대화한다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제 3자를 가졌을 때 그들은 어떤 명예의 손실이나 또 다른 분쟁 없이 정확히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그 어떤 형태로든 그들이 명예를 손실했다면 그들은 다른 부족들(제 3 자들)앞에서 그 것을 되찾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제 3자라는 증인을 가졌을 때 이것은 더욱 유익하게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제 3자는 중재자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명예를 회복한 것에 대한 증인도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제 3자는 또한 두 부족간의 또 다른 분쟁을 막을 수 있으며 그 어떤 손실 없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5. 전도적 제안
다른 무슬림들과 같이 베두윈들은 죄를 행위적 개념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행과 종교적 의무를 행함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선행이나 악행을 헤아리는 것만이 아닌 하나님과 우리간의 관계라는 면을 더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단지 죄를 저지른 것뿐 만이 아니라 죄인이 된 것이다. 우리의 속 사람은 이미 더럽혀 졌으며 온전하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피의 복수에 대한 전통으로 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되며 제 3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단 피가 흘려졌다면 이것은 반드시 또 다른 피로만 배상 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죄를 피 값(돈)으로 지불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죄는 그 어떤 다른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죄에 대한 대가로 우리는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이다.- 영원한 사망 (롬 6:23, 히 9:27)
베두윈들에게는 두 부족간의 관계에서 아무런 죄책이 없는 제 3 부족의 쉐이크만이 평화 협정을 이룰 수 있다. 아무 죄책이 없는 자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전통은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제 3 자 쉐이크로서 베두윈들에게 강조할 수 있게 해준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단 하나의 죄도 없이 완전한 삶을 사신 분이다.(고후 5:21).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중재자로 나서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는 죄가 없으신 완전한 인간이시며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재자로서의 예수님을 강조한다면 베두윈들에게 있어 이해하기에 쉬운 접촉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i] Alan Keohane, Bedouin, (London, kyle Cathie limt, 1994), p.9.
[ii] Ibid.p.16
[iii] 공일주, 아랍문화의 이해, (서울: 대한 출판사, 1996), pp.247-250.
[iv] S.M. Zwemer. Arabia: The Cradle of Islam, (USA: The caxton press, 1900), p.159.
[v] Shirley Kay, The Bedouin, (USA: Crane, Russak & company, 1978), p.78.
[vi] Samuel Ives Curtiss, Primitive Semitic Religion Today,(UK:London, 1902), p.65
[vii] Shirley Kay, p.80.
[viii] Alan Keohane, p.10.
[ix] S. M. Zwemer, p.264.
[x] Ibid.
[xi] Shirley Kay, p.19.
[xii] 공일주, p.265.
[xiii] Alan Keohane, p.70.
[xiv] S. M. Zwemer, p.265.
[xv] Austine Kennett, Bedouin Justic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25), p.145.
[xvi] Shirley Kay, p.80.
[xvii] Ibid., p.79.
[xviii] William Lancaster, The Rawala Bedouin Today, (USA: Waveland, 1997), p.45.
[xix] Mohammed Shunnaq, Women and the Social Reality behind the process of inheritance: An Anthropological Study of a Society in Northern Jordan, (Jordan; Department of Anthropology Institute of Archeology and Anthropology, 1995), p.6.
[xx] 사막의 텐트를 방문하다 보면 나이들은 베두윈 여성 혼자 거하는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남편은 시내에서 젊은 부인과 살고 있고 그녀의 자녀들 역시 시내에서 또 다른 어머니의 집에 거하면서 학교에 다니거나 직장에 다니기 때문이다.
[xxi] Mohammed Shunnaq, p.108.
[xxii] William Lancaster, p.58.
[xxiii] 요르단의 선교 병원 창설자와 행정 담당자와의 인터뷰(저자가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음) 07.07.2008
[xxiv] Gerturde Bell, Syria:The Desert and the Sown,(UK: London, 1908),p.33.
[xxv] 공일주, 아랍문명의 이해, (서울: 예영, 2006), p.189.
[xxvi] A.C와의 인터뷰(저자가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음)
[xxvii] http://kcm.co.kr/ 11.2008
[xxviii] 피 값으로서의 시나이 반도에서 한 사람의 생명 값은 낙타 41마리에 해당되며 여성의 경우에는 남자에 의해 죽었는가 여자에 의해 죽었는가에 의해 달라진다. 만약 여자가 죽인 것이라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동등한 힘이 있었던 결로 추정되어 일반적인 피 값의 낙타 41마리가 요구된다. 그러나 남자에 의해 살해되었다면 일반적 피 값의 4배가 요구된다. - Austine Kennett, pp.131-133.
[xxix] 생명을 중시하는 영향으로 흔히 사막에서의 자살의 경우는 도시보다도 훨씬 적은 편이다.- E. H. Palmer, Desert of the Exodus, (UK: Cambridge university, 1871), p.80.
[xxx] S. M. Zwemer, p.265.
[xxxi] Claude Reignier Conder, Heth and Moab, (UK:London, 1883), p.318.
[xxxii] William Charles Maughan, Alps of Arabia, (UK:London, 1875, reprint 2005), p.185.
[xxxiii] Numbers 1
[xxxiv] Shirley Kay, p.79.
[xxxv] Joseph Ginat, Blood Disputes among Bedouin and rural Arabs in Israel, (Pittsburgh; University of Pittsburgh, 1987), p.34.
[xxxvi] Gertude Bell, p.42.
[xxxvii] Joseph Ginat, p.31.
글쓴이: Sarang Kim
1. 베두윈 사회,역사 그리고 전통
1.1 베두윈 문화의 중요성
베두윈 족은 사막에 거주하는 아랍 민족이다. 그들의 조상은 선사 시대부터 아라비아에 거주하는, 구약의 창세기에 언급된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인 셈족이다.[i] 베두윈들의 기원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욕단 (셈의 아들: 아랍인들은 예맨 의 신화적 영웅인 카흐탄 Kahtan으로 부른다)과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그 수가 늘어 부족을 형성하고 부족간 연맹체의 구조를 유지하며 살아오고 있다.[ii] 비록 그들이 사막에서 이곳 저곳을 떠도는 유목민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아랍어를 쓰는 귀족 출신의 배경을 갖고 있다. 심지어 이슬람교가 아랍에 확립(7th century) 되기 이전부터 베두윈들의 언어는 아랍어였고, 그들은 움마야드 왕조 당시의 귀족 이였다 (the Umayyad, 661-750). 그러므로 당시 일부 움마야드 왕가의 상류층 자제들은 아랍어를 배우기 위하여 사막에 찾아와서 그들과 함께 살기도 했으며 또한 중기 시대에도 문법학자들과 이슬람 법학자들이 베두윈 들을 찾아와 그들의 선례를 중시하여 법적 판결을 행하고 그들의 어법에 맞춰 문법규칙을 정했다.[iii] 그러므로 베두윈 들의 전통과 가치관들은 여전히 아랍인들 가운데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베두윈들 역시도 그 자신들의 귀족 출생과 아랍 문화의 뿌리가 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실제 베두윈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화해(중재)의 방법들을 간단하게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늘날 베두윈들은 아라비아, 걸프, 네게브와 북 아프리카 시나이 반도 등에 널리 퍼져서 살고 있으며 대부분 사막뿐만이 아니라 도시 등에도 정착해서 살고 있고 문명화된 현대 도시 베두윈들도 많은 수를 차지한다. 게다가 연대감이 강한 부족의 구조하에서, 지역들마다 각각의 부족과 씨족들에 따라 다양한 화해의 규율과 방법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다양한 규율과 방법들이 있다 할지라도, 모두가 사람들을 중재하는 제 3자라는 공통적인 필요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본 고는 베두윈 부족간에 행해지고 있는 화해 방법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그들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베두윈 뿐만 아니라 다른 아랍인들과의 관계에서도 한층 더 다가가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1.2 사회 구조와 전통의 영향들
베두윈들 간에 행해지는 화해의 방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 부족간의 구조와 그 연대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랍 국가들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오랜 기간 동안, 아랍 반도 전역을 거쳐 아랍인들은 수 많은 지역부족과 씨족들로 나눠져 있었다. 그들은 그 어떤 정치적 조직이나 이념이 아닌, 같은 전통적 정서를 나누는, 혈연 공동체들로 구성 되어 있었다.[iv] 일반적으로, 부족은 수 많은 단위의 씨족들로 형성되어 있으며, 씨족은 더 나아가 많은 가문(가족)들로 나뉘어져 있다. 영어의 개념으로 흔히 혈통, 혹은 가계 (lineages)들을 일컬으며 보통 5대로 형성되어 있는 부계 사회이다 (great-great-grand father). 같은 혈통을 갖는 가계는 베두윈 삶에 있어서 아주 소중한 단위이다. 이 단위는 적어도 1년 중 한 때는 함께 무리 지어 텐트를 치며 사는 목축 경제의 기본 단위가 되기도 한다. 이 다양한 가계 혹은 가문의 리더들은 씨족 의회를 구성한다. 이렇게 강하게 연결된 각각의 가문 그룹들이 베두윈 친족들인 것이다. 한 사람의 베두윈의 삶은 그의 친족들을, 또한 그의 친족들은 그를 의지하며 서로 연결 되어 있는 것이다.[v]
베두윈들의 부족이나 씨족 심지어 친족에 대한 가치는 일반적으로 비 아랍 세계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며 강력하다. 그러므로 눈에 보여지는 많은 베두윈들의 성격이나 특징들은 이 부족 구조와 그 유대감에 깊게 뿌리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베두윈 사회에 가장 큰 미덕 중 하나인 명예는 그룹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부족과 씨족에 대한 전적인 충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이슬람교가 아랍인들의 공식적인 종교이기는 하지만, 베두윈들 에게는 이슬람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내려오는, 그들만의 전통과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사막에는 모스크들도 많지 않았었고 공식적으로 학교 교육( 요르단에서는 베두윈들에 대한 공교육이 약 3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을 받기 이전까지는 이슬람의 교리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베두윈들의 전통은 코란의 가르침보다도 강력할 수 있었으며 아직도 베두윈들 사이에는 민속 신앙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두윈들의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여전히 어느 정도의 제한된 주 정부 통치권 밖에서의 삶의 방식 때문에, 그들은 그들 부족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자치적인 사회적 기구(부족에서 추방한다든지 혹은 피 값의 징수라든지 범죄에 대한 복수 집행 등을 할 수 있는 기능)를 가지고 있다. 아랍인들에게는 권리(정의)보다는 관습(전통)이 더 강력하며 실제로 관습(전통)은 도덕과 종교 면에서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정의인 것이다.[vi]
베두윈 들에게는 세가지 법이 있다: 베두윈 법, 이슬람 법(샤리아) 그리고 일반 법(국가 법). 부족과 씨족의 쉐이크(장로)들은 분쟁의 경우에서 재판관으로서 행사한다. 분쟁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할 경우 부족 안에서 세습적으로 내려오는 재판관들도 또한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좋은 평판을 가진 두 사람의 증인들이 죄를 인정하는데 요구 된다.[vii] 비록 베두윈 법이 공식적인 법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다스리는 가장 강력한 법으로 행사되고 있다.
1.3 베두윈 삶의 특성
베두윈들의 화해 과정은 공식적인 절차라기 보다는 오히려 가치관의 관점에서 바라 보아야 한다. 그들의 문화적 가치와 도덕관들이 이 화해 과정을 이루어 나가는데 있어 깊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막에서의 거친 삶 때문에 베두윈들은 독특하고 다양한 특성과 삶의 양식들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호전성과 충성도가 뛰어난 민족으로 유명하다. 사막으로부터 삶에 필요한 충분한 자원을 얻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다른 부족을 습격하여 재물을 얻는 것이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허용되었다. 상인들과 경작자(개발자)들은 그들의 습격으로부터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카와스(khawas) 라는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viii] 그러나 베두윈들의 습격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그들이 다른 유목 부족으로부터 여자들을 잡아 왔을 때 그들은 여자들에게 어떤 폭력이나 성적 희롱을 행하지 않고 단지 노예로만 삼았을 뿐 이였다. 그들에게 타 부족을 습격한다는 것은 사막의 지루하고도 단순한 삶에 있어서, 생명의 손실 없이 노예와 음식과 교통 수단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수단 이였으며 일종의 삶에 활력소를 주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랍 선교의 선구자인 즈베머(Samuel Zewemer)는 이것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습격이란 유목민들 사이에 정교한 예술이다; 도덕성이 놓은 아랍의 습격자들은 정직하며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규율적이다. 그는 그의 희생자들을 밤에 습격하지 않으며 갑작스런 침략에 의한 피 흘림을 최대한 피하고자 한다. 또한 만약 그의 습격이 실패한다면 그는 가능한 첫 번째 텐트에 들어가 그 텐트 주인의 명예에 호소하여 보호를 요청할 수 있었다.”[ix]
그러나 피 흘림에 관해서 만큼은 그들은 매우 엄격했다. 과거 한 사람의 생명은 씨족의 힘 이였다. 씨족의 세력은 재산으로서가 아닌 얼마나 많은 전사를 가졌는가에 의해 평가되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두 눈을 잃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과 동등하게 여겨졌다. 두 눈을 잃은 사람은 전사로서 전투에 나서거나 낙타를 몰거나 경작자로서 소용이 없기에 부족의 관점에서는 먹여 살려야 하는 쓸모 없는 골치거리가 되는 셈이었다. 그러므로 한 생명에 해당하는 피 값이 시력을 잃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요구 되었다.[x]
손님에 대한 환대 역시 가장 기본적이며 규례[xi]이며 또한 사막의 고초와 위험에 의하여 배어난 베두윈 특성중의 하나이다. 커피는 오늘날도 여전히 손님에 대한 주인의 환대의 표시이며 동시에 친구인지 적인지를 분간하는 방법 중 하나로서 제공된다. 명예의 관례 역시 베두윈들의 화해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개인 뿐 만이 아니라 가족과 부족을 유지하는 명예(Sharaf)에 대한 관례는 아주 엄격하다. 가족 혹은 부족의 전체 명성의 유지와 손실은 세대와 세대를 통해서 전달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명예는 가족이나 씨족의 유착 (아사비야Asabiyyah)과 관련이 있다.‘아사비야’란 씨족이나 부족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끝이 없는 충성을 의미한다. 아랍 역사가인 이븐 칼둔(14세기) 은‘아사비야’란 역사를 움직이는 에너지이며 인류 사회의 기장 기본적인 결속이라고 말했다.[xii]
부족간 습격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자연적 상황에 의하여, 가족의 부와 운명이 불확실 했던 그 이전 때부터, 베두윈들은 모든 것이 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숙명론을 발전시켰다. 오직 유일하게 한 개인이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품위와 명예를 지키는 것 이였다. 유목생활의 환경으로 말미암아 궁핍하게 될지라도 베두윈들은 부를 가진 다른 어떤 자들보다도 더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가진 물질적 소유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명성과 행동에 의해 평가 받는 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xiii]
물질적 부나 소유보다 명예에 대한 높은 평가는 베두윈들로 하여금 자신의 명예를 화해 조정의 과정 속에서도 소중하게 지키게 한다. 만약 누군가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했다면 설령 그의 마음속에서는 상대방을 용서했다 할지라도 그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의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아야만 한다. 실제로 베두윈들의 화해 조정 과정을 보면 일반적으로 그들은 빨리 화해를 맺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과정들을 통하여 올바로 그들의 명예를 되찾는 일없이, 신속한 화해를 맺는 것은 수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화해를 맺는 것 그 자체 보다 화해의 과정가운데 그들의 명예를 바르게 되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2. 분쟁의 종류들과 화해(조정)의 방법들
확대 가족은 아랍사회의 매우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아랍 사회는 개인주의가 아닌 전체 씨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베두윈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들의 부족과 강한 결속력이 있으며, 같은 부족의 사람들은 그에게 있어서 더 큰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확대 가족은 위기의 때나 특별한 때에 함께한다. 만약 부족이나 가족의 구성원 중 누군가가 곤란에 처한다면 전체 가족들은 그를 돕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동원할 것이다.
2.1 부족들 간의 분쟁
만약 어떤 사람이 타 부족의 누군가와 분쟁이 생긴다면 이것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두 부족간의 문제로 확대 된다. 각 부족은 각각의 서열 체계와 문제들을 판결할 수 있는 조직체를 가진 수많은 씨족들로 구성 되어 있다. 만약 씨족이나 부족 내부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각 부족의 쉐이크나 판결자들이 이것을 다루게 된다. 그러나 부족간의 분쟁이 생긴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좋은 평판을 가진 제 3 부족에서의 쉐이크나 판결자 (al-Qadir)가 중재자로 요구 되어지고 그가 두 부족간의 화해 조정 과정을 이끌게 된다. 화해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각 부족의 영역에 발을 들일 수 가 없다. 조정을 이루는 쉐이크가 두 부족을 방문하며 각 부족을 대표하는 쉐이크나 어른들과 오랜 협상을 거치며 그 후 손실(피해)에 대한 대가를 결정하게 된다. 두 부족간에 제 3의 중재자가 필요한가를 설명해 주는 매우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라비아 사막의 유목민 부족들간에 습격이 일어났고, 한 사람이 살해를 당하게 되었다. 그 후 두 부족간에는 피의 분쟁이 시작되었다. 생명에는 생명이라는 원칙아래 반드시 한 사람의 동일한 피 흘림이 요구되었다. 살인을 행한 부족의 쉐이크는 자원하여 화해를 맺기 위해 상대 부족을 방문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도착하여 입을 열기도 전 길 한가운데서 상대 부족에 의하여 총격을 당하여 죽고 말았다.”[xiv]
쉐이크는 다양하게 적용되는 호칭으로 학교 선생님이나 모스크의 관료들 혹은 영어의 “sir”에 해당하는, 나이들은 낯선 이를 부를 때도 사용된다. 그러나 사막에서는 일반적으로 공통체를 대표하는 부족 혹은 가족의 수장 등을 의미한다. 이상적인 쉐이크란 모든 법 집행자나 행정관 보다 우위에 있으며 그들 부족의 번영은 그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xv] 오늘날 쉐이크의 중요성은 부족들의 구성원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자치 지구의 정부 관료들과의 협상을 잘 이루어내는 능력에 달려있다.[xvi]
2.2 직계 혹은 확대 가족간의 분쟁
씨족이나 친족간에 분쟁이 있을 때는, 일반적으로 그 씨족의 쉐이크나 노인들이 중재자가 된다. 분쟁의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가족 그룹들을 기본단위로 하는 연속된 공의회들에 의하여 일반적으로 결정이 내려지며 때로는 씨족들의 공의회를 거쳐 또한 부족의 자체 공의회까지 가기도 한다.[xvii] 가족간의 분쟁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손 위 남자 형제가 중재를 이끄며, 연장자를 공경하는 문화적 영향으로, 여성 역시도 나이가 들게 되면 그 위치가 부상하여,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한다.
상속 같은 가족 구성원내의 남자와 여자 형제들간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베두윈 사회에서는 아버지와 큰 오빠(남자 동생)가 여성의 후견인이 된다. 과거에 여성은 법적인 위치가 없었기에 오직 아버지나 남자 형제의 그늘 속에서만 존재하였다.[xviii] 그러나 비단 과거뿐만이 아닌 오늘날에도 여성들은 전통 관습 속에서 자신의 법적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야르묵 대학의 인류학과 교수인 무함마드 슈나크는 베두윈 여성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아랍여성들까지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상속의 경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상속권리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 아버지의 재산에 대하여, 마을에서 받아들여지는 일반적인 관습처럼, 자신들에게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 권리는 전적으로 남자 형제들이나 혹은 부계 쪽의 남자 친척들에게만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 여성들 중 하나가 그녀의 권리를 요구하고 그녀의 남자형제들과 상속권에 대하여 논쟁한다면 그녀는‘여자는 그녀의 부모의 집에서 결혼할 때까지 머무는 손님이다.’라는 대답을 들을 것이다. 즉 딸은 아버지의 상속에 대한 권리는 없으며 단지 손님과도 같은 환대를 받을 자격만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xix]
2.3 배우자들 간의 분쟁
베두윈들은 일처다부제의 결혼제도를 갖고 있다.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오늘날 베두윈들 가운데는 두 명의 부인이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부 부족에서는 주간 중에는 시내에서 일을 하며 주말에는 사막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보통 이런 경우 각각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xx] 여자들은 보통 사촌과 결혼하며 여성이 결혼 할 연령에 도달하면 양가의 부모들에 의하여 적합한 신랑감이 결정된다. 이러한 친족간의 결혼과 엄격한 관례들은 그들 가문의 명예를 지키며 더욱 안정된 부족간 결속을 원하는 데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다. 베두윈들 사이에서 이혼은 일반적인 일상사이며 당사자들에게 전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양쪽 모두 그들의 평판에 손실 없이 자유롭게 재혼할 수 있다. 이혼을 원하는 남성은 다른 증인들 앞에서 단지 그의 의지만을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여성은 결혼 당시 받았던 지참금을 지킬 수 가 있다. 반면 아내가 남편과 이혼을 원한다면 남편이 했던 방법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단지 남편을 떠나서 아버지의 텐트로 돌아오면 된다. 만약 여성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원한다면 남편은 곧 이혼에 응하게 되고 지참금의 반환이 협상을 통하여 이루어 진다.[xxi]
전통적으로 남편과 아내 사이의 연대감보다도 아버지와 딸 혹은 형제 자매간의연대감이 더 강한 사회가 베두인 사회이다. 윌리엄 랭체스터( William Lancaster)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베두윈 여성은 누구 누구의 딸 누구로 알려지며 그 것이 그녀의 진정한
정체성이다. 그녀는 누구의 아내로서나 누구의 엄마로서 그녀의 정체성을
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와 그녀의 남편 혹은 아들은 법률적으로는
전적으로 다른 그룹에 속하며 심지어 부족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법적 책임은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 혹은 부족의 남성 친척에게 있는
것이다.”[xxii]
아내와 남편간의 문제가 있는 경우 흔히 부인의 큰 오빠 혹은 동생이 중재자가 된다. 문제가 클 경우에는 베두윈의 법과 전통을 잘 아는 쉐이크 혹은 종교적인 법률을 잘 아는 부족은 판단관 (qaadi) 혹은 정부의 관료들 (muktar)이 회의를 소집하여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여자는 그 모임에 참여할 수 없고 그녀의 오빠(남동생)나 아버지가 참석한다. 때로 법정까지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에도 그녀는 아버지나 오빠(남 동생)를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이다.
3. 화해 언약들 (계약들)[xxiii]
3.1 커피 언약
베두윈들은 어떤 손님이라도 신이 보낸 손님으로 여기고 따뜻하게 맞이한다. 커피는 이러한 환대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베두윈들은 언제나 그의 고귀한 손님을 환대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xxiv] 방문을 하자마자 접대 받는 커피는 평화의 언약을 맺는 것을 의미한다. 세 잔의 커피가 접대되는데 각 잔마다 의미를 갖고 있다: 환대 (Daif), 번영(Keif) 그리고 어떠한 문제나 사고에서의 보호 (Sayf).[xxv] 그러나 양쪽 당사자들 간에 문제가 있는 경우 화해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손님은 보통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를 접대하고 마시는 것은 손님과 주인간에 평화를 주고 받는 표시인 것이다.
3.2 소금과 만사프( mansaf- 아랍 전통 양고기 정식)언약
비록 화해가 성사되었다 할지라도 만약 주인이 소금이 들어 있지 않는 빵이나 음식을 대접한다면 이것은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화해 후에 그들은 소금이 들어간 빵과 만사프를 먹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실상 만사프라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보다 동물을 죽여 피를 흘린다는 것에 더욱 의미를 둘 수 있다. 이러한 동물을 죽이는 절차는 일종의 속죄를 의미하며 피의 복수에 대한 보상으로 또 다른 피가 흘려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언약을 잘 보여주는 한 예가 있다.[xxvi] 1929년경 마프락의 베니 핫산 과 제라쉬의 파우리라는 요르단 두 부족 간에 피 흘림의 분쟁이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싸움이 계속되었고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다. 화해를 위한 여러 모임들이 있었으나 언제나 소금없는 빵과 만사프만이 접대될 뿐이었다. 즉 화해가 진지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죽고 죽이는 것만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핫산 왕자(훗날 후세인왕의 동생)는 이것을 알게 되고 중재자로 나설 것을 결심하게 된다. 화해를 주선하는 모임에서 그는 그녀의 어린 딸을 데리고 화해를 요청하게 된다. 그는 양쪽 장로들에게 자신의 딸을 피를 취할 것을 제안한다. 두 부족의 장로들은 중재자로서의 왕자의 결단에 깊게 감동을 받고 결국 화해를 맺게 된다.그 딸의 피 흘림 없이 그들은 소금이 들어간 빵을 함께 나누어 먹은 것이다.
사막 지역에서 음식은 매우 귀한 것으로 대부분의 베두윈들은 그들은 삶에서 때로 배고픔을 경험한다. 고기는 오직 결혼 향연이나 기념적인 행사 혹은 손님들이 있는 경우에만 먹을 수 있으며 [xxvii], 빵은 아주 귀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소금이 들어간 빵과 만사프를 함께 나눈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그들이 마음을 열고 화해가 맺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3.3 피의 언약- 피 값(blood money)[xxviii]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암몬 족속의 후손들로서 베두윈들은 생명을 그 어느 것보다도 귀하게 여긴다.[xxix] 누구든지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죽은 자의 가족에게 생명을 빚졌다는 것이 고대 아랍사회의 법률이었다. 피의 복수에 대한 법은 코란에서도 인정되어있고 아라비아의 어느 지역에서도 신성한 권리로 여겨진다. 아랍인에게 있어서는 피 흘림에 대하여 어떤 마땅한 댓가나 복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욕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법은 계속 되는 분쟁이나 피 흘림을 막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아랍의 타운이나 사막에서는 그 어떤 큰 몸 싸움 없이 몇 시간 동안 계속 말다툼만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직접 맞부딪쳐 싸우기를 겁내기 때문이 아니라, 피 흘림과 또 그에 따라 야기되는 피의 복수를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이다.[xxx]
피 흘림의 복수에 대한 법은 누구든지 피를 흘린 사람은 그 죽은 자의 가족에게 피에 대한 대가로 피 값이나 혹은 생명을 빚졌다는 것이다.[xxxi] 그 가족들은 살인자의 생명을 요청하거나[xxxii],혹은 그와 관련된 5대를 포함하는 가족에 대한 생명 값을 주장할 수 있다.[xxxiii] 이 “ 5대의 그룹”은 그의 부계 쪽의 5대를 모두 포함한다. 분노에 가득 찬 처음 5일 동안 생명이 취해지지 않았다면 일반적으로 피 값의 거래가 받아들여진다.[xxxiv] 때때로 공식적인 언약 문서가 오고 가거나 (sulha) [xxxv] 혹은 화해 후의 특별한 예식등이 거해지기도 한다. 게투르드 벨은 그 화해 예식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랍인들이 그들의 피의 분쟁을 끝내려고 할 때 두 원수들은 상해자의
텐트 앞에 함께 선다. 그 텐트의 주인은 그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들고
남쪽으로 돌아선 후 마당에 원을 그리며 신을 부른다. 그 후 그는 텐트의
자락을 베어내어 화로에서 한 줌의 재로 만든 후 원안으로 던지고
일곱 번 그의 칼로 선을 내려친다. 그 후 가해자가 그 원안에 들어가고
그의 적의 친척 중 한 명이 크게 외친다.‘나는 나에게 죄를 범한 살인자를 취합니다!’”[xxxvi]
그러나 오늘날 베두윈들은 현대 문명에 많이 노출되었고 또한 도시에 거주하는 베두윈들도 많다. 그러므로 중대한 범죄가 아닌 이상은 흔히들 사과의 표시로 선물을 주기도 한다. 남자들은 낙타나 칼 혹은 새 옷들을 여자들은 보석이나 옷 혹은 음식 등을 요리해 준다.
4. 제 삼자의 필요
베두윈들의 화해 과정에는, 어떤 수준의 화해(조정)에서도 일반적으로 제 3자의 개입을 통해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부족간의 분쟁뿐만이 아닌 개인의 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왜 제 3자가 필요한지에 대한 그 배경을 단순하게 말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은 오랜 기간 동안 전통을 통하여 형성 된 것 이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중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조건들이 있는데 제 3자는 반드시 양쪽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자여야만 한다.[xxxvii] 중재자는 또한 높은 도덕적 명성을 가져야 하며 양쪽 부족만이 아닌 그 지역에서도 존경 받는 자여야 한다. 그는 공정한 자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자여야 하고 또한 양쪽 부족으로부터 어떤 원망이나 원성이 없는 자여야 한다. 그러므로 중재자는 그저 제 3 부족에서 왔다는 것만으로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다.
베두윈들은 명예를 높이 평가한다. 그들이 직접 조정 과정에 참여한다면, 적들과 직접 대화한다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제 3자를 가졌을 때 그들은 어떤 명예의 손실이나 또 다른 분쟁 없이 정확히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그 어떤 형태로든 그들이 명예를 손실했다면 그들은 다른 부족들(제 3 자들)앞에서 그 것을 되찾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제 3자라는 증인을 가졌을 때 이것은 더욱 유익하게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제 3자는 중재자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명예를 회복한 것에 대한 증인도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제 3자는 또한 두 부족간의 또 다른 분쟁을 막을 수 있으며 그 어떤 손실 없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5. 전도적 제안
다른 무슬림들과 같이 베두윈들은 죄를 행위적 개념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행과 종교적 의무를 행함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선행이나 악행을 헤아리는 것만이 아닌 하나님과 우리간의 관계라는 면을 더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단지 죄를 저지른 것뿐 만이 아니라 죄인이 된 것이다. 우리의 속 사람은 이미 더럽혀 졌으며 온전하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피의 복수에 대한 전통으로 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되며 제 3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단 피가 흘려졌다면 이것은 반드시 또 다른 피로만 배상 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죄를 피 값(돈)으로 지불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죄는 그 어떤 다른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죄에 대한 대가로 우리는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이다.- 영원한 사망 (롬 6:23, 히 9:27)
베두윈들에게는 두 부족간의 관계에서 아무런 죄책이 없는 제 3 부족의 쉐이크만이 평화 협정을 이룰 수 있다. 아무 죄책이 없는 자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전통은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제 3 자 쉐이크로서 베두윈들에게 강조할 수 있게 해준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단 하나의 죄도 없이 완전한 삶을 사신 분이다.(고후 5:21).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중재자로 나서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는 죄가 없으신 완전한 인간이시며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재자로서의 예수님을 강조한다면 베두윈들에게 있어 이해하기에 쉬운 접촉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i] Alan Keohane, Bedouin, (London, kyle Cathie limt, 1994), p.9.
[ii] Ibid.p.16
[iii] 공일주, 아랍문화의 이해, (서울: 대한 출판사, 1996), pp.247-250.
[iv] S.M. Zwemer. Arabia: The Cradle of Islam, (USA: The caxton press, 1900), p.159.
[v] Shirley Kay, The Bedouin, (USA: Crane, Russak & company, 1978), p.78.
[vi] Samuel Ives Curtiss, Primitive Semitic Religion Today,(UK:London, 1902), p.65
[vii] Shirley Kay, p.80.
[viii] Alan Keohane, p.10.
[ix] S. M. Zwemer, p.264.
[x] Ibid.
[xi] Shirley Kay, p.19.
[xii] 공일주, p.265.
[xiii] Alan Keohane, p.70.
[xiv] S. M. Zwemer, p.265.
[xv] Austine Kennett, Bedouin Justic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25), p.145.
[xvi] Shirley Kay, p.80.
[xvii] Ibid., p.79.
[xviii] William Lancaster, The Rawala Bedouin Today, (USA: Waveland, 1997), p.45.
[xix] Mohammed Shunnaq, Women and the Social Reality behind the process of inheritance: An Anthropological Study of a Society in Northern Jordan, (Jordan; Department of Anthropology Institute of Archeology and Anthropology, 1995), p.6.
[xx] 사막의 텐트를 방문하다 보면 나이들은 베두윈 여성 혼자 거하는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남편은 시내에서 젊은 부인과 살고 있고 그녀의 자녀들 역시 시내에서 또 다른 어머니의 집에 거하면서 학교에 다니거나 직장에 다니기 때문이다.
[xxi] Mohammed Shunnaq, p.108.
[xxii] William Lancaster, p.58.
[xxiii] 요르단의 선교 병원 창설자와 행정 담당자와의 인터뷰(저자가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음) 07.07.2008
[xxiv] Gerturde Bell, Syria:The Desert and the Sown,(UK: London, 1908),p.33.
[xxv] 공일주, 아랍문명의 이해, (서울: 예영, 2006), p.189.
[xxvi] A.C와의 인터뷰(저자가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음)
[xxvii] http://kcm.co.kr/ 11.2008
[xxviii] 피 값으로서의 시나이 반도에서 한 사람의 생명 값은 낙타 41마리에 해당되며 여성의 경우에는 남자에 의해 죽었는가 여자에 의해 죽었는가에 의해 달라진다. 만약 여자가 죽인 것이라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동등한 힘이 있었던 결로 추정되어 일반적인 피 값의 낙타 41마리가 요구된다. 그러나 남자에 의해 살해되었다면 일반적 피 값의 4배가 요구된다. - Austine Kennett, pp.131-133.
[xxix] 생명을 중시하는 영향으로 흔히 사막에서의 자살의 경우는 도시보다도 훨씬 적은 편이다.- E. H. Palmer, Desert of the Exodus, (UK: Cambridge university, 1871), p.80.
[xxx] S. M. Zwemer, p.265.
[xxxi] Claude Reignier Conder, Heth and Moab, (UK:London, 1883), p.318.
[xxxii] William Charles Maughan, Alps of Arabia, (UK:London, 1875, reprint 2005), p.185.
[xxxiii] Numbers 1
[xxxiv] Shirley Kay, p.79.
[xxxv] Joseph Ginat, Blood Disputes among Bedouin and rural Arabs in Israel, (Pittsburgh; University of Pittsburgh, 1987), p.34.
[xxxvi] Gertude Bell, p.42.
[xxxvii] Joseph Ginat, p.31.
2009년 1월 11일 일요일
이집트의 수피즘: 카이로의 사당 문화
원제: Sufism in Egypt: The Shrine Culture of Cairo
Sophia Kim
들어가는 말
흔히 이슬람을 율법적인 종교라고 말한다.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무슬림들에게 남은 것은 거룩한 책 꾸란과, 예언자의 언행록인 하디스이다. 무함마드가 마지막 예언자였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더 이상 예언자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무슬림들은 마지막 예언자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려고 노력한다. 전철에 타면 하디스에 나오는 ‘탈 것에 탈 때 하는 두아에 دعاء الركوب’ 를 암송한다. 모스크 문에는 모스크에 들어갈 때 하는 두아에와 모스크에서 나올 때 하는 두아에(دعاء دخول المسجد & دعاء الخروج من المسجد)가 붙어있다. 라마단 동안 모스크 주변을 걷다보면 작은 나뭇가지 같은 것들을 쌓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예언자가 음식을 먹은 후 이를 쑤셨다고 하는데서 기원한 것이다. 또한 라마단에 해가 진 후 예언자가 대추야자를 먹는 것으로 금식을 깨었다고 해서 라마단 달 저녁 무슬림들이 금식을 깰 시간이 되면 대추야자를 나누어주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예언자의 말과 행동에서 유래한 풍습들은 많이 있다.
풍습뿐 아니라 건물, 모스크의 문양 등에서도 예언자의 언행에서 유래한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무함마드가 가장 칭송할 만한 자비로운 행동으로 꼽은 두 가지가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과 무지한 자에게 종교를 알려주는 것이었다는 점에 기인하여 이집트에는 싸빌(سبيل, 길가는 사람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식수를 모아놓은 건물) 쿠탑(كتاب, 꾸란 학교)이 유적으로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예언자의 언행을 따라 해도 예언자는 죽은 사람이고, 남아있는 것은 문자들뿐이다.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창조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깨닫는다거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잘 깨닫고 있지 못하지만 문자만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는 커다란 빈 공간이 있다. 영적인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하나님이 기도를 듣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느냐고 물으면 인간을 만드시고 귀를 만드신 분이 왜 기도를 듣지 못하시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은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없다면 그들의 기도는 올라가는 한쪽 방향만 열려 있는 기도이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기도보다는 어떤 일을 해결받기 위한 기도일 수밖에 없다. 일이 잘 해결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 것으로 알고 감사하는 것이다. 함두릴래 الحمد لله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의미의 이 말은 무슬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다.
영적인 공백을 채워주지 못하는 종교는 오래 가기 힘들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갈급함을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이슬람을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죽은 후 천국에 가기 위해서이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무슬림이기만 하면 천국에 가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나쁜 무슬림이라도 정해진 기간 동안 지옥에서 벌을 받고 나면 결국은 천국에 가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슬람을 떠나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의 영적인 갈급함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수피즘이다. 이슬람의 신비주의인 수피즘은 이슬람의 영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수피즘을 이슬람의 영성이라고 말한다. 이 글에서는 수피즘이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하여, 성자 개념, 사람들이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는 실제적인 공간이 되는 사당(마깜 مقام)이 하는 역할과 그 곳을 찾는 사람들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수피즘은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수피즘의 영향력이 크다고 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이집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실제적인 공간과 사람들을 언급하기 위해 이집트의 카이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수피즘(앗타사우프, التصوف)이란?
수피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움마이야드 왕조가 세계 정복에 힘을 기울이고 있을 때, 이러한 정복 활동으로 인해 세속화 되어가는 세상을 경계하며 지옥의 공포를 외치고 다녔던 경건한 신자들에게서 수피즘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수피
صوفى라는 이름도 이들이 입고 다녔던 어두운 색깔의 양모 옷 수프 صوف에서 그 유래를 찾는 학자들이 많다.
이에 반해 이슬람의 영성은 예언자 무함마드시기부터 존재해 왔으며, 드러나지 않은 채 무함마드 사후에도 계속해서 지속되고 풍성해져 가다가 나중에 수피즘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파즐루 라흐만은 예언자 무함마드는 알라와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신비적인 알라의 임재를 이미 느끼고 있었으며, 그러한 그의 영성은 강력한 종교적, 윤리적 사회의 건설을 통해 역사적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마틴 링은 수피즘이 곧 이슬람이며, 이슬람의 참 영성은 선택받은 수피들을 통해 이어져 왔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첫 수피 스승 (쉐이크 شيخ)이었으며 모든 영성을 지닌 자로서 이후의 다양한 영성을 지닌 모든 수피들의 영적 스승이요 기원이 된다.
이와 같이 수피즘의 기원이 예언자 무함마드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수피즘의 정통성은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문제가 되었다. 그 중 가장 크고 분명한 이유는 수피즘이 추구하는 바가 정통 이슬람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수피들이 추구하는 것은 알라로부터 직접적으로 얻게 되는 지식과 알라와의 하나됨이다. 이는 화나 فناء(소멸)와 바까 بقاء (머무름)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으로, 화나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남’, 바까는 자신 안에서 또는 신과 함께 머묾으로써 진실한 ‘나’ 곧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바까의 상태는 수피의 기본적인 가르침인 ‘세상의 본질은 신’이라는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다. 즉, 이 세상은 그 본질이 신의 현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까의 상태에서 신은 수피에게 존재하고 그를 통해 현현하게 되는 것이다. 수피는 신이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을 보고, 듣고, 말하며 신의 대리자로서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화나와 바까의 상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육신(훌룰 حلول)과는 현저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화나의 상태는 성육신이라기보다는 신의 임재 앞에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알라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정통 이슬람은 수피즘의 이러한 이론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으며, 이는 꾸란과 하디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이단적인 외부의 영향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더 나아가 9세기 후반에 주요 논쟁점으로 등장했던 성자 개념은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성자라는 특별한 계층을 대두시킴으로써 알라와 인간 사이에 중재자 개념을 용납하지 않는 울라마(علماء이슬람법학자들)와 더욱 첨예한 대립을 가져왔다. 수피즘은 무함마드 사후 더 이상 예언자를 기대할 수 없는 이슬람에서, 예언자의 영성을 잇는 특별한 사람들인 성자들이 예언자를 계승하여 신으로부터 오는 영감을 이어나간다고 말한다. 수피즘에서 예언자 무함마드는 신에게 가까이 가기를 추구하는 모든 성자들의 모델이며, 또한 신의 현현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완전한 인간이다.
수피즘이 꾸란에서 기원한 것인지, 즉 원래부터 이슬람에 존재하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시작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이슬람 역사 내내 수피즘은 계속해서 존재해 왔다는 사실이다. 수피즘은 9세기에 이르러서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13세기에 절정을 이루면서 사람들 사이에 깊이 파고들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유명한 이슬람법학자였다가 11세기 후반 수피가 되어 이슬람 법학자들로 하여금 수피즘을 다시 생각하도록 도전한 가잘리의 의견을 참고할 수 있다. 그는 이슬람에서 수피즘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을 이야기 했다. 그것은 신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식의 한계를 수피즘이 채워준다는 것이었다. 가잘리는 이슬람에 빠져있는 영성을 채워주는 수피즘의 역할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성자(왈리, ولى)들은 누구인가?
성자들은 수피들 중에서 수피의 길(타리까, طريقة)의 마지막 단계, 즉 화나와 바까의 단계에 도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소유하게 된 자들이다. 수피즘에는 모든 수피들이 걷게 되는 수피의 길이 있는데 그 길을 걷는 수피들 중 일부만이, 극소수만이 성자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모든 수피들의 최대의 목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얻는 단계인 성자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성자들은 예언자의 영적인 계보를 잇는 존재들로서 일반 사람들과는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은 성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예언자 무함마드를 계승하는 자들인 성자들은 예언자들이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듯이, 신에게 근접한 자들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만이 얻을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자들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예언자 무함마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적 계보이다. 혈연적인 가족 계보와는 구분되는 영적인 계보(이스나드, اسناد)는 성자가 예언자에게서 축복 (바라카, بركة)을 유전적으로 계승받았다는 증거이며, 또한 영적 능력이 이어져 내려오는 통로로 인정되었다.
성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으로 인해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들이고, 또한 하나님에게 근접한 자들로서,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자들로서 그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예언자를 계승하는 자들로서 계시된 법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움마(أمة, 이슬람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실제적인 힘이라고 수피들은 주장한다.
3) 이슬람 사회 속의 성자들: 수피 사당 문화
일반 대중들에게 있어서 성자들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슬람 사회에서 수피즘의 영향과 성자 개념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곳은 수피 사당이다. 수피 사당은 성자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성자가 죽은 후 그 무덤을 중심으로 세운 건물로, 보통 돔으로 덮여 있는 작은 건물이며, 그 건물 안에 관이 놓여 있고, 관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유명한 성자들의 경우에는 관 주위에 아름다운 문양의 울타리가 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로부터 관을 보호하고 있다. 관에 가까이 할수록 더 좋다고 사람들이 믿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성자로부터 축복을 축적하고, 사업이나, 질병 등의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성자들의 무덤을 방문한다. 방문자들이 성자에게 요구하는 가장 일반적인 것은 병으로부터 치유 받는 것이다. 이 경우 무덤 주위의 물품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며, 때로 병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생명을 상징하는 물의 경우, 무덤 근처에 있는 샘에서 물을 떠서 사용하기도 하고, 무덤 근처에 있는 나뭇잎이나 나무 열매도 특별한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병이 잘 낫기로 유명한 한 사당을 방문한 남성은 그 곳에서 기도하면 효험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다리가 아픈 사람, 머리가 아픈 사람이 많이 치유 받는 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아팠다가 나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실제로 들은 적은 없다고 했다. 실제로 본 적이 없는데도 그토록 확신하는 모습이 순박하고 정겨워 보이면서도, 있지도 않은 사실에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필자가 루까이야 수피 사당(السيدة رقية , 1133)을 방문 했을 때 마침 그 곳을 찾았던 한 부부가 있었다. 아내가 며칠 후 수술을 할 예정이라서 이곳을 방문했다는 아저씨는 마당에 떨어져 있는 나무 열매를 주어서 아내에게도 주고 자신도 먹었다. 함께 방문한 친구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말에 아저씨는 이 열매를 먹으면 곧 결혼하게 될 것이라며 친구에게도 열매를 주었다. 그 부부는 이 사당 뿐 아니라 다른 큰 사당들을 모두 돌고 있었다. 바라카는 많이 축적할수록 좋은 것이고, 어느 사당에서 기도한 것이 효험을 볼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부부들처럼 유명한 여러 사당들을 모두 방문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들이 사당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에게 근접한 존재인 성자들이 자신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에게 사정을 아뢰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은 성자들이 방문자들의 요청을 언제든 기쁘게 받아 주며, 하나님과 방문자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 준다고 믿고 있다. 무슬림들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하기 힘든 초월적인 존재이지만, 성자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특별한 존재이면서도 또한 동시에 무슬림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존재이고,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는 존재로 여겨진다. 무슬림들은 성자를 찾아가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토로하고 위로와 응답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4) 이집트의 수피즘
오늘날은 과거보다 수피들의 수가 줄어들었다고들 한다. 영성을 추구하고, 세속화 되는 것을 경계하는 수피즘의 성향이 이슬람 세계 전반에 불고 있는 현대화의 과정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시골이나 변두리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수피즘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집트이다. 이집트에는 리화이, 샤딜리야, 티자니야, 아흐마디야, 바다위야, 부르하니야, 루화이야, 나끄쉬반디야, 알 바지야 등 여러 종단들이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또한 이집트의 하산 알-반나가 창설하였고, 아랍 세계 전체로 퍼져나간 무슬림 형제단은 티자니야 종단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집트의 수피 인구는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고, 문서마다 수치의 차이도 크다. 이집트 인구의 3분의 1정도로 보는 자료에서부터 90퍼센트까지 보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남자만 수피로 가입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집트 인구의 1/3이라는 숫자가 적은 숫자는 아니다. 정확한 수치는 알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이집트 곳곳에서 여러 수피 종단들과 많은 사당들, 지크르 홍보문, 지크르 ذكر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집트에서 수피즘의 강세를 느낄 수 있다. ⌜이집트의 신비주의자들⌟이라는 책은 수피즘이 원래 이집트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근거 중에 하나로 이집트에 수피의 수가 가장 많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이집트에서 신실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 ‘혹시 수피세요?’ 하고 물어보면,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 재차 물으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집트에 수피즘이 왕성하기는 하지만 수피즘에 대한 인식이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수피가 아닌 사람들의 수피즘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은 수피들도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지만 약간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수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좀 난감해 하면서 그들도 분명 무슬림들이라는 사실을 먼저 강조한다. 그런 후에 그들은 정도를 걷는 다기 보다는 좀 옆길을 걷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해 준다. 카이로의 모스크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함두릴래, 나는 수피가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왜 그것이 ‘함두릴래’냐고 물으니, 수피들은 나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수피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자신도 호세인 모스크에 가고 그 곳의 사당을 방문하지만 수피들과는 다른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고 대답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사람의 경우에는 자신이 수피임을 적극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별로 숨기려는 기색도 없었다. 그는 수피들이 자신이 수피임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수피즘이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집트의 수피들의 경우에는 숨기고자 하는 기색이 많이 보였다. 한 아저씨는 수피냐는 질문에 나는 순니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순니인 것은 알고 있는데 혹시 수피시냐고 재차 물으니 말없이 그렇다는 표시를 했다.
필자가 만나 수피들은 대부분 신실하고, 친절하며, 다른 사람의 종교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기 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필자가 알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누며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에게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이슬람이 참 종교임을 강조하다가 결국에는 무슬림이 되기 위한 신앙고백(샤하다, شهادة)을 고백하라고 강요하다시피 말하기도 한다.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지 않느냐며, 어서 신앙고백을 하고 무슬림이 되라고 조르다시피 한다. 다른 것은 아예 보지도 듣지도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수피가 아니었다. 이러한 차이가 율법에 매어 있는 것과 영성을 추구하는 것 사이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좀 지나친 것일까?
5) 카이로의 사당 문화
① 카이로의 사당들
카이로에는 호세인 모스크나, 사이에다 자이납, 아이샤 모스크, 싸이에다 나피사 등 사당을 포함하고 있는 크고 유명한 모스크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구석 구석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규모의 사당들이 여기 저기에 많이 있다. 무덤이 모여 있는 곳에 생겨난 마을이나, 옛 거리들을 걷다보면 이런 작은 사당들을 자주 보게 된다. 어떤 것들은 버려져서 쓰레기가 쌓여 있어서 이곳은 이제 사당이 아닌가 하고 물으면 그래도 여전히 사당은 사당이라고 사람들이 말해 준다. 크고 화려한 사당들은 사람들도 많이 모이고, 사당도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많은 사람들의 손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관 주변이 아름다운 울타리로 둘려 있다. 반면에 작은 사당들은 대부분 수놓은 깨끗한 천으로 덮여 있고, 주변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거나 어떤 특별한 장식들이 되어 있지는 않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 고양이가 들어가서 앉아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한 옛 거리에서 발견한 사당에는 여자들이 서 너 명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있을 곳이 없어서 그곳에 살림을 차리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데 오가며 자주 들른다고 말했다. 다른 곳에 있는 한 사당은 지역 성자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왜 성자인지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수리 중이라서 들어가 확인해 볼 수는 없었지만 그 곳에 그 성자와 일곱 아들이 함께 묻혀 있다는 것, 이집트의 다른 성자들처럼 그 성자도 이집트인들을 품은 사람이라는 설명을 바로 이웃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유명한 사람이냐고 물으니까 그렇지는 않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성자라고 말했다.
작은 사당들이 모여 있는 곳은 복잡한 시내 거리 보다는 무덤이 모여 있는 곳에 생긴 마을이나, 옛 거리들이다. 언젠가 방문한 적이 있는 한 무덤 마을은 사람들에게서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곳이었다. 길 가면서 우연히 스쳐 지나가던 아이를 안고 있던 한 아주머니는 마치 돈을 맡겨 놓은 듯이 ‘우리 가난하고 불쌍하니까 돈을 달라’고 말했다. 외국인에게 돈을 바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길가에 있는 무너져 가는 싸빌-쿠탑의 사진을 찍으려 하자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그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강하게 말했다. 왜 안 되느냐고 묻자 이유도 말하지 않으면서 절대 안 된다고 소리 지르듯이 말했다. 좀 더 자세히 물어보니 그 마을에 있는 모스크에 있는 사람(아마 이맘이 아닐까 싶다)이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보다 조금 전에 모스크에서 만났던 불친절하던 한 사람이 생각났다. 나중에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그 마을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며 외국인이 혼자 가면 위험하다고 말해 주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별로 위협까지는 느끼지 못했지만, 외부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느껴지고, 이집트 사람들은 친절하다는 통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곳이었다.
② 사당을 찾는 사람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라마단이나 성자의 축일 때에는 더욱 많아지지만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도 사람들은 사당을 자주 찾는다. 지역 성자로 알려진 루까이야 사당의 경우 하루 평균 50명 정도 방문을 하고 금요일에 하는 지크르 때에는 200명 정도 모인다고 한다. 그 곳에서 조금 더 가면 있는 싸이에다 나피사 모스크는 사당을 포함하고 있는 매우 크고 아름다운 모스크인데 그 곳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 무덤 마을 외곽에 있는 작은 사당은 평소에는 잠가 두었다가 방문객이 와서 요청을 하면 열어주곤 하는데, 그 작은 모스크에도 하루 평균 8명 정도의 방문객이 있다고 했다. 필자가 참석했던 한 지크르에는 남자들만 250-300명 가량의 수피들이 참석했었다. 그 사당의 경우 지크르가 일주일에 2번 있었는데 그렇게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이 지크르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셈이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이 모두 다 수피는 아니다. 성자의 무덤을 방문하는 것은 메카 순례를 의미하는 하즈 حج와는 구분하여 지야라 زيارة(방문이라는 뜻)라고 하는데, 전통에 의하면 지야라는 원래 이슬람 신학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죽음과 내세를 상기한다는 의미로 행해진다. 수피가 아니라고 밝힌 한 사람 역시 호세인 모스크에 가고 사당을 방문하지만 그곳에 대고 기도하지는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그 곳에 대고 기도하는 것은 이슬람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알라에게 개인적으로 아뢰고 싶은 것들은 하루 5번 행하는 기도시간에 두아에를 통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무슬림들에게 지야라는 단순한 상기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매일의 고달픈 문제들을 가지고 사당을 찾으며, 그 곳에서 응답과 위로를 구한다. 반드시 수피 종단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해도 성자의 무덤을 찾는 것이다.
호세인 모스크나, 싸이에다 나피사, 사이에다 자이납, 아이샤 모스크 같이 크고 유명한 사당의 경우 지역 사람들뿐만 아니라 멀리에서도 찾아온다. 어렵게 여행 경비를 모아 1년에 한 번 정도 방문하면서 주변의 큰 모스크들을 모두 돌아보고 가기도 하고, 몸이 안 좋거나, 답답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루 날을 잡아 좋아하는 사당을 방문하기도 한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멀리서 오는 경우도 있고, 다른 여자 친척들과 함께 오기도 한다. 멀리서 온 한 여성을 만나 굳이 이렇게 멀리까지 올 이유가 있느냐고 물으니, 동네에도 사당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크고 훌륭한 것은 없다고 답했다. 머리가 아파서 왔다는 그 여성의 말을 참고로 할 때 크고 좋은 사당이 더 효험이 좋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당이 딸린 한 모스크에서 만난 여성은 사당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가슴 아프고 문제가 있어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사당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아프거나, 수술을 앞두고 있거나, 시험을 준비하고 있거나 등의 실제적인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직업이 없어서 오랫동안 고통 받고 있는 사람, 도저히 나눌 수 없는 사연이어서 눈물로 대신 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유명한 사당에서 관 주변의 울타리를 붙들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여성을 본 적이 있다. 오랫동안 어찌나 서럽게 흐느끼는지 보고 있는 사람도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여성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며 아픔을 나누는 사람들. 내가 그 중 한 사람에게 왜 우는지 아느냐고 묻자, ‘하나님은 아신다 (الله هو عارف 알라, 후와 아에리프)’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들도 왜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함께 슬픔을 나누고 있었다. 나의 슬픔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기에 남의 슬픔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의 삶이 많이 힘들어 보였다.
③ 사당 문화
사람들은 사당에 가서 무엇을 할까? 사당을 찾는 가장 큰 목적은 성자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는 것이다. 사당을 찾은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관 주위를 돌면서 입을 맞추고 꾸란 구절을 외우고, 죽은 성자의 사방에 대고 기도하기 위해 관 주변을 돌면서 소원을 아뢴다. 관의 머리 있는 부분에 특별한 장식을 해 놓아서 머리 부분이 어디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지만, 그래도 관의 사방에 대고 기도를 한다. 인격체라면 어느 방향에서 기도를 하든지 다 들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한데, 그들은 성자의 사방에 대고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매우 간절하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간절한 마음이 역력히 보이는 표정으로 관을 향해 고개를 든다.
관 앞에는 소원을 적은 종이를 넣기도 하고 돈을 넣기도 하는 함이 따로 있지만, 사람들은 가능하면 관이 있는 곳 주변에 종이나 물건을 놓기를 원한다. 유리로 막혀 있고 울타리가 둘려 있는 관 주변에 성자에게 주는 선물들, 소원을 적은 종이들, 돈, 스카프 등의 물건들이 들어가 있다. 몸이 아파서 직접 오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그 사람에게 속한 물건을 관 옆에 놓아둠으로써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도 하고,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결혼을 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경우에는 자기 옷을 넣어 놓기도 한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보이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사당은 문제 해결을 위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위로를 얻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쉬는 날 사당을 방문한다. 2년째 남편이 직업을 찾지 못해 하루 하루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다는 한 여성은 쉬는 날마다 사당을 방문한다고 했다. 그 여성에게 사당은 힘든 삶을 지탱할 힘을 얻는 곳으로 보였다. 어려운 살림에 조금씩 돈을 모아 멀리서 큰 사당을 찾아오는 여성들에게도 사당은 단순한 문제 해결 장소가 아니라, 삶의 고통을 하소연 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위로를 얻는 곳일 것이다. 사람들은 사당에 앉아서 도란 도란 이야기도 하고, 한 구석에 앉아 꾸란을 읽기도 한다. 그냥 조용히 앉아 쉬기도 하고, 학교 간 딸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수술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찾는 곳이고, 시험을 앞두고 기도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의 눈에 사당은 힘든 삶에서 잠시 벗어나 사랑하는 성자 옆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비쳤다.
사람들은 성자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크고 화려한 사당으로 향하는 골목길 내내 꽃을 파는 사람들, 향수를 파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꽃들은 사당에 있는 성자에게 주는 꽃이라고 했다. 사당 안에 들어가 보니 정말로 관 주변의 울타리에 아까 밖에서 보았던 꽃들이 여기저기에 많이 꽂혀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꽃은 왜 꽂아 놓는 것이냐고 물어보았더니 누군가를 사랑하면 선물을 주기 마련이라며 성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슬람에서 하나님은 초월자이시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사람들 사이에 거하는 성자들을 향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내재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기에 기꺼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알라에게 대신 아뢰어 주는 성자들이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가는 말
이슬람의 성자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와 매우 흡사하다. 사당 옆에 살고 있던 한 가난한 여성은 성자들이 자신들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성자들은 초월하시는 하나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고, 기꺼이 인간들의 소원을 대신 말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들도 이 땅에 살다가 죽었기에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고 기꺼이 들어준다. 그런 성자들에게 사람들은 사랑을 표현하고 위로를 구한다.
성자들은 우리들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여성에게 왜 그러냐고, 죄 때문에 그런 것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자신들은 하루에 5번 기도하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펄쩍 뛰었다. 그런데 왜 성자가 필요하냐고 재차 물었더니 답변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곳에 살면서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사람, 죽어서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한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교제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두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 사당의 관 주변을 두르고 있는 울타리를 잡고 하염없이 울던 여인이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았다. 어떤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을까? 이혼당한 여인은 아니었을까? 성경은 한 여성과만 결혼할 것을 말하고 있고 이혼을 금하기 때문에 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성경이 말하는 결혼관을 동경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많은 무슬림 여성들에게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일 뿐이다.
Sophia Kim
들어가는 말
흔히 이슬람을 율법적인 종교라고 말한다.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무슬림들에게 남은 것은 거룩한 책 꾸란과, 예언자의 언행록인 하디스이다. 무함마드가 마지막 예언자였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더 이상 예언자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무슬림들은 마지막 예언자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려고 노력한다. 전철에 타면 하디스에 나오는 ‘탈 것에 탈 때 하는 두아에 دعاء الركوب’ 를 암송한다. 모스크 문에는 모스크에 들어갈 때 하는 두아에와 모스크에서 나올 때 하는 두아에(دعاء دخول المسجد & دعاء الخروج من المسجد)가 붙어있다. 라마단 동안 모스크 주변을 걷다보면 작은 나뭇가지 같은 것들을 쌓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예언자가 음식을 먹은 후 이를 쑤셨다고 하는데서 기원한 것이다. 또한 라마단에 해가 진 후 예언자가 대추야자를 먹는 것으로 금식을 깨었다고 해서 라마단 달 저녁 무슬림들이 금식을 깰 시간이 되면 대추야자를 나누어주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예언자의 말과 행동에서 유래한 풍습들은 많이 있다.
풍습뿐 아니라 건물, 모스크의 문양 등에서도 예언자의 언행에서 유래한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무함마드가 가장 칭송할 만한 자비로운 행동으로 꼽은 두 가지가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과 무지한 자에게 종교를 알려주는 것이었다는 점에 기인하여 이집트에는 싸빌(سبيل, 길가는 사람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식수를 모아놓은 건물) 쿠탑(كتاب, 꾸란 학교)이 유적으로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예언자의 언행을 따라 해도 예언자는 죽은 사람이고, 남아있는 것은 문자들뿐이다.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창조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깨닫는다거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잘 깨닫고 있지 못하지만 문자만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는 커다란 빈 공간이 있다. 영적인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하나님이 기도를 듣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느냐고 물으면 인간을 만드시고 귀를 만드신 분이 왜 기도를 듣지 못하시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은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없다면 그들의 기도는 올라가는 한쪽 방향만 열려 있는 기도이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기도보다는 어떤 일을 해결받기 위한 기도일 수밖에 없다. 일이 잘 해결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 것으로 알고 감사하는 것이다. 함두릴래 الحمد لله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의미의 이 말은 무슬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다.
영적인 공백을 채워주지 못하는 종교는 오래 가기 힘들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갈급함을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이슬람을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죽은 후 천국에 가기 위해서이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무슬림이기만 하면 천국에 가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나쁜 무슬림이라도 정해진 기간 동안 지옥에서 벌을 받고 나면 결국은 천국에 가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슬람을 떠나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의 영적인 갈급함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수피즘이다. 이슬람의 신비주의인 수피즘은 이슬람의 영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수피즘을 이슬람의 영성이라고 말한다. 이 글에서는 수피즘이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하여, 성자 개념, 사람들이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는 실제적인 공간이 되는 사당(마깜 مقام)이 하는 역할과 그 곳을 찾는 사람들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수피즘은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수피즘의 영향력이 크다고 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이집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실제적인 공간과 사람들을 언급하기 위해 이집트의 카이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수피즘(앗타사우프, التصوف)이란?
수피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움마이야드 왕조가 세계 정복에 힘을 기울이고 있을 때, 이러한 정복 활동으로 인해 세속화 되어가는 세상을 경계하며 지옥의 공포를 외치고 다녔던 경건한 신자들에게서 수피즘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수피
صوفى라는 이름도 이들이 입고 다녔던 어두운 색깔의 양모 옷 수프 صوف에서 그 유래를 찾는 학자들이 많다.
이에 반해 이슬람의 영성은 예언자 무함마드시기부터 존재해 왔으며, 드러나지 않은 채 무함마드 사후에도 계속해서 지속되고 풍성해져 가다가 나중에 수피즘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파즐루 라흐만은 예언자 무함마드는 알라와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신비적인 알라의 임재를 이미 느끼고 있었으며, 그러한 그의 영성은 강력한 종교적, 윤리적 사회의 건설을 통해 역사적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마틴 링은 수피즘이 곧 이슬람이며, 이슬람의 참 영성은 선택받은 수피들을 통해 이어져 왔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첫 수피 스승 (쉐이크 شيخ)이었으며 모든 영성을 지닌 자로서 이후의 다양한 영성을 지닌 모든 수피들의 영적 스승이요 기원이 된다.
이와 같이 수피즘의 기원이 예언자 무함마드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수피즘의 정통성은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문제가 되었다. 그 중 가장 크고 분명한 이유는 수피즘이 추구하는 바가 정통 이슬람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수피들이 추구하는 것은 알라로부터 직접적으로 얻게 되는 지식과 알라와의 하나됨이다. 이는 화나 فناء(소멸)와 바까 بقاء (머무름)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으로, 화나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남’, 바까는 자신 안에서 또는 신과 함께 머묾으로써 진실한 ‘나’ 곧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바까의 상태는 수피의 기본적인 가르침인 ‘세상의 본질은 신’이라는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다. 즉, 이 세상은 그 본질이 신의 현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까의 상태에서 신은 수피에게 존재하고 그를 통해 현현하게 되는 것이다. 수피는 신이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을 보고, 듣고, 말하며 신의 대리자로서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화나와 바까의 상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육신(훌룰 حلول)과는 현저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화나의 상태는 성육신이라기보다는 신의 임재 앞에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알라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정통 이슬람은 수피즘의 이러한 이론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으며, 이는 꾸란과 하디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이단적인 외부의 영향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더 나아가 9세기 후반에 주요 논쟁점으로 등장했던 성자 개념은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성자라는 특별한 계층을 대두시킴으로써 알라와 인간 사이에 중재자 개념을 용납하지 않는 울라마(علماء이슬람법학자들)와 더욱 첨예한 대립을 가져왔다. 수피즘은 무함마드 사후 더 이상 예언자를 기대할 수 없는 이슬람에서, 예언자의 영성을 잇는 특별한 사람들인 성자들이 예언자를 계승하여 신으로부터 오는 영감을 이어나간다고 말한다. 수피즘에서 예언자 무함마드는 신에게 가까이 가기를 추구하는 모든 성자들의 모델이며, 또한 신의 현현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완전한 인간이다.
수피즘이 꾸란에서 기원한 것인지, 즉 원래부터 이슬람에 존재하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시작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이슬람 역사 내내 수피즘은 계속해서 존재해 왔다는 사실이다. 수피즘은 9세기에 이르러서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13세기에 절정을 이루면서 사람들 사이에 깊이 파고들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유명한 이슬람법학자였다가 11세기 후반 수피가 되어 이슬람 법학자들로 하여금 수피즘을 다시 생각하도록 도전한 가잘리의 의견을 참고할 수 있다. 그는 이슬람에서 수피즘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을 이야기 했다. 그것은 신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식의 한계를 수피즘이 채워준다는 것이었다. 가잘리는 이슬람에 빠져있는 영성을 채워주는 수피즘의 역할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성자(왈리, ولى)들은 누구인가?
성자들은 수피들 중에서 수피의 길(타리까, طريقة)의 마지막 단계, 즉 화나와 바까의 단계에 도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소유하게 된 자들이다. 수피즘에는 모든 수피들이 걷게 되는 수피의 길이 있는데 그 길을 걷는 수피들 중 일부만이, 극소수만이 성자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모든 수피들의 최대의 목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얻는 단계인 성자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성자들은 예언자의 영적인 계보를 잇는 존재들로서 일반 사람들과는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은 성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예언자 무함마드를 계승하는 자들인 성자들은 예언자들이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듯이, 신에게 근접한 자들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만이 얻을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자들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예언자 무함마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적 계보이다. 혈연적인 가족 계보와는 구분되는 영적인 계보(이스나드, اسناد)는 성자가 예언자에게서 축복 (바라카, بركة)을 유전적으로 계승받았다는 증거이며, 또한 영적 능력이 이어져 내려오는 통로로 인정되었다.
성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으로 인해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들이고, 또한 하나님에게 근접한 자들로서,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자들로서 그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예언자를 계승하는 자들로서 계시된 법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움마(أمة, 이슬람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실제적인 힘이라고 수피들은 주장한다.
3) 이슬람 사회 속의 성자들: 수피 사당 문화
일반 대중들에게 있어서 성자들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슬람 사회에서 수피즘의 영향과 성자 개념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곳은 수피 사당이다. 수피 사당은 성자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성자가 죽은 후 그 무덤을 중심으로 세운 건물로, 보통 돔으로 덮여 있는 작은 건물이며, 그 건물 안에 관이 놓여 있고, 관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유명한 성자들의 경우에는 관 주위에 아름다운 문양의 울타리가 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로부터 관을 보호하고 있다. 관에 가까이 할수록 더 좋다고 사람들이 믿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성자로부터 축복을 축적하고, 사업이나, 질병 등의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성자들의 무덤을 방문한다. 방문자들이 성자에게 요구하는 가장 일반적인 것은 병으로부터 치유 받는 것이다. 이 경우 무덤 주위의 물품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며, 때로 병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생명을 상징하는 물의 경우, 무덤 근처에 있는 샘에서 물을 떠서 사용하기도 하고, 무덤 근처에 있는 나뭇잎이나 나무 열매도 특별한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병이 잘 낫기로 유명한 한 사당을 방문한 남성은 그 곳에서 기도하면 효험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다리가 아픈 사람, 머리가 아픈 사람이 많이 치유 받는 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아팠다가 나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실제로 들은 적은 없다고 했다. 실제로 본 적이 없는데도 그토록 확신하는 모습이 순박하고 정겨워 보이면서도, 있지도 않은 사실에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필자가 루까이야 수피 사당(السيدة رقية , 1133)을 방문 했을 때 마침 그 곳을 찾았던 한 부부가 있었다. 아내가 며칠 후 수술을 할 예정이라서 이곳을 방문했다는 아저씨는 마당에 떨어져 있는 나무 열매를 주어서 아내에게도 주고 자신도 먹었다. 함께 방문한 친구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말에 아저씨는 이 열매를 먹으면 곧 결혼하게 될 것이라며 친구에게도 열매를 주었다. 그 부부는 이 사당 뿐 아니라 다른 큰 사당들을 모두 돌고 있었다. 바라카는 많이 축적할수록 좋은 것이고, 어느 사당에서 기도한 것이 효험을 볼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부부들처럼 유명한 여러 사당들을 모두 방문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들이 사당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에게 근접한 존재인 성자들이 자신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에게 사정을 아뢰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은 성자들이 방문자들의 요청을 언제든 기쁘게 받아 주며, 하나님과 방문자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 준다고 믿고 있다. 무슬림들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하기 힘든 초월적인 존재이지만, 성자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특별한 존재이면서도 또한 동시에 무슬림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존재이고,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는 존재로 여겨진다. 무슬림들은 성자를 찾아가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토로하고 위로와 응답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4) 이집트의 수피즘
오늘날은 과거보다 수피들의 수가 줄어들었다고들 한다. 영성을 추구하고, 세속화 되는 것을 경계하는 수피즘의 성향이 이슬람 세계 전반에 불고 있는 현대화의 과정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시골이나 변두리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수피즘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집트이다. 이집트에는 리화이, 샤딜리야, 티자니야, 아흐마디야, 바다위야, 부르하니야, 루화이야, 나끄쉬반디야, 알 바지야 등 여러 종단들이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또한 이집트의 하산 알-반나가 창설하였고, 아랍 세계 전체로 퍼져나간 무슬림 형제단은 티자니야 종단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집트의 수피 인구는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고, 문서마다 수치의 차이도 크다. 이집트 인구의 3분의 1정도로 보는 자료에서부터 90퍼센트까지 보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남자만 수피로 가입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집트 인구의 1/3이라는 숫자가 적은 숫자는 아니다. 정확한 수치는 알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이집트 곳곳에서 여러 수피 종단들과 많은 사당들, 지크르 홍보문, 지크르 ذكر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집트에서 수피즘의 강세를 느낄 수 있다. ⌜이집트의 신비주의자들⌟이라는 책은 수피즘이 원래 이집트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근거 중에 하나로 이집트에 수피의 수가 가장 많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이집트에서 신실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 ‘혹시 수피세요?’ 하고 물어보면,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 재차 물으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집트에 수피즘이 왕성하기는 하지만 수피즘에 대한 인식이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수피가 아닌 사람들의 수피즘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은 수피들도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지만 약간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수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좀 난감해 하면서 그들도 분명 무슬림들이라는 사실을 먼저 강조한다. 그런 후에 그들은 정도를 걷는 다기 보다는 좀 옆길을 걷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해 준다. 카이로의 모스크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함두릴래, 나는 수피가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왜 그것이 ‘함두릴래’냐고 물으니, 수피들은 나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수피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자신도 호세인 모스크에 가고 그 곳의 사당을 방문하지만 수피들과는 다른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고 대답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사람의 경우에는 자신이 수피임을 적극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별로 숨기려는 기색도 없었다. 그는 수피들이 자신이 수피임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수피즘이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집트의 수피들의 경우에는 숨기고자 하는 기색이 많이 보였다. 한 아저씨는 수피냐는 질문에 나는 순니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순니인 것은 알고 있는데 혹시 수피시냐고 재차 물으니 말없이 그렇다는 표시를 했다.
필자가 만나 수피들은 대부분 신실하고, 친절하며, 다른 사람의 종교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기 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필자가 알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누며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에게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이슬람이 참 종교임을 강조하다가 결국에는 무슬림이 되기 위한 신앙고백(샤하다, شهادة)을 고백하라고 강요하다시피 말하기도 한다.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지 않느냐며, 어서 신앙고백을 하고 무슬림이 되라고 조르다시피 한다. 다른 것은 아예 보지도 듣지도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수피가 아니었다. 이러한 차이가 율법에 매어 있는 것과 영성을 추구하는 것 사이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좀 지나친 것일까?
5) 카이로의 사당 문화
① 카이로의 사당들
카이로에는 호세인 모스크나, 사이에다 자이납, 아이샤 모스크, 싸이에다 나피사 등 사당을 포함하고 있는 크고 유명한 모스크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구석 구석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규모의 사당들이 여기 저기에 많이 있다. 무덤이 모여 있는 곳에 생겨난 마을이나, 옛 거리들을 걷다보면 이런 작은 사당들을 자주 보게 된다. 어떤 것들은 버려져서 쓰레기가 쌓여 있어서 이곳은 이제 사당이 아닌가 하고 물으면 그래도 여전히 사당은 사당이라고 사람들이 말해 준다. 크고 화려한 사당들은 사람들도 많이 모이고, 사당도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많은 사람들의 손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관 주변이 아름다운 울타리로 둘려 있다. 반면에 작은 사당들은 대부분 수놓은 깨끗한 천으로 덮여 있고, 주변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거나 어떤 특별한 장식들이 되어 있지는 않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 고양이가 들어가서 앉아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한 옛 거리에서 발견한 사당에는 여자들이 서 너 명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있을 곳이 없어서 그곳에 살림을 차리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데 오가며 자주 들른다고 말했다. 다른 곳에 있는 한 사당은 지역 성자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왜 성자인지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수리 중이라서 들어가 확인해 볼 수는 없었지만 그 곳에 그 성자와 일곱 아들이 함께 묻혀 있다는 것, 이집트의 다른 성자들처럼 그 성자도 이집트인들을 품은 사람이라는 설명을 바로 이웃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유명한 사람이냐고 물으니까 그렇지는 않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성자라고 말했다.
작은 사당들이 모여 있는 곳은 복잡한 시내 거리 보다는 무덤이 모여 있는 곳에 생긴 마을이나, 옛 거리들이다. 언젠가 방문한 적이 있는 한 무덤 마을은 사람들에게서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곳이었다. 길 가면서 우연히 스쳐 지나가던 아이를 안고 있던 한 아주머니는 마치 돈을 맡겨 놓은 듯이 ‘우리 가난하고 불쌍하니까 돈을 달라’고 말했다. 외국인에게 돈을 바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길가에 있는 무너져 가는 싸빌-쿠탑의 사진을 찍으려 하자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그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강하게 말했다. 왜 안 되느냐고 묻자 이유도 말하지 않으면서 절대 안 된다고 소리 지르듯이 말했다. 좀 더 자세히 물어보니 그 마을에 있는 모스크에 있는 사람(아마 이맘이 아닐까 싶다)이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보다 조금 전에 모스크에서 만났던 불친절하던 한 사람이 생각났다. 나중에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그 마을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며 외국인이 혼자 가면 위험하다고 말해 주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별로 위협까지는 느끼지 못했지만, 외부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느껴지고, 이집트 사람들은 친절하다는 통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곳이었다.
② 사당을 찾는 사람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라마단이나 성자의 축일 때에는 더욱 많아지지만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도 사람들은 사당을 자주 찾는다. 지역 성자로 알려진 루까이야 사당의 경우 하루 평균 50명 정도 방문을 하고 금요일에 하는 지크르 때에는 200명 정도 모인다고 한다. 그 곳에서 조금 더 가면 있는 싸이에다 나피사 모스크는 사당을 포함하고 있는 매우 크고 아름다운 모스크인데 그 곳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 무덤 마을 외곽에 있는 작은 사당은 평소에는 잠가 두었다가 방문객이 와서 요청을 하면 열어주곤 하는데, 그 작은 모스크에도 하루 평균 8명 정도의 방문객이 있다고 했다. 필자가 참석했던 한 지크르에는 남자들만 250-300명 가량의 수피들이 참석했었다. 그 사당의 경우 지크르가 일주일에 2번 있었는데 그렇게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이 지크르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셈이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이 모두 다 수피는 아니다. 성자의 무덤을 방문하는 것은 메카 순례를 의미하는 하즈 حج와는 구분하여 지야라 زيارة(방문이라는 뜻)라고 하는데, 전통에 의하면 지야라는 원래 이슬람 신학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죽음과 내세를 상기한다는 의미로 행해진다. 수피가 아니라고 밝힌 한 사람 역시 호세인 모스크에 가고 사당을 방문하지만 그곳에 대고 기도하지는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그 곳에 대고 기도하는 것은 이슬람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알라에게 개인적으로 아뢰고 싶은 것들은 하루 5번 행하는 기도시간에 두아에를 통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무슬림들에게 지야라는 단순한 상기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매일의 고달픈 문제들을 가지고 사당을 찾으며, 그 곳에서 응답과 위로를 구한다. 반드시 수피 종단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해도 성자의 무덤을 찾는 것이다.
호세인 모스크나, 싸이에다 나피사, 사이에다 자이납, 아이샤 모스크 같이 크고 유명한 사당의 경우 지역 사람들뿐만 아니라 멀리에서도 찾아온다. 어렵게 여행 경비를 모아 1년에 한 번 정도 방문하면서 주변의 큰 모스크들을 모두 돌아보고 가기도 하고, 몸이 안 좋거나, 답답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루 날을 잡아 좋아하는 사당을 방문하기도 한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멀리서 오는 경우도 있고, 다른 여자 친척들과 함께 오기도 한다. 멀리서 온 한 여성을 만나 굳이 이렇게 멀리까지 올 이유가 있느냐고 물으니, 동네에도 사당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크고 훌륭한 것은 없다고 답했다. 머리가 아파서 왔다는 그 여성의 말을 참고로 할 때 크고 좋은 사당이 더 효험이 좋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당이 딸린 한 모스크에서 만난 여성은 사당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가슴 아프고 문제가 있어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사당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아프거나, 수술을 앞두고 있거나, 시험을 준비하고 있거나 등의 실제적인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직업이 없어서 오랫동안 고통 받고 있는 사람, 도저히 나눌 수 없는 사연이어서 눈물로 대신 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유명한 사당에서 관 주변의 울타리를 붙들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여성을 본 적이 있다. 오랫동안 어찌나 서럽게 흐느끼는지 보고 있는 사람도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여성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며 아픔을 나누는 사람들. 내가 그 중 한 사람에게 왜 우는지 아느냐고 묻자, ‘하나님은 아신다 (الله هو عارف 알라, 후와 아에리프)’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들도 왜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함께 슬픔을 나누고 있었다. 나의 슬픔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기에 남의 슬픔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의 삶이 많이 힘들어 보였다.
③ 사당 문화
사람들은 사당에 가서 무엇을 할까? 사당을 찾는 가장 큰 목적은 성자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는 것이다. 사당을 찾은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관 주위를 돌면서 입을 맞추고 꾸란 구절을 외우고, 죽은 성자의 사방에 대고 기도하기 위해 관 주변을 돌면서 소원을 아뢴다. 관의 머리 있는 부분에 특별한 장식을 해 놓아서 머리 부분이 어디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지만, 그래도 관의 사방에 대고 기도를 한다. 인격체라면 어느 방향에서 기도를 하든지 다 들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한데, 그들은 성자의 사방에 대고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매우 간절하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간절한 마음이 역력히 보이는 표정으로 관을 향해 고개를 든다.
관 앞에는 소원을 적은 종이를 넣기도 하고 돈을 넣기도 하는 함이 따로 있지만, 사람들은 가능하면 관이 있는 곳 주변에 종이나 물건을 놓기를 원한다. 유리로 막혀 있고 울타리가 둘려 있는 관 주변에 성자에게 주는 선물들, 소원을 적은 종이들, 돈, 스카프 등의 물건들이 들어가 있다. 몸이 아파서 직접 오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그 사람에게 속한 물건을 관 옆에 놓아둠으로써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도 하고,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결혼을 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경우에는 자기 옷을 넣어 놓기도 한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보이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사당은 문제 해결을 위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위로를 얻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쉬는 날 사당을 방문한다. 2년째 남편이 직업을 찾지 못해 하루 하루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다는 한 여성은 쉬는 날마다 사당을 방문한다고 했다. 그 여성에게 사당은 힘든 삶을 지탱할 힘을 얻는 곳으로 보였다. 어려운 살림에 조금씩 돈을 모아 멀리서 큰 사당을 찾아오는 여성들에게도 사당은 단순한 문제 해결 장소가 아니라, 삶의 고통을 하소연 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위로를 얻는 곳일 것이다. 사람들은 사당에 앉아서 도란 도란 이야기도 하고, 한 구석에 앉아 꾸란을 읽기도 한다. 그냥 조용히 앉아 쉬기도 하고, 학교 간 딸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수술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찾는 곳이고, 시험을 앞두고 기도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의 눈에 사당은 힘든 삶에서 잠시 벗어나 사랑하는 성자 옆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비쳤다.
사람들은 성자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크고 화려한 사당으로 향하는 골목길 내내 꽃을 파는 사람들, 향수를 파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꽃들은 사당에 있는 성자에게 주는 꽃이라고 했다. 사당 안에 들어가 보니 정말로 관 주변의 울타리에 아까 밖에서 보았던 꽃들이 여기저기에 많이 꽂혀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꽃은 왜 꽂아 놓는 것이냐고 물어보았더니 누군가를 사랑하면 선물을 주기 마련이라며 성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슬람에서 하나님은 초월자이시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사람들 사이에 거하는 성자들을 향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내재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기에 기꺼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알라에게 대신 아뢰어 주는 성자들이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가는 말
이슬람의 성자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와 매우 흡사하다. 사당 옆에 살고 있던 한 가난한 여성은 성자들이 자신들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성자들은 초월하시는 하나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고, 기꺼이 인간들의 소원을 대신 말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들도 이 땅에 살다가 죽었기에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고 기꺼이 들어준다. 그런 성자들에게 사람들은 사랑을 표현하고 위로를 구한다.
성자들은 우리들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여성에게 왜 그러냐고, 죄 때문에 그런 것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자신들은 하루에 5번 기도하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펄쩍 뛰었다. 그런데 왜 성자가 필요하냐고 재차 물었더니 답변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곳에 살면서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사람, 죽어서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한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교제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두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 사당의 관 주변을 두르고 있는 울타리를 잡고 하염없이 울던 여인이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았다. 어떤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을까? 이혼당한 여인은 아니었을까? 성경은 한 여성과만 결혼할 것을 말하고 있고 이혼을 금하기 때문에 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성경이 말하는 결혼관을 동경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많은 무슬림 여성들에게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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